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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신문 "축지법은 불가능" 기사 실은 이유는?

통일/북한

    북한 노동신문 "축지법은 불가능" 기사 실은 이유는?

    北 최고지도자 신비화에 활용된 '축지법'에 합리적 해설
    "축지법, 사람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건 불가능"
    김정은 시대에 변화된 선전선동 반영
    코로나19 경제위기 속 최고지도자 애민 이미지 강조

    (사진=연합뉴스)

     

    북한 노동신문이 20일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수령의 우상화에 활용했던 축지법의 신비적·주술적 요소를 부정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의 기사를 실어 눈길을 끌고 있다.

    노동신문은 이날 '축지법의 비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일성 주석이 지난 1945년 용천군 인민자치위원회 연회에서 한 얘기라며, 이른바 '인민대중의 축지법'에 대해 설명했다.

    노동신문은 축지법에 대해 "사실 사람이 있다가 없어지고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나며 땅을 주름 잡아 다닐 수는 없는 것"이라면서, "우리가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발톱까지 무장한 강도 일제와 싸워 이길 수 있은 것은 인민대중의 적극적인 지지와 방조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신문은 "일제는 방대한 병력을 동원하여 항일유격대에 대한 토벌을 감행하였는데, 놈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인민들이 얼마나 되는 토벌대 병력이 언제 어디를 떠나 어느 골짜기로 들어간다는 것을 지체 없이 우리 사령부에 알려주곤 했다"며, "그러면 우리는 유격대가 그 자리에 그냥 있는 것처럼 위장을 하고 실제 부대는 슬쩍 빠져서 매복하게 했다. 이것을 알 리 없는 일제 놈들은 이번에는 틀림없다고 호언장담하면서 들어왔다가 유격대가 한 명도 없는 것을 알고 아연실색하여 황황히 돌아서는데 이때 유격대가 불의에 불벼락을 안겨 몰살시키곤 했다. 이렇게 되자 일제 놈들은 유격대가 축지법을 쓰고 신출귀몰한다고 비명을 올리곤 했다"고 전했다.

    축지법에 대한 이런 현실적인 설명은 북한 교과서 등 주민 교육 교재에 실려 있는 얘기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 김일성 주석이 항일 무장투쟁시절 모래로 쌀을, 솔방울로 총알을 만들었으며, 축지법을 쓰는가 하면 가랑잎을 타고 큰 강을 건넜다는 전설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도 지난 96년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라는 선전 가요를 배포한 적이 있다. "축지법 축지법 장군님 쓰신다 /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천하를 쥐락펴락 / 방선천리 주름잡아 장군님 가신다"는 것이 가사 내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북한이 김일성·김정일이 썼다고 하는 축지법에서 신비적·주술적 요소를 제거하고 현실적인 내용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김정은 시대에 인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전선동의 내용과 형식이 크게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전략연구실장은 "스마트폰 보급 등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유입되는 외부정보가 급증하는 현시점에서 얼토당토않은 황당한 얘기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을 반영한다"며 "김정은 위원장의 스타일에 따라 선전·선동도 바뀌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노동신문은 결론적으로 "인민대중의 축지법, 바로 여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시었던 필생의 좌우명이 응축되어있고 혁명과 건설에서 언제나 승리만을 이룩할 수 있게 하는 근본비결이 무엇인가 하는 명백한 대답이 있다"며 "우리 수령님의 이민위천의 숭고한 뜻이 어려 있는 그 날의 뜻깊은 가르치심은 영원한 메아리가 되여 우리 인민의 심장마다에 혁명 승리의 귀중한 철리를 깊이 새겨주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민대중의 축지법에서 핵심은 '이민위천의 숭고한 뜻'에 있다는 얘기이다. 결국 최고지도자가 허황된 지도자가 아니라 인민의 삶과 밀착해 인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민위천의 인간적 지도자'임을 강조하는 맥락으로 풀이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왜 이 시점에 축지법에 대해 현실적인 설명을 하느냐가 포인트"라면서, "유엔의 대북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최고 지도자의 애민 이지미를 강조해 체제결속과 함께 정면돌파전을 적극 독려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김정은 위원장은 수령에 대한 신비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3월 전국 당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화면 진실을 가리게 된다"며 "수령은 인민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민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민의 영도자"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김 위원장이 김일성·김정일 선대와는 일정 부분 선을 그으면서 자기 스타일을 강조하려는 뜻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금강산을 둘러보면서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하여 금강산이 10여 년간 방치되어 흠이 남았다"며 "땅이 아깝다.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평가한 바 있다.

    여기서 선임자는 아버지인 김정일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됐고, 선대의 유훈을 중시하는 북한에선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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