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정은경 본부장
국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천여 명을 넘어서고, 하루 환자 발생 수도 100여 명씩 증가하면서 국민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환자 증가세는 오히려 보건당국의 발 빠른 대응이 낳은 '성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만약 이미 전국적으로 확산된 바이러스 때문이라면 앞으로의 상황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급증한 환자 증가폭, 세계 최고 수준의 진단검사 능력의 성과?코로나19 사태 초기는 말 그대로 '폭풍전야'였다. 30명 이내였던 환자들은 감염 경로가 분명했고, 중국을 대상으로 한 환자 유입 차단 전략이 성과를 거두면서 잠시 소강 국면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구 이단신천지의 '슈퍼 전파'가 뒤늦게 발견되면서 최근 국내 환자 수가 하루에 100명 안팎으로 늘고 있다.
다만 정부는 대구 지역에서 이단신천지 신자와 관련 증상이 있는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대규모 전수조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한동안 환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고한 바 있다.
즉 지금 급증하고 있는 코로나19 환자 발생추이는 기존의 방역조치가 실패해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상황을 반영했다기보다는, 반대로 그동안 숨어있던 환자를 당국이 빠르게 찾아내 위험요인을 제거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지난 26일 일본 코로나19 검사 현황(일본 후생노동성 홈페이지 캡쳐)
한국 보건당국의 독보적인 진단 능력은 전 세계에서 한국 다음으로 환자가 많은 일본과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보다 인구가 약 2.5배 많은 일본은 본토 내 환자만 178명,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발생한 환자를 합치면 869명에 달한다.
하지만 지난 26일까지 일본에서 진행한 코로나19 진단 검사는 겨우 1890건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은 26일 오후 4시 기준, 단 하루 사이에만 무려 1만 3천여건의 검사물량을 소화하는 등 총 5만 3천여건을 검사해, 중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이다.
현재 수준의 절반 수준인 하루 최대 5천 건의 검사가 가능했던 지난 13일에도 보건복지부 김강립 차관은 "인구대비 물량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검사 역량이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은 물량을 하루에 검사할 수 있는 나라"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전직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장 스콧 고틀립의 SNS
이러한 평가는 정부만의 자화자찬이 아니다.
한국 조지메이슨대 안드레이 아브라하미안 방문연구원은 지난 24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한국의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많아 보이지만 이는 높은 진단 역량과 언론의 자유, 민주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체제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전직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장이었던 스콧 고틀립도 지난 22일 자신의 SNS를 통해 한국의 코로나19 검사 능력을 소개하면서 "상당한 진단 능력(a significant diagnostic capability)"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또 26일에도 "강력한 진단 능력(a robust testing capacity)으로 감염 사례를 찾고 대규모 감염집단을 격리하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대구 전수조사 끝나도 전국 곳곳 집단감염 여파로 환자 발생 급증할 수 있어
지난 26일 오전 9시 기준 국내 확진환자 현황
문제는 지금부터다. 정부가 예고한 대구 신천지 유증상자 신도에 대한 전수조사 완료시점은 바로 지난 26일이다.
이날 오전 9시 기준으로 전일 대비 총 253명의 환자가 추가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38%에 달하는 96명이 대구 이단신천지 관련 환자들이었다.
검사 시간 등을 감안하면 대략 오는 28일 오후쯤부터 이러한 신천지 관련 환자 증가폭이 줄어들면서 전체 환자 발생 추이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이미 전국으로 확산돼 부산 온천교회나 칠곡 밀알사랑의집 등에서 이미 관찰된 집단감염이 더 늘어난다면, 오히려 지금까지의 증가세를 뛰어넘는 지역사회 전파가 나타날 수도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현재 환자 발생 추이는 지금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감염돼 오염된 지역에서 발생한 문제"라면서 "현재로서는 경증 환자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과도한 공포감을 가질 것 없이 면역저하자, 고위험군 중심으로 방역 대책을 재편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시민들이 이동을 자제하고, 회사 등에서도 모임을 자제한다면 환자 확산은 꺾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공기 중 전파가 되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밀폐된 공간에서 상당 기간 모여야 감염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정부가 예상한 모든 것이 잘 이뤄졌을 때 얘기"라면서 "청도 대남병원과 같이 의료기관이 오염되거나, 뒤늦게 발견되는 지역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국립암센터 기모란 예방의학과 교수도 "환자가 너무 빨리 나오고 있어서 역학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증상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며 "경증 환자를 중심으로 환자가 늘었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반대의 상황이라면 문제가 된다"고 덧붙였다.
또 "방역당국이 아무리 열심히 검사해도 결국 시민들이 접촉을 멈춰야 확진자 발생과 전파가 멈춘다"며 "재택근무, 집회 자제, 개인 위생 등 방역당국의 여러 권고를 얼마나 많이 지키느냐에 따라 환자 발생 추이가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림대 성심병원 이재갑 감염내과 교수는 "서울이나 부산 등 지역에서 타이밍을 놓치면 대구처럼 환자가 발생할 수 있다"며 "대구도 입원 시설 등 준비되지 않아 고생했는데, 다른 지역에서도 대비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