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3주년 대국민 특별연설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해 연초 야심차게 기획했던 독자적 대북접근이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미국의 견제와 북한의 싸늘한 반응에 막혀 또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11월 미국 대선을 전후한 불확실성과 갈수록 거세질 미·중 갈등을 고려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촉박하다.
때문에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등을 맞는 다음 달이 남북 및 북미대화 선순환을 이끌어낼 거의 마지막 기회로 보고 사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미대화만 바라보지 말자"…운전대 다시 잡는 文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이제는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말고 남북 간에 있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은 찾아내서 해나가자"고 말했다.
연초부터 북한 개별관광 등 독자적 대북접근 방침을 밝혔지만 예상 밖의 코로나19 사태에 묻혔던 구상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이에 발맞춰 통일부는 남북 동해선 철도 연결사업에 착수하고 5.24 조치를 사실상 사문화하는 등 북측에 강한 대화 신호를 연거푸 발신하고 있다.
여권 인사들도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유엔 대북제재에 대한 '적극적 해석'을 주문하는 등 일제히 지원 사격에 나서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방역과 총선 승리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한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 더 절박한 이유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꽉 막힌 한반도 정세에 올해 안에 뭔가 돌파구를 내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 임기나 미국의 대선 일정 등을 감안할 때 동력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어깃장 놓는 미국, 시큰둥한 북한…미·중 갈등은 더 큰 악재
(사진=연합뉴스)
미국 측은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단독 플레이'를 경계하며 계기마다 견제구를 던지고 있다.
정부가 최근 5.24 조치의 실효성 상실 방침을 밝히자 미국 국무부는 즉각 북한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출 것을 요구했다. 비록 남북협력 지지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방점은 '비핵화 보조'에 찍혀있다.
미 국무부는 우리 정부가 북한 선박의 제주해역 통과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 대해서도 유엔제재 이행을 강조하며 사실상 반대했다.
그나마 '미국의 소리 방송'(VOA)의 논평 요구에 답변하며 수위 조절을 한 감은 있지만 미국 측의 불편한 심사를 읽어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실제로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지난 1월 외신기자 회견을 통해 개별관광 추진 방침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 측근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은 우리의 새 대북 구상을 "부적절하다"고 아예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북한 역시 손뼉을 마주치기는커녕 오히려 계속해서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달 초 전방 관측초소(GP)에 총격을 가해 남쪽 여론을 자극한데 이어 최근에는 '핵 억제력'을 다시 거론하며 위협 강도를 높였다.
일각에선 북한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는 대화·협상에 나서지 않는다며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미·중 갈등은 유례없이 악화되며 한국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양측의 신 냉전 기류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를 되살려 한반도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코로나19 변수도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 정세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6월이 거의 마지막 기회…놓치면 북핵문제 장기 표류 가능성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2018년 9월 20일 삼지연초대소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처럼 객관적 여건은 어렵지만 문재인 정부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고 좌고우면할 여유도 없다.
가장 심혈을 기울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북핵 해결에 또 다시 실패할 경우 그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렵다.
따라서 내년이면 사실상 집권 마지막 해를 맞는 현 정부로선 올해 안에 어떻게든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 6월이 최적이자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때마침 다음 달은 6.15 선언 20주년이자 6.25 전쟁 70주년을 맞는 시기적 상징성도 있다.
미국 역시 11월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경우는 물론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더라도 국정 전반에 대한 재검토(review)가 이뤄지는 사정이 있다. 상황에 따라 한반도 문제 해결이 지연되거나 아예 우선순위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
대선 준비와 코로나 대응에 바쁜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관여할 여력이 없다면 남북 간에라도 올해 안에 최대한 대화를 진전시켜야 할 사활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임종석 전 실장이 최근 "만약 올해도 북미 간에 진전이 없다면 (문 대통령은) 미국과 충분히 소통하되 일부 부정적 견해가 있어도 일을 만들고 밀고가려 하실 것"이라고 전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풀이된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위원은 "북한이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새 전략무기를 선보일 수 있고, 그럴 경우 미국은 더 강경하게 나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해도 대화 재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우리는 북한의 도발을 최대한 자제시키기 위해서라도 대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