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 민군복합항 (사진=해군 제공)
지난 7일 벌어진 제주해군기지 민간인 무단침입 사건은 작년 6월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에 따른 경계실패에 이어 1년도 안돼 해군기지가 민간인에게 무방비로 뚫렸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한미연합훈련은 물론 군의 야외훈련이 중단되고 장병들의 휴가와 외출·외박·면회가 금지된 상황에서 군의 경계와 대비태세 전반이 해이해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6월 북한 목선이 강원도 삼척항에 입항할 때나 불만을 품은 민간인들이 제주해군기지 무단침입할 때나 그 과정에서 군은 어떤 낌새도 알라차리지 못했고 경계망에 뚫렸다는 것을 안 뒤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작년 북목선 경계실패와 축소은폐 논란이 일자 정부는 합동조사에 나섰고 결국 '군의 경계실패'를 자인하고 사과했다.
당시 정부는 "해안경계작전은 레이더와 지능형영상감시시스템에 포착된 소형 목선을 주의 깊게 식별하지 못했고, 주간·야간 감시 성능이 우수한 열상감시장비(TOD)를 효과적으로 운용하지 못해 해안감시에 공백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북한 소형목선이 삼척항 방파제까지 입항한 것은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군으로서 경계에 실패한 것"이라며 결국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국민에게 사과했다.
북한 목선 사건은 군의 경계실패는 물론 삼척항으로 스스로 들어온 배를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했다고 해 축소·은폐 의혹에 대한 논란이 컸지만 제주해군기지 침입사건은 함정과 잠수함 등이 있는 해군의 핵심 기지가 뚫렸다는 점에서 더 중대한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7일 민간인들이 제주해군기지에 무단침입해 활보했지만 군은 1시간여 동안 경계망이 절단된 사실조차 몰랐고, 기지가 뚫린 사실을 알고도 즉각 대응하지도 못했다.
군의 합동검열 결과에 따르면 민간인 4명은 지난 7일 오후 14시 13분쯤 직경 4mm의 기지 외곽 미관형 경계휀스를 가로 52×88cm 크기로 절단한 뒤 2명이 기지 안으로 무단 침입했다.
상황실 감시병 2명이 CCTV로 감시를 하고 있었지만 전혀 이를 알지 못했다. 인접 초소 근무자가 경계휀스 절단을 발견한 것은 1시간여 가까이 지난 15시 10분쯤이었다.
보고를 받은 당직사관이 15시 23분 현장을 확인했지만 5분전투대기조 출동조치는 30분이 지난 15시 52분에야 이뤄졌다.
무단 침입한 민간인들은 기지안 도로를 걸어 구럼비 해안쪽으로 가 머물다가 16시 3분쯤에야 출동한 군인들에게 잡혀 경찰에 인계됐다. 부대 안으로 뚫고 들어온지 1시간 40여분 만이었다.
민간인들이 경계휀스를 절단하고 무단침입한 곳 근처에는 감시용 CCTV가 있었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휀스접촉이나 침입이 이뤄지면 상황실 감시화면에 경고 팝업창이 뜨고 경보음이 울리도록 됐으나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성능이 저하된 CCTV를 교체했지만 기존의 것과 호환이 안돼 수개월째 능동형감시 작동이 안됐던 것이다.
기존 CCTV를 납품한 업체가 설치한 것이었지만 호환이 되는지 안되는지조차 확인이 안돼 수개월째 경계·감시에 구멍이 뚫렸던 것으로 이외에도 수개의 CCTV가 아직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상황실 감시병 2명이 기지 안팎 72개에 달하는 감시화면을 모니터 하는 것 자체가 역부족이었지만 관행적으로 안이하게 경계근무가 이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절단된 경계휀스는 가정용 펜치에도 잘릴 정도로 약했다. 허술하고 안이한 경계시스템과 해마다 같은 날이면 항의성 시위가 반복되는데도 기지 경계에 대한 지휘소홀이 맞물려 불러온 경계실패 참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군은 "검열 결과에 따라 적시적인 지휘조치 및 감독소홀 등 책임있는 관련자에 대해 법과 원칙에 의거 엄정한 조치를 할 것이며,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경계작전 시스템 전반을 보완하겠다"고 밝히고 "경계작전 문제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매우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군이 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에서 열심히 대응하고 있지만, 결코 본연의 임무인 경계와 대비태세에 구멍이 생기고 사과를 반복하는 일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