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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을 거친 김도영…"좀 더 큰 꿈꾸는 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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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을 거친 김도영…"좀 더 큰 꿈꾸는 딸들"

    [인터뷰] 영화 '82년생 김지영' 연출 김도영 감독
    "원작소설, 기폭제처럼 나의 단단한 의식에 균열"
    "김지영, 영화 통해 더 많은 사람들 만나기로 결심"
    "날 거쳐갔지만 내 것은 아닌 영화 '82년생 김지영'"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사진=황진환 기자)

     

    소설 '82년생 김지영'(조남주·민음사)을 처음 읽었을 때 김도영 감독은 "허우적대던 곳에서 약간 떨어져 나와 내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동안 쌓여 온 일들이 있었고, 그 책이 기폭제처럼 내 단단한 의식에 균열을 낸 느낌이었죠. 처음으로 눈을 떠서 나의 삶, 엄마의 삶을 보는 기분이어서 크게 공감했어요."

    그러한 체험은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찾아왔다.

    "대사 하나, 장면 하나에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면서 그러한 균열과 공감이 보다 선명해지더군요. 그것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완성된 영화를 내놓으면서 그 순간이 또 한 번 오는 것 같아요. '영화가 너무 순하게, 온건하게 나온 건 아닌가' '더 날카로웠어야 하지 않나'라는 고민도 했죠. 그런데 관객들 반응을 보면서 '82년생 김지영'이란 이야기는 하나의 생명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 감독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나를 거쳐갔지만, 내 것은 아닌 작품"이라고 말했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생명력을 지닌 이야기는 영화를 통해 최소한의 기품을 유지하되 최대한 몸을 낮춤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로 결심한 것 같아요. (영화를 본) 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울면서 나오는데, 그런 기분이 들었죠."

    이 영화를 연출하면서 김 감독이 고수했던 원칙이 하나 있다. '원작의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할 만한 이야기, 굉장히 하고 싶은 이야기여서 택한 영화였습니다. 한 편의 상업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합의와 동의를 거쳐야 해요. 그 과정에서도 '어떻게 해야 원작에서 소중하다고 느꼈던 가치들을 훼손하지 않고 가져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제일 컸죠. '이 이야기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갔을까' '나는 무엇에 공감했을까' '영화는 어떠한 지점에 서 있어야 하는가'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많았어요."

    ◇ "김지영은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찾아야만 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촬영 현장에서 김도영(오른쪽) 감독이 배우 정유미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중심 서사는 자기 언어를 잃어버린 여자가 그것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다"고 했다.

    "영화는 물론 원작 소설에서도 '빙의'로 표현된, 김지영(정유미)이 겪는 질환은 '말을 잃어버린 사람'을 가리키는 문학적 장치로 다가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는 김지영이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김 감독이 연출자로 합류했을 때 이미 나와 있던 시나리오 초고는 따뜻한 가족 서사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그는 여기에 사회적 의제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봤다.

    "조남주 작가는 무슨 말을 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어느 팟캐스트 방송에서 '아무리 싱싱한 오이도 식초에 들어가면 피클이 된다'고 표현했더라고요.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우리 주변은 어떠한가를 짚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시대, 사회 환경 말이죠. 지영을 중심으로 그 윗세대와 아랫세대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로 다가가야만 했으니까요."

    극중 지영의 남편 정대현(공유) 비중이 원작보다 커진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한국 사회라는 식초에 담겨 태어났기에, 남성들이 여성의 삶을 잘 모를 수 있다는 점을 짚어내고 싶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지영과 대현의 신혼 회상신이다. 밝은 햇살이 비치는 창가 침대 위에서 남편 대현은 지영에게 "아이를 갖자"고 요구하는 와중에 천진난만하게 "밥 차려달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 장면에서 과거 대현에게 '밥'과 '아이'는 동격이었다.

    "몰랐던 사람이 서서히 깨닫는 면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현의 에필로그 고민이 굉장히 컸어요. '판타지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는데, 결국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한 발 내밀어 주는 것이 좋다고 여겼죠. 지영의 성장이 있는 만큼 대현의 성장도 있어야 한다고 봤어요. 그 모습이 영화로 나왔을 때 더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 "김지영 이후 딸들의 삶은 보다 나아질 수 있다"


    김도영 감독(사진=황진환 기자)

     

    김 감독은 "처음부터 영화에서만큼은 지영이가 자기 목소리를 내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이를 통해 지영 이후 딸들의 삶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 영화는 큰 흐름 안에서 무언가를 안고 가는 느낌이에요. 영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이야기를 이어갔으면 했어요. 관계 맺고 있는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더 잘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던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누군가에게 던져진 작은 돌인 것 같아요. 그 전부터 수없이 던져진 돌들에 하나를 더 보탠 셈이죠."

    그는 "타고난 성별과 상관없이 누구나 사회·경제·정치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며 "나와 관계 맺고 있는 타인들과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 본다"고 역설했다.

    "그것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 아닐까요. 불필요한 논쟁이란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벌어지는 모든 현상도 멀리서 봤을 때는 유의미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 영화로 인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공론화 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죠. '82년생 김지영'은 각자 경험치에 따라 다르게 읽을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그러한 다양한 논의를 통해 주변을 한 번 돌아보고, 우리네 엄마 아내 딸들이 조금 더 높고 큰 꿈을 꿀 수 있는 길을 함께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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