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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세 노인의 한숨 "폐지 주워 2천원…이젠 반찬 걱정"

사회 일반

    76세 노인의 한숨 "폐지 주워 2천원…이젠 반찬 걱정"

    [코로나에 더 가팔라진 보릿고개①] 임대주댁 독거노인 권영구씨
    "복지관에서 운영하던 무료급식소도 이제는 운영을 안 해"
    비대면으로 바뀐 봉사 문화…배고픔보다 큰 마음의 허기
    더 힘들어진 취약계층, 서로 도우며 삶의 의지 다져
    힘든 상황에서도 이어가는 기부활동…"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 도와야지"

    글 싣는 순서
    ①76세 노인의 한숨 "폐지 주워 2천원…이젠 반찬 걱정"
    (계속)

    권영구 할아버지가 거주하고 있는 서울시 양천구에 위치한 임대주택. 잠을 청하는 방은 이미 조리까지 이뤄지는 공간이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반찬 봉사가 중단되면서 끼니는 간편 식품으로 때우고 있는 상황이다.

     

    연탄이 수북이 쌓인 창고를 지나 사람 한 명 정도 지날 수 있는 통로에 들어서면 작은 현관문을 마주한다. 문을 열면 겨우 몸을 누일 수 있는 협소한 공간이 나오지만 습한 날씨 탓에 사방에 가득한 곰팡이와 함께 시큼한 냄새가 이내 코끝을 찔렀다. 거주 공간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열악했다.

    주방은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잠을 청하는 공간 한 켠에는 휴대용 가스버너와 오래된 전기밥솥, 그리고 숟가락과 그릇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휑한 냉장고 안에는 간단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만이 있을 뿐이다.

    적어도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상황이 이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서울 양천구의 한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권영구(76) 할아버지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운영 멈춘 무료급식소…끼니 해결이 제일 큰 걱정

    4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택시운전사 일을 하던 권 할아버지. 그러나 4년 전 그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법인 택시를 몰던 그는 "왜 노인네가 택시를 몰고 그러냐, 답답하다"는 승객의 모진 소리를 듣고 묵묵히 견뎌냈지만, 이 승객이 권 할아버지의 회사에도 고령의 운전사를 배치하지 말라는 항의를 하면서 등 떠밀려 운전대를 놓게 됐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권 할아버지는 재취업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이미 고령에 접어든 그를 불러주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폐지를 줍는 일을 하고 있지만 손에 쥐어지는 돈은 하루에 2천원 정도에 불과하다.

    가장 큰 걱정은 역시 끼니 해결이다. 그나마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무료 점심과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매주 두 번 반찬을 받아 식사에 대한 고민을 덜어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코로나로 인해 모두 어려워졌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인해 복지관 무료급식과 반찬 조리는 중단된 상태다. 그나마 매주 가공식품이 담긴 박스를 집앞에 두고 가는 비대면 봉사를 받으며 최악의 상태는 피했지만 예년에 비해 상황이 나빠진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권 할아버지도 "코로나19 이전에는 점심을 매번 복지관에서 해결했다. 근데 이제 무료급식은 중단됐다. 대신 복지관에서 즉석밥과 진공포장된 찌개 등을 받아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라며 "아무래도 복지관에서 먹을 때는 영양실조는 걱정도 안했는데 그때에 비하면 상황이 좋지 않다"라고 토로했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구조로 인해 집에 습기가 가득차면서 벽은 이미 곰팡이로 뒤덮였다. 코로나19 시대로 비대면 봉사가 이뤄지다보니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배고픔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마음의 허기'

    배고픔과 더불어 마음이 고픈 것도 권 할아버지를 힘들게 한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봉사원이 집에 반찬을 들고 방문해줬기에 소소한 대화라도 나눌 시간이 있었지만 코로나19 시대로 인해 모든 봉사가 비대면으로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이마저도 사라졌다.

    권 할아버지는 "봉사원들과 이런저런 얘기라도 주고받는 게 즐거웠는데 지금은 만나기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적적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 할아버지와 같은 주택에 거주하는 김경임(65) 할머니 역시 같은 심정이다. 김 할머니는 "예전과 비교하면 더 힘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주민센터와 대한적십자사에서 쌀과 음식들을 보내줘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을 대면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대부분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고 털어놨다.

    그나마 같은 공간에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권 할아버지는 허리와 어깨가 좋지 못해 거동이 불편한 김 할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다. 겨울이면 연탄을 대신 갈아주고 김 할머니가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하면 바로 찾아와 여러 도움을 주고 있다.

    건강이 좋지 못해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인 김 할머니는 "병원에 있을 때도 (권 할아버지가)많이 도와준다.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라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권영구 할아버지는 같은 주택 2층에 거주하는 허리와 어깨가 좋지 못해 거동이 불편한 김경임 할머니를 위해 겨울에는 손수 연탄을 갈아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나보다 더 힘들 사람들도 있어, 힘들수록 더 나눠야지"

    권 할아버지는 매달 국가로부터 노령연금 30만원을 받는다. 그리고 주민센터 어르신 일자리를 통해 동네 미화를 하면서 받는 금액이 27만원이다. 임대 주택이더라도 매달 35만원의 월세가 나간다. 57만원 중 월세를 빼면 22만원만 남았지만 당뇨병, 고지혈증 등 세월이 흐를수록 지병이 많아지면서 의료수급자로 선정됐고 올해 2월부터는 월세 35만원 중 26만원을 국가에서 지원받게 됐다.

    또 2017년부터 대한적십자사가 진행하는 '희망풍차 프로그램'(홀몸어르신, 아동·청소년 가정, 이주민 가정, 기타 위기가정 등 4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생계·주거·의료·교육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된 덕분에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신앙생활을 게을리하지 않는 권 할아버지. 다니는 교회에서 매달 3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권 할아버지는 한사코 이를 거부했다.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도와달라는 의중이 컸기 때문이다.

    권 할아버지는 현재 4개의 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다. 택시운전사로 근무할 때부터 이어오던 기부를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금액이 많지 않을 수 있겠지만 권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필요한 금액까지도 쪼개 취약계층을 돕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생활이 어렵지만 마음은 풍족하다는 마음가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권 할아버지다. 그는 "나보다 형편이 좋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는 그래도 도움을 받고 있으니 괜찮다"라며 "지금은 능력이 안 돼서 예전만큼의 금액을 후원할 수는 없지만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힘들수록 나눠야 한다"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대한적십자사는 코로나19로 더 힘들어진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여러분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모금액은 양천구 희망풍차 네트워크 사업을 위해 사용될 예정입니다.
    후원계좌 : 국민은행 091-01-0237-649 (예금주 : 대한적십자사서울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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