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여정 제1부부장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암시한지 3일 만에 북한이 16일 전격적인 폭파를 실행했다.
북한 김여정 제1부부장은 지난 13일 대북전단 살포 관련 2차 담화에서 다음 단계 행동으로 "머지않아 쓸모없는 북남(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이라는 말이 건물의 폭파·해체를 암시한 대목이었지만, 이 때까지 만해도 의견이 분분했다. 북한이 설마 폭파까지야 가겠느냐는 일각의 기대도 있었다.
사무소 내 집기를 철거하고 연락사무소 간판을 내리든가, 좀 더 나아가 철거한 집기와 간판을 불태우는 퍼포먼스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마저도 15일 기자들과 만나 "(김여정 제1부부장이) 다음 단계에 연락사무소가 무너진다고 했으니 그 길로 갈 것"이라면서도, "물리적으로 폭파하는 단계까지 가는 것은 대단히 힘들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에 무색하게 북한은 김 제1부부장의 암시 3일 만에 속전속결로 폭파·해체를 단행했다.
(사진=연합뉴스)
김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이제는 연속적인 행동으로 보복해야 한다"며,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 우리는 곧 다음 단계의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여정이 강조한 '결별'의 의지가 이번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제대로 드러난 셈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인민군 무력시위 가능성을 예고한 김여정 담화는 13일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발표된 뒤 14일 노동신문에 게재됐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북한 주민들의 교육을 위한 학습 자료로 쓰인다. 김여정의 담화를 노동신문에 게재했다는 것 자체가 연락사무소 폭파로 가는 수순이었던 것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특히 15일 김여정 담화와 관련한 정세론 해설과 북창지구 청년탄광연합기업소 남천청년탄광 김혁 청년돌격대의 목소리를 실어 폭파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노동신문은 먼저 '끝장을 볼 때까지 연속적인 행동으로 보복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정세론 해설에서 김 제1부부장의 담화를 언급하며 "이미 천명한 대로 쓸모없는 북남(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고 그다음 대적 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에 위임될 것"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이어 '단호한 징벌의 시각만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우리 돌격대가 북남(남북)공동연락사무소인지 뭔지 하는 것을 콱 폭파해치웁시다", "왜 그뿐이겠나. 원수 놈들을 모조리 재 가루도 없이 날려 보내야지"와 같은 돌격대원들의 대화 내용을 전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연합뉴스)
특히 신문은 건물의 폭파·해체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서술을 이어갔다.
"얼마 후 그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쿵- 쿵- 둔중한 발파 소리가 막장을 뒤 흔들었다. 돌격대원들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천길 지심을 흔드는 발파소리, 온 나라 인민이 분노를 다소나마 식혀줄 무자비하고 단호한 징벌을 손꼽아 기다리며 날과 날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신문은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 게재에 이어 이에 대한 반향으로 '폭파해치우자'는 돌격대원들의 목소리를 전함으로써, 폭파 준비를 하고 있음을 북한 대중에게 알린 셈이다.
게다가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16일 "북남(남북)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들"에 군대를 다시 투입하는 군사행동계획을 예고했다. 남북 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들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지구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는 앞으로 개성공단 철거, 군대 투입, 군사 요충지로의 복원 . 9.19 남북군사 합의 파기 등으로 가는 전주곡일 수 있다.
김 제1부부장은 대북전단 관련 1차 담화에서 "응분의 조처를 따라 세우지 못한다면 그것이 금강산 관광폐지에 이어 쓸모없이 버림받고 있는 개성공업지구의 완전철거가 될지, 있어야 시끄럽기밖에 더하지 않은 북남(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마나한 북남(남북)군사합의파기가 될지 하여튼 단단히 각오는 해두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따라서 가장 수위가 낮은 남북 통신선 차단, 비교적 존재감이 없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개성공단, 군사합의 파기 수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북한은 과거에도 정치적 메시지를 강하게 표출하기 위해 몇 차례 '폭파 카드'를 쓴 적이 있다. 지난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2018년 풍계리 핵 실험장 폭파가 대화를 유도하는 메시지가 강했다면, 이번 남북연락사무소 건물 폭파는 대화 단절과 긴장 조성의 메시지이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그러나 두 방향의 메시지는 궁극적으로 미국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번 연락사무소 폭파가 우선적으로 우리 정부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지만 동시에 미국과의 협상을 압박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대선전이 한창인 미국에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15일 CBS에 출연해 "한국 내에서 남북의 화해협력을 바라는 많은 국민들이 기대를 접고 북한의 실체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아주 부정적으로 되새기는 결과가 될 것이고, 전 세계가 '북한이 이렇게 폭력적인 집단이구나, 도대체 건물이 무슨 죄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굳힐 것"이라며, "북한에게 정치적 효과가 크지 않고 결국 손해가 되는 부메랑"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서호 남북연락사무소장도 "그동안 북측이 거친 언사와 일방적 통신 차단에 이은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파괴는 우리 국민 뿐 아니라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며, "6.15 공동 선언 20주년 다음날 벌어진 이런 행위는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염원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