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방역봉사단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황진환기자
시국이 어수선했던 1979년. 형님과 함께 액세서리를 만들어 서울 남대문시장 가게에게 납품하던 A씨는 자신이 직접 액세서리 가게를 차리기로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대문시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시장이었던만큼 가게 한칸 마련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 거래하던 액세서리 가게 주인의 호의로 A씨는 남대문시장에 조그만 가게를 마련할 수 있었다. 주인이 자신의 3평짜리 가게 중 구석 쪽 반평을 떼어 A씨에게 ‘가게를 한번 해보라’고 선뜻 내준 것. 그것도 월세 없이 말이다.
“청년이 성실히 일하는 모습에 그런 호의를 베푼 것 같아요. 어찌보면 같은 업종을 하는 경쟁자인데, 선뜻 자신의 가게 일부를 공짜로 나눠주기 쉽지 않거든요. 항상 그분을 닮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가게 주인의 호의를 바탕삼아 액세서리 가게를 시작한 A씨는 처음에는 하루 1만 2천원 일수를 갚기도 빠듯해 일수쟁이가 오는 시간이면 도망친 날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제품이 히트를 치면서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20년만에 남대문시장 내 건물을 사들이게 됐다.
더부살이에서 이제는 건물주가 됐지만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임차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자 A씨는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상가에 세들어 있는 점포 전체의 임대료를 석달간 20% 인하하기로 한 것. 2억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A씨는 “2억원은 결코 손해가 아니다”며 “(임대료 인하로) 상인들이 힘을 내서 좋은 상가가 되면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갑(건물주)과 을(임차 상인)이 같이 살아야 한다”며 “갑만 살면 나쁜 임대인일 뿐”이라고 밝혔다.
A씨 외에도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대문시장 상인들을 위해 건물주들이 잇따라 임대료 인하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남대문시장 전체적으로 1800여개 점포가 임대료 인하 혜택을 받게 됐다.
전국적으로도 2200여개 점포의 임대인들이 임대료를 인하하거나 동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임차상인들은 여전히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남대문시장 전영범 상인회장은 “임대료 인하가 시작에 불과하다”며 “임대료를 내린 점포는 일부일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남대문시장 점포 수는 1만 1000여개에 이르지만 임대료 인하 혜택을 보는 점포는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젊은 시절 남대문시장에서 가게를 직접 운영하다가 나이 들어 세를 주고 임대료를 받아 노후생활을 꾸려 나가는 ‘생계형 임대인’들이 적지 않아 임대료 인하 움직임이 확산되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임대인들은 세제혜택 등의 정부 지원을 얘기하고 있다. 정부도 임대료를 인하하는 ‘착한건물주’에 대해서는 인하액의 일정 부분을 세액공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