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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안타까운 탈북민 모자의 죽음 '자유 대한민국'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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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안타까운 탈북민 모자의 죽음 '자유 대한민국' 맞나

    [구성수 칼럼]

    14일 오전 방문한 서울시 관악구 한 아파트 현관문. 이곳에서 지난 7월 31일 탈북민 모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현관문에는 지난 4월을 끝으로 더 이상 표기되지 않은 '도시가스 검침표'가 붙어있다. (사진=서민선 기자)

     

    탈북민(북한 이탈주민) 어머니 한모씨(42)와 여섯 살 배기 아들이 서울 관악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지 수개월 만에 발견됐다.

    경찰은 이들 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황이나 타살의 흔적이 없다는 점에서 아사(굶주려 죽음)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발견 당시 냉장고가 고춧가루를 제외하고는 텅 비어있는 등 집에 식료품이 다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 아파트는 수도요금 미납으로 단수조처 된데다 9만원의 월세도 수개월째 밀려 있었다.

    안방에서 발견된 통장에는 5월 13일 잔액 3858원이 모두 인출돼 잔고에는 0원이 찍혀 있었다고 한다.

    이들 모자는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다 소진한 끝에 더 이상 먹을 게 없어 아사한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의 서울 하늘 아래서 주민이 아사했다면 그것은 충격적이다.

    특히 그 주민이 북한 정권의 압제를 피해 나온 탈북민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씨는 10년 전 중국과 태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이후 중국동포 남성과 가정을 꾸린 뒤 중국에 건너갔다가 이혼하고 지난해 말 아들과 함께 한국에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씨는 당시 국내에 들어온 지 10년 가까이 됐기 때문에 탈북민이었지만 정부의 보호 대상자는 아니었다.

    북한이탈주민 보호법에 따라 탈북민은 정부가 5년간 거주지에서 보호해야 하지만 한씨는 그 기간이 지난 것이다.

    그렇다고 극빈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은 것도 아니다.

    (사진=연합뉴스)

     

    한씨는 병을 앓는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제대로 일을 구하지 못하고 생활고가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한씨가 최근까지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아동수당과 양육수당 각 10만원씩 월 20만원이 전부였고 그나마 받던 아동수당도 연령제한으로 올해 3월부터는 지원이 끊겼다.

    모자 두 사람의 생계를 유지하는데 양육수당 10만원이 전부였던 셈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나 한부모 가정 지원제도, 긴급복지지원 제도 등의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사회안전망이 있지만 한씨 모자를 비켜갔다.

    2018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의 주된 탈북동기는 ‘북한체제의 감시·통제가 싫어서’(25.3%)가 가장 높고 두 번째가 ‘식량이 부족해서’(22.5%)다.

    굶주림을 피해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해 자유대한의 품으로 내려온 사람이 자유대한의 서울에서 굶어 죽는 일이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북한보다 훨씬 우월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으로서는 크게 부끄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법에 정한 탈북민 보호기간이 지났다거나 본인이 복지지원을 신청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넘어갈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탈북민 정착지원과 관련해 사각지대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과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는 물론 우리 사회도 그동안 탈북민을 진정으로 한 동포로 받아들여 왔었는지 깊이 돌아봐야 할 것이다.

    탈북민들은 남한 생활에 불만족하는 주된 이유 가운데 세 번째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남한사회의 차별과 편견 때문에’(18.3%)를 꼽고 있다.

    이러한 차별과 편견 때문에 한씨 모자가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도 이웃에 손을 내밀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자료사진=윤창원 기자)

     

    이번 사건은 북한에게 좋은 선전물이 될 수도 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이번 탈북민 모자의 아사 소식에 북한 김정은은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라며 “북한 정권은 이번 사건을 탈북민들과 남한 사회에 대한 비난과 탈북방지를 위한 내부 선전에 이용하려 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북한으로서는 그 선전에 앞서 탈북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북한 현실을 돌아보는 것이 먼저다.

    “북한 정권이 주민들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최소한이라도 보장해 주었더라면 수만명의 탈북민들이 그리운 형제들과 친척들, 친우들이 있는 정든 고향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영호 전 공사가 “이번 탈북민 모자 아사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북한 당국과 김씨 일가에 있다”고 개탄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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