일본 경제산업성 안전보장무역관리 웹페이지 하단에 우리나라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안내하는 링크가 게시돼 있다. (사진=일본 경제산업성 안전보장무역관리 웹페이지 캡처)
일본 정부 웹페이지가 우리나라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 목록) 배제를 놓고 자국 수출업자들을 혼란시키는 양상이다. 화이트리스트 개편을 공포하는 한편, 공포 일주일이 넘도록 우리나라가 포함된 옛 리스트를 방치하고 있다.
13일 오후 6시 현재 일본 경제산업성의 '안전보장무역관리' 웹페이지에는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했다는 내용의 '대한민국으로의 수출에 대한 관리운용 재검토'라는 안내 링크가 게시돼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심사 우대를 박탈한다는 취지다.
우리나라를 겨냥한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사항이 지난 2일 일본정부 각의, 7일 공포를 거쳐 오는 28일 시행된다는 내용 등이 안내돼 있다.
일본 정부가 공포한 수출무역관리령 별표 제3(화이트국가 목록) 개정 관련 신구 조문비교표. 개정 뒤 우리나라가 빠져 있다. (사진=일본 수출무역관리령 신구대조문 발췌)
일본 정부는 기존 화이트국가(수출무역관리령 별표 제3의 국가·지역 해당 27개국), 블랙리스트로 볼 수 있는 국가(북한·이라크·리비아 등 별표 제3의2 지역 10개국), 기타 등 3분류체계를 그룹 A~D의 4분류체계로 바꿨다.
기존 화이트국가 27개국은 우리나라만 빼고 26개국 모두 그룹A로 전환됐다. 일본 정부는 이 웹페이지를 통해 자국 수출업자들에게 한국 수출시 기존 3년 단위 포괄허가라는 편의를 제공하지 않으니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셈이다.
하지만 일본 경제산업성은 웹페이지의 핵심적 사항을 업데이트하지 않은 채 관리 부실을 확인시킨다. 일본의 수출규제 공세 이전 정보가 그대로 존치돼 있기 때문이다.
웹페이지의 '보완적 수출규제'(캐치올 규제) 항목에는 화이트리스트에 우리나라가 이탈리아와 룩셈부르크 사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일본 경제산업성 안전보장무역관리 웹페이지 캡처)
일단 이 웹페이지 '안전보장무역관리의 개요' 항목의 '보완적 수출규제(캐치올 규제)'라는 하위 항목에서는 기존 2분류체계상의 '수출령 별표 제3의 지역'(화이트국가 목록)이 우리나라가 포함된 채 존치돼 있다.
갱신되지 않은 별표 제3에는 우리나라가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등과 함께 27개 화이트국가 중 하나로 표기돼 있다. 우리나라는 이탈리아와 룩셈부르크 사이에 16번째 화이트국가로 나열돼 있다.
캐치올 규제는 전략물자가 아니어도 무기로 전용이 가능한 대부분 물품의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고강도 포괄규제다.
아울러 질의응답(Q&A) 페이지도 우리나라가 여전히 화이트국가로 분류된 채 바뀌지 않았다. 새로 도입한 그룹A나 그룹B 등의 용어도 사용되지 않고 있다.
웹페이지의 Q&A 항목 중 '규제대상지역에 관한 질문'에도 화이트리스트 대상 국가로 대한민국이 포함돼 있다. (사진=일본 경제산업성 안전보장무역관리 웹페이지 캡처)
Q&A 중 '캐치올 관련' 2번째 항목인 '규제대상지역에 관한 질문'에서 '화이트국가에서 '화이트'란 무슨 의미인가?'라고 자문한 뒤 화이트국가 '27개국'을 나열하며 자답한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16번째로 이들 국가 목록에 적시돼 있다.
일본 정부는 이 Q&A 답변에서 "대량파괴무기 등 관련 조약 가맹, 수출관리체제 일괄 참여, 캐치올 규제제도 도입을 시행한 나라에서는 대량파괴무기 확산이 불가능한 만큼, 속칭 화이트국가로 부른다"며 "화이트국가를 최종 목적지로 하는 수출은 (캐치올) 규제를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답변대로라면 우리나라가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될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가입국이고, 호주그룹(AG)·바세나르체제(WA)·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핵공급국그룹(NSG) 등 4대 수출통제체제 가입국인 데다, 캐치올 규제의 근거규정을 시행령에 둔 일본과 달리 상위 법규인 법률(대외무역법)에 두고 있다.
주무부처인 일본 경제산업성의 웹페이지 관리 부실은 역설적으로 이번 '한국 때리기' 공세의 주체가 이들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들보다 '윗선'에서 개시된 정치 공작일 가능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 고위관계자는 "일본 외무성이나 경제산업성과 접촉해보면, 이번 화이트리스트 사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인상을 받았다. 총리실에서 던져주는 발표문을 그대로 받아 읽는 수준인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