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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대타협' 거부한 민주노총, 무슨 일 있었나

경제 일반

    '노사정 대타협' 거부한 민주노총, 무슨 일 있었나

    노동계 핵심 요구였는데…합의안에서 사라진 '해고 금지', '사회안전망 강화'
    기업 지원은 구체적인데 고용 의무는 모호한 표현으로 일관해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 내부 반대에도 협약 체결 강행하다 발목 잡혀
    '대타협'에 매몰돼 지나치게 서둘렀나…"정부가 보완방안 준비했어야"
    민주노총, 2일 재논의하지만…해법 찾기는 어려울 듯

    이날 협약식에는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참석했으며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불참했다. (사진=박종민 기자)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추진됐던 노사정 대타협이 협약 체결을 눈앞에 두고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비정규직 고용을 지키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빠진 '반쪽짜리 협약'인데다, 집행부가 협약 참여를 일방적으로 강행했다는 것이 민주노총 내부의 불만이다.

    ◇합의문에서 사라진 '해고 금지'·사회안전망 강화' 조항

    지난 1일 정세균 총리 등 노사정 대표가 모여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식'을 진행하려 했지만, 행사 직전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의 불참으로 협약 체결이 취소됐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이번 노사정 합의안 반대에 가장 앞장 선 조직은 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애초 노동계가 가장 강조했던 '해고 금지', '사회 안전망 확보'에 대한 구체적·강제적 조항이 없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리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협약식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물론 실무진이 아닌 대표자 회의 급에서 작성하는 합의문은 추상적인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해고 금지' 원칙 없이 "고용이 유지되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모호한 언급에 그쳤지만, 노동자에 대해서는 "기업이 근로시간 단축, 휴업 등 고용 유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적극 협력"한다는 구체적인 표현까지 담겼다.

    기아차 비정규직 지회장 출신인,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김수억 공동소집권장은 "예컨대 기간산업안정기금 40조원 지원 조건으로 '정규직 90% 고용 유지'가 제시됐는데, 기간산업 정규직은 노조의 보호 아래 해고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며 "정작 보호가 절실한, 노조도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해고 금지 조치에 대해서는 언급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노사정 합의안에서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지원대상 기업의 고용보험 가입자'만을 대상으로 고용총량의 90%를 유지하도록 했기 때문에 사실상 비정규직은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를 위해 정부가 약속한 전 국민 고용보험 역시 기존 정부안에서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정부가 국회에 발의한 관련 법 개정안으로 고용보험 보호를 받게 될 노동자 수는 겨우 77만명,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 1천만명은 물론 특수고용노동자 약 150만명도 충분히 구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연말까지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로드맵을 세우고, 특수고용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을 위한 정부 입법을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이것도 노동계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정부 입장을 그대로 옮긴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1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실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중집 회의장으로 향하던 중 노사정 합의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비정규직 조합원 등의 항의를 받자 생각에 잠겨있다. (사진=연합뉴스)

     

    ◇내부 반발 무릅쓰고 협약 체결 밀어붙이려다 발목 잡힌 김명환 위원장

    이번 노사정 대타협 무산 사태는 표면상으로는 위의 '강경파'가 김 위원장의 협약식 참석을 물리적으로 막아세우면서 빚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따져보면 애초 민주노총은 이번 합의안에 공식적인 동의 절차를 밟은 적이 없었다.

    이번 노사정 대화에 참여한 주체들은 집중교섭 끝에 마련한 잠정 합의안에 대해 각자 내부 추인을 받은 뒤 협약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민주노총도 지난 달 29일부터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잠정 합의안을 논의했지만, 찬반이 엇갈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게다가 민주노총 집행부는 중앙임원 등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중집에서 논의한 것으로 협약에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반대파는 노사정 합의 여부는 가맹조직 대의원이 모두 참여하는 대의원대회를 거치는 것이 관례라고 반발해왔다.

    실제로 지난해 1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여부나 2004년 이수호 전 위원장 시절 사회적 교섭 추진 여부를 결정할 때도 대의원대회를 거쳤다.

    중집에서 합의안 내부 추인 안건이 표류하자 김 위원장은 "일부 중집 성원들이 일관되게 (합의안을) 폐기해야 된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그것을 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이 내 판단이고 소신"이라며 강행 돌파 의지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2017년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당선될 당시부터 현재 경사노위의 모델이 된 '신(新) 8자회의론'을 공약으로 제시하는 등 사회적 대화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왔고, 이번 노사정 대화 역시 김 위원장이 적극 나서서 물꼬를 텄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막판 합의안 추인을 위해 지난 1일 오전 9시 중집을 소집했는데, 이날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할 예정이었던 협약식 일정은 이미 전날부터 예고됐던 터였다.

    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장으로 향하다 노사정 합의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비정규직 조합원 등의 항의를 받자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내부 반대 의견에 관계없이 위원장 직권으로 협약에 조인한 뒤, 위원장 직을 걸고 추후 승인을 받는 '강경' 조치를 내릴 계획이었다는 추측도 나온다.

    ◇당장 실현 가능한 안건부터 협의했어야…이제는 해법 찾기 어려울 듯

    이처럼 협약 체결을 서두른 것은 김 위원장만이 아니다.

    한국노총은 지난 달 24일 "6월 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중대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그때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와 경영계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기 위한 카드였지만, 그만큼 노동계가 '현재진행형'인 코로나19 위기 속에 서둘러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압박에 놓였던 것으로도 읽힌다.

    정부 역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양대노총이 모두 참여하는 '완전체 합의'를 달성하는 업적을 세우겠다는 욕심이 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노사정은 실무 협의 끝에 △고용 유지를 위한 정부 지원 및 노사 협력 △기업을 살리기 위한 노사 상생협력 △취약계층 사회안전망 확대 △국가방역 및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 △포스트 코로나 체계 구축 등 5개 의제를 놓고 대화를 이어왔다.

    당장 자영업자의 폐업과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우선순위에 따라 당장 시행 가능한 조치부터 우선 합의한 뒤 이를 발판으로 협의를 이어가는 단계적인 접근 대신, 주요 의제를 모두 포괄한 '대타협'부터 진행하겠다는 욕심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김성희 소장은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더 확실히 얘기하는 것이 필요했다"며 "해고 금지, 총고용보장의 경우 정부가 이를 보장할 수 없더라도 보완방안을 더 치밀하게 다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2일 오후 5시 다시 중집을 열고 합의문 추인을 시도할 예정이지만, 찬반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 뾰족한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만약 민주노총이 합의문의 수정을 요구하더라도, 나머지 노사정 주체들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상 협약 조인이냐, 거부냐 양자택일만 가능한 상황이어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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