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평화의 소녀상' 김운성 작가 "한 작품에 대해 큰 국가가 이렇게 억압할 줄이야"

강원

    '평화의 소녀상' 김운성 작가 "한 작품에 대해 큰 국가가 이렇게 억압할 줄이야"

    "천 번째 수요집회 때 우연히 접해..반성과 미안함으로 평화의 소녀상 제작 시작해"
    "백 여개의 소녀상 모두 기억에 남지만..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이 가장 기억 남아"
    "강제 징용 관련해서는 아직 100분의 1도 안 알려져"

    ■ 방송 : 강원CBS<시사포커스 박윤경입니다="">(강민주PD 13:30~14:00)
    ■ 진행 : 박윤경 ANN
    ■ 정리 : 최수빈 인턴
    ■ 대담 : 평화의 소녀상 김운성 작가

     



    ◇박윤경>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일본이 한국 기업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취한지 벌써 다섯달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후 한일 관계는 경제적인 부문을 넘어서서 정치적, 문화적으로까지 악화된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데요. 일본 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 전시가 중단되기도 했고요, 일부 우익들은 반일 집회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가운데 반가운 소식도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일본의 방해 때문에 설치가 될 장소를 찾지 못했던 평화의 소녀상이, 최근 워싱턴 인근 지역에 설치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한일 사이에, 참 여러 가지 이슈가 많은 최근 몇 달이었는데요. 이 가운데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 작가가 있습니다. 최근 상황, 김운성 작가를 연결해서 직접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운성> 네, 안녕하세요. 김운성입니다.

    ◇박윤경> 지난번에 춘천 스튜디오에 직접 모시고 말씀을 나눴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 후로 굉장히 오랜만이죠? 일본 정부의 태도와 전시 중단 조치 등으로, 최근 몇 달 많이 바쁘시고 또 속도 많이 상하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김운성> 사람을 가만히 놔두질 않네요. 한국 정부를 상대를 해서도 그렇고 하나의 작품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하는 과정들이 너무 속상하고요. 그리고 그들의 본질을 약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박윤경> 지난 9월에 일본에도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요, 취소됐던 전시회 때문에 다녀오신 건가요?

    ◆김운성> 네. 7월 말부터 전시를 했거든요. 굉장히 많이 (일본에) 왔다 갔다 하면서 그들과 같이 대항도 하고 협조도 했습니다.

    ◇박윤경> 일본에 직접 가보시니까 일본 내의 분위기들이 어떻던가요?

    ◆김운성> 일본 분위기는 두 가지인데, 일본 정부라던가 극우 정치인들은 굉장히 혐한 이런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고, 일본 시민들의 분위기는 실제로 다릅니다.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하면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고 그리고 자기 자신들에 대한 미안함, 반성 이런 부분들이 좀 보입니다.

    ◇박윤경> 최근에 일본 일각에서 소녀상 전시가 중단된 것을 두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 이런 움직임도 있더라고요?

    ◆김운성> 그런 부분들이 잘 안 보였었는데, 이 사건이 일어나면서 일본이 아주 광범위하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부분이 드러나게 된 거죠.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피켓이 붙어있다.

     



    ◇박윤경> 이번 일본 방문에 있어서 소득이 있다면요?

    ◆김운성> 일본에서의 문화예술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 일본 국민들이 인정하지 않는 것, 아주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단체들이 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대해서 성명서를 엄청 냈거든요? 그들에 대한 이런 의지들을 확인했고요. (일본 시민들이) 미술관 앞에서 끊임없이 항의 시위를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에 대한 성과를 많이 봤죠.

    ◇박윤경> 작가님, 연결된 김에 좀 여쭤볼게요. 이렇게 활발하게 사회활동까지 하고 계시는데, 소녀상을 만들면서 이런 활동까지 예상을 하셨어요?

    ◆김운성> 한 작품에 대해서 그 큰 국가가 엄청나게 억압을 한다는 것은 잘 몰랐었죠. 작품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국가로서 창피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무릅쓰고서 현재까지 억압하는 걸 보면 정말 황당하고 당황스럽습니다.

    ◇박윤경> 평화의 소녀상은 어떻게 만들게 되신 거예요?

    ◆김운성> 2011년 12월 14일 수요 집회가 1000번째 성사되는 해에 할머님들의 싸움을 기억하기 위해 소녀상을 제작하게 된 겁니다. 계기는 2011년 초에 수요 집회도 잘 몰랐었는데 그 앞을 지나다가 우연하게 그 모습을 보게 되고, 굉장히 미안함도 있고 이런 반성하는 마음 갖게 됐어요.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미안한데 뭔가 반성과 미안함을 덜고 싶어서, 그래서 기념물을 하나 하고 싶다 하는 부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박윤경> 어떻게 보면 그런 우연한 계기가 굉장히 큰 물결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은데, 소녀상을 만들 때 어떤 모습으로 제작을 할까 고민도 굉장히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김운성> 맨 처음에는 비석을 제작해달라고 하셨는데, 비석 디자인으로는 일본을 제대로 혼내주지 못하고 사과와 반성도 못 받을 것 같으니까 조형물로 합시다, 했더니 그쪽에서도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할머님들 디자인으로 된 거예요. 왜냐하면 할머님들이 20년간 싸워오셨으니까. 그러다가 할머님들이 투쟁하는 모습보다 할머님들이 어렸을 때 당했던 그때의 모습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하는 그런 의견을 고심 끝에 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서 할머님 모습에서 소녀의 모습으로 변하게 됐습니다.

    ◇박윤경> 조금씩 다른 차이점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소녀상에 담긴 의미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실까요?

    ◆김운성> 일본군에게 성 노예에 대한 아픔을 받은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1945년 이후에 세계 각지에서 피해 받았던 피해자들이 한국에 돌아오잖아요. 그분들이 돌아오셔서 한국 내에서 또 다른 차별 이런 것들에 대한 것이 생겼어요. 그런 것들이 한국에서 현재까지 잘 해결이 된 것이 아니죠. 할머니들도 그 아픔을 가지고 많이 돌아가시긴 했는데, 그런 슬픔들을 표현한 것이 할머님들의 그림자, 땅에 닿지 못하는 뒤꿈치에 대한 부분들로 표현되었고요. 또 우리의 각오를 다지는 손이 주먹으로 되었습니다.

    원래 피해자라고 등록하신 분이 238명이 계셨어요. 근데 우리가 제작했을 때는 56명이 계셨으니까 많이 돌아가신 거죠. 그 돌아가신 빈자리를 빈 의자로 표현했고 그 빈 의자는 누군가 앉아서 소녀와 할머니와 같이 동감을 해주길 바라는 빈 의자가 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상징이 있었습니다.

    ◇박윤경> 지금 말씀을 들어보니까 조형물을 만들기까지 공부도 굉장히 많이 하셨을 것 같고 할머님들과도 대화를 많이 나눠보셨을 것 같아요.

    ◆김운성> 할머님들께서는 대화를 많이 하시지는 않고, 대화를 하는 것 자체 또한 그 당시를 기억하는 아픔들이 있어서 옆에서 뵈면서 활동가들도 엄청나신 분들이거든요. 그런 분들을 통해서 또 연구자분들을 통해서 공부하면서 작업을 했던 거죠.

    미국 워싱턴 인근 애넌데일 지역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됐다. 미국에서는 5번째로 건립되는 소녀상이다. (사진=장규석 워싱턴 특파원)

     



    ◇박윤경> 그러면 지금까지 작가님께서 평화의 소녀상을 얼마나 제작을 하셨나요?

    ◆김운성> 100여 점 정도 제작을 했습니다.

    ◇박윤경> 다 소중하고 의미 있으시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손꼽으시는 평화의 소녀상이 있으실까요?

    ◆김운성> 다 소중하죠. 그래도 일단은 맨 처음에 일본대사관 앞에 세울 적에 일본의 압박을 뚫으면서 진행했던 거기 때문에 그게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박윤경> 그래요. 요즘 평화의 소녀상과 관련해서 국민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뿌듯한 소식도 있지만, 반대로 안타까운 소식도 있어요. 소녀상의 얼굴을 쳐다보시면 만감이 교차하실 것 같은데 어떠세요?

    ◆김운성> 소녀상이 저희가 제작한 조형물이지만 할머님들과 오버랩이 되거든요. 그런 상처를 받을 적에 할머님들이 그런 소식을 안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이런 많은 압박 속에서도 이겨내야 하는 그런 얼굴을 동감하기도 하면서 걱정스럽기도 하고 의지도 받고 그랬습니다.

    ◇박윤경> 보니까요, 이렇게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작가님 부부께서는 강제 징용과 관련해서 활동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김운성> 강제 징용이 요즘에는 많이 알려졌지만 100분의 1도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이것 때문에 일본 정부가 발칵 해서 경제적 압박을 하고 하는데, 일본 열도에서 보면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강제 징용자들이 없는 데가 없어요. 그리고 유해발굴이 안 되고 있고요. 일부 부분들은 우리 정부가 반성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뿐만이 아니라 문화재 침탈도 많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강제 징용부터 해서 계속 밝혀져야 하는 내용인데, 워낙 일본 정부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해서 오히려 우리가 위축돼 있는 게 아닌가 해서 걱정되긴 합니다.

    ◇박윤경>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서 제일 화가 나는 거짓말은 어떤 건가요?

    ◆김운성> 일본 정부는 똑같습니다. 강제징용은 없었다, 한국인들이 거짓말하는 거다, 한국에 대해서 침탈한 적 없었다, 이런 것들이 그렇습니다.

    ◇박윤경> 그런 거짓말이 지금 세상에도 통하나요?

    ◆김운성> 일본은 통해요. 일본은 일본 정부가 이야기하면 일본 매스컴이 그대로 이야기하고요.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니까 똑같이 말합니다.

    ◇박윤경> 아까 소녀상의 의미 가운데 땅에 닿지 못한 뒤꿈치 말씀을 하셨는데 하루 빨리 진정한 사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쉽지 않은 싸움이 될 텐데, 작가님께서는 더군다나 우리 지역 춘천 출신이신데요. 마지막으로 많은 분들이 함께하실 수 있도록 강원CBS 청취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김운성> 인권 상황이 그래도 옛날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까지도 일상에서 회사에서 가족 내에서의 이런 부분들이 더 많이 발전되어야 할 것 같거든요. 인권이 많이 향상이 되면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런 부분에서 같이 손잡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윤경> 알겠습니다. 지치지 마시고요, 많은 분들이 함께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 작가와 말씀 나눠봤습니다.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