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중장기적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정부가 마스크 제조업체에 기존 생산하던 'KF94' 대신 'KF80'으로 생산의 70%까지 전환하도록 요청을 하고 있지만, 정작 업계 반응은 시큰둥하다.
정부는 원자재가 덜 들어가는 KF80으로 전환해 마스크 '증산 효과'를 보고 공적마스크에도 KF80을 풀겠다는 계획이지만 실제 마스크 생산 속도는 KF94나 KF80이나 똑같다.
필터 업체들도 KF80용으로 바로 생산을 전환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지금까지 정부가 KF80은 '감염원 보호 기능이 없다'고 엄격히 못박아 왔던 터라 정부의 오락가락한 방침에 업체들은 혼란을 느끼고 있다.
◇정부, 'KF80은 감염원 차단 효과 없다'더니…"마스크 생산 KF80으로 바꿔라"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4일 브리핑에서 "KF94에서 KF80으로 생산을 전환하기 위해 설비 전환, 원자재 구입 등에서 물밑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다음 주부터는 가시적인 실적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식약처는 지난주 각 제조 업체에 <(긴급) 보건용 마스크 KF80 생산전환 협조 및 계획 제출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내 "각 제조업체에서는 반드시 MB필터 제조사와 협의해 KF80 필터를 주문하셔야 하며, 포장재 주문 등 KF80 생산 전환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F 인증 보건용 마스크의 핵심 자재는 MB(멜트블로운) 필터이다. KF80용 필터를 만드는 경우 KF94용 필터를 만들 때보다 핵심 자재가 20~30% 정도 덜 들어간다. 식약처는 이 핵심 자재를 덜 사용함으로써 마스크 생산량이 최대 1.5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스크 제조업체들은 정부가 지금껏 KF80은 효능·효과 면에서 '감염원 보호'가 되지 않는다고 못 박아 왔으면서 이제 와서 시민들에게 풀릴 공적 마스크를 KF80으로 바꾼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마스크 생산 현장 방문한 홍남기 부총리(사진=연합뉴스)
식약처는 지금껏 KF80 등급을 '황사·미세먼지 같은 유해물질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할 수 있다'는 명목으로 허가를 해줬다.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원으로부터는 보호 기능이 없다는 게 식약처 공식 입장이었다. 반면 KF94 등급은 '황사, 미세먼지 같은 유해물질 또는 감염원으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할 수 있다'고 허가를 내줘, KF94 등급 이상부터 '방역 마스크'라고 불렸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식약처는 제조업체가 KF80 마스크를 판매하면서 '감염원으로부터 보호'라는 문구로 홍보를 한 경우에는 '과대광고'로 처벌을 해왔다.
마스크 업계 관계자 A씨는 "식약처가 마스크 방역 기준을 엄격히 감시하다가 갑자기 낮추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에어로졸 형태로 3시간 이상 생존한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와 조심해도 모자랄 상황인데 왜 KF94 생산을 줄이고 KF80으로 바꾸라는 건지 모르겠다. 마스크 공급량에만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마스크 업계 관계자 B씨는 "정부 말대로 비말 전파만 막으면 된다는 목적으로 KF80으로 바꾸는 것이라면, 차라리 방수가 가능한 부직포를 여러 장 덧대 보건 마스크 모양으로 찍어내는 게 낫다. 그러면 장당 200~300원에 대량으로 시중에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내놨다.
◇"KF80으로 전환 준비하라"…업계 "현장 모르고 강요만 한다" 불만'KF94→KF80' 전환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현장의 상황을 잘 모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마스크 업계 관계자 C씨는 "KF80이나 KF94나 마스크를 찍어내는 속도는 같다"며 "필터 업체에서는 공정이 생산속도가 약간 빨라질지 몰라도 마스크 제조 공장에서는 생산량이 같다"고 말했다.
C씨는 "멀쩡히 KF94를 제조하고 있는 곳에 이를 중단하고 KF80으로 전환하라는 것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모르겠다"면서 "수요는 KF94가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라 KF80으로 바꿨다가는 시장에서 차별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KF94 포장지를 주문해 둔 것만 수억원에 달하는데, 제조업체가 '알아서 하라'고만 한다"면서 "매일 같이 식약처·경찰·산업통상자원부 사람들이 감시하면서 업체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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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씨 또한 "산자부에 보고하라, 식약처에 보고하라 등 보고하라는 게 너무 많다. 그 외 남은 시간을 쪼개서 제조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면서 "식약처에 보고하면 다른 부처까지 공유가 돼야 하는데, 다 부처별 양식대로 맞춰서 따로 보고하라고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필터 업계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필터 업계 관계자는 "식약처가 우리를 담당하는 것도 아닌데, 명령하는 것처럼 KF80으로 바꾸라고해서 불쾌했다"면서 "모든 제조 업체들이 KF94를 주력으로 하고 있는데, 계속 쓰일지도 모를 KF80용 필터를 무작정 찍어내라는 이야기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전체 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지, 하루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며 "1.5배 증산 계획은 단기간 목표가 아니다. 언론 전달 과정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법으로 정해진 마스크 방역 기준을 정부 스스로 낮추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 KF80으로도 충분히 (방역) 효과가 있다는 것은 전문가들도 하는 판단"이라면서 "시험 기준을 그렇게 잡지 않았을 뿐이지, 비공식적으로는 KF80도 어느 정도의 (방역)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KF80 효능·효과의) 규격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으니 앞으로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규격 완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