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문자메시지 발송 내역. 9시 19분 35초에 발송했다고 적혀 있다.(사진제공=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박근혜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9시 19분에 TV 속보로 사고를 인지했다는 그간의 주장과 달리 최소 그보다 10분 전 즈음에 사고 사실을 파악했던 정황이 새롭게 드러났다.
생존자들을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10분 가량 허비한 데 이어 조직적으로 최초 인지 시각을 속인 당시 청와대 인사들에 대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수사를 의뢰했다.
사참위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가 2014년 4월 16일 9시 19분 35초에 청와대 수석비서관·비서관·행정관 등 153명에게 <08:58분 전남 진도 인근해상 474명 탑승 여객선(세월호) 침수신고접수, 해경 확인중>이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관련자들의 진술과 474명이라는 탑승인원 숫자 기재, 확인에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최초 상황인지 후 문자메시지 발신까지는 10분 정도 소요됐을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청와대의 최초 참사 인지 및 전파 시각 관련 주장은 허위"라고 덧붙였다.
앞서 박근혜 청와대는 줄곧 참사 당일 '9시 19분에 YTN 자막방송을 통해 최초로 인지했고, 9시 24분 청와대 내부에 전파했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사참위 조사 결과, 당시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는 공식 발표보다 5분 앞선 '9시 19분'에 사고 사실을 청와대 인사들에게 이미 '전파'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라 사참위는 청와대의 최초 사고 '인지' 시점은 이보다 더 빠를 것으로 봤다.
사참위 박병우 진상규명국장은 "당시 위기관리센터 근무자는 '세월호 상황을 인지하고 약 10분 이내에 세월호 동보문자를 발송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진술했다"면서 "통상 상황을 인지하고, 관련 기관에 사실을 확인하고, 발송시스템에 접속하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10분 정도 소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간의 주장과 달리 청와대가 사고를 최초로 '인지'한 시점은 9시 19분보다 10분 빠른 '9시 9분' 즈음으로 추정된다는 게 사참위의 판단이다.
세월호 참사 한 달 후인 2014년 5월 15일, 당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재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결과 문서.(사진제공=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문제는 이후 이 같은 '청와대의 사고 최초 인지 및 전파 시각'이 조직적으로 조작됐다는 점이다.
사참위에 따르면, 참사 한 달 후인 2014년 5월 15일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수석비서관회의를 열고 정무수석에게 '조만간 국회 운영위가 개최될 가능성이 높으며 비서실이 한 목소리로 일목요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면서 '청와대의 세월호 참사 첫 보고 접수부터 내용전파에 이르는 과정을 정리해 보고하라'는 취지로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에 따라 위기관리센터 A 행정관은 정무수석실과 함께 '상황일지'를 정리했고, 감사원 제출 자료에 '09:19 YTN 통해 인지'→'09:24 청와대 전파'라고 기재했다. 이 자료는 대통령비서실로 제출돼, 2014년 당시 국회 국조특위와 국정감사 등에도 제출됐다.
이에 사참위는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규현 국가안보실1차장, 위기관리센터장, A 행정관 등 4명에 대해서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를 요청했다.
또한 김 국가안보실1차장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세월호 참사 최초 인지 및 전파 시각을 허위로 증언한 혐의(위증)로도 추가 고발했다.
13일 오전 서울 중구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문호승 상임위원이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의 최초 인지 및 전파 시각 등 관련 수사요청 기자회견'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사참위 문호승 상임위원은 "김기춘 등 수사요청 대상자는 발표된 시각인 9시 19분 이전에 정상 또는 비정상적 경로를 통해 (참사를) 인지했으면서도 이를 인정할 경우 긴박한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더욱 거세질 것을 우려했을 것"이라면서 "304명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피해에 책임지기보다는 회피하기에 급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사건의 발생 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관과 그 기관의 장 및 주요 책임자들이 그 사건을 인지한 시점과 초동조치를 취한 시점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런 시점은 과연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는지, 수색·구조 등 지시가 적재에 이뤄진 것인지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사참위는 정확한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봉인된 대통령기록물'을 사참위가 확보해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진상규명국장은 "최초 인지 경위와 시간이 바뀐 이유가 무엇이겠나. 어디선가 불상의 경로로 세월호 참사를 인지한 것"이라면서 "9시 10분 전후로 어디선가로부터 세월호 참사를 인지했다는 것인데, 현재 해경의 핫라인 통화 등 청와대 기록을 다 찾아봤지만 (인지 경위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국가기록원으로 다 넘어갔다고만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목적으로 하는 국가기관인 사참위가 이 기록을 확보하지 못하면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참위가 대통령기록물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방청한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장훈 운영위원장은 "참사 당시부터 가족들이 정부가 언제 인지했고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면서 "가족들이 제기한 의문들이 하나하나 밝혀지는 것을 보면 참담함을 금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국가안보실에서 대통령에 보고한 1보를 보면, 사고 시각을 8시 35분경이라고 지정했다. 대통령한테 보고하는데 누가 이런 터무니없는 내용을 올릴 수 있겠나"면서 "좀 더 세밀하게 조사해서 누가 어떻게 보고를 했고, 이 보고가 올라와서 왜 이렇게 조작이 됐는지 이런 것들을 좀 더 밝혀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국가기록원에 봉인된 기록을 사참위가 조사해야지 누가 조사한단 말인가. 국회에서도 이 부분 유념해서 여러가지 살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