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최평정 씨 제공)
"우리 좀 살려 달라"
2년의 무급휴직을 끝내고 현장 복귀에 들떠 있던 STX조선 노동자 500여 명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사측이 경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무급휴직을 더 연장하겠다고 하자 "또 고통을 견뎌내야 하냐"며 무기한 파업 투쟁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현장 대신 매일 아침 경남도청 앞으로 출근한다. 벌써 한 달이나 됐다. 배를 만들 연장을 잡고 있어야 할 손에는 "정부와 경남도, 산업은행은 책임져라", "생존권을 보장하라" 등의 내용이 담긴 현수막과 팻말이 들려 있다.
노동자들은 이런 악몽 같은 날이 올 줄이라고 꿈에도 생각 못 했다. 2018년 노사가 합의할 때도 2년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다.
2년 동안 6개월씩 2차례 무급 휴직을 하는 동안에도 어떻게든 가족을 부양하려고 막노동을 하고 배달을 하는 등 하루하루 벌면서 안간힘을 썼다.
2일 도청에서 만난 박신용(51)씨는 진해가 고향이다. 1996년 훈련생으로 입사한 그는 STX조선 역사를 함께 한 산증인이다.
박 씨는 첫 순환 휴직 기간이었던 2018년 12월을 잊을 수 없다. 4대 보험 가입자라 취업도 어려웠지만, 결국 노력해 임시로 부산의 한 4차 협력업체 수준의 조선소에 일자리를 얻었다.
25년 동안 주로 선체 내부를 보강해주는 기술을 인정받아 나름 선각 작업의 전문가로 불렸지만, 그곳에서는 아니었다. 그런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신용 씨 뒷모습. (사진=이형탁 기자)
선주들이 "참, 배 잘 만들었다"고 칭찬이 잦던 STX조선 소속의 노동자라는 박 씨의 자부심은 어느새 사라졌고 좌절감과 우울감이 지배했다. 겨우 잡았던 일자리도 2개월 만에 해고됐다. "물량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아내와 대학생 자녀 2명을 둔 박씨는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녀가 둘이라 1년 대학 등록금만 해도 1500만 원에 이른다. 가족 모두가 일해도 돌아오는 건 빚.
박 씨는 "정규직으로 입사해 잘 살아왔었다"며 "이렇게 물량이 없다고 일감이 없다고, 50대 초반에 길거리에서 일자리를 달라고 구걸할 줄은 몰랐다"고 허탈해했다.
최평정(37)씨의 첫 마디는 "부끄럽다"였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STX에 취직했다며 주위에 자랑도 해 어깨에 힘도 들어갔다. 그는 이제 STX가 부끄럽다고 한다. 최 씨는 "내가 직장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분간이 안 간다"고 말했다.
(사진=자료사진)
그도 박 씨처럼 순환휴직 동안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부산의 한 부두에서 일당 7만 원을 받고 컨테이너 잡일을 했고, 전선 공장에서도 일했다. 피자 배달도 뛰었고, 모텔 카운터에서 손님도 받고, 막노동도 했다.
그래도 돈은 부족했다. 아내가 임신 중이라 일하기 힘들었고, 대출도 심사에서 걸렸다. 결국 도움을 청한 곳은 부모와 장인·장모였다.
최 씨는 "이 나이에 장인, 장모, 부모한테 돈을 받는데 너무 부끄럽고 민망하다"며 "귀한 딸 데려와서 참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STX조선 사측은 최근 순환휴직과 인적 구조조정 등의 자구 노력에도 경영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며 고정비 절감을 위해 또다시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을 통보했다.
산업은행은 '노사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경남도는 노동자들과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나 뾰족한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산업은행과 STX조선은 대안을 내놔라"며 내일도 일터가 아닌 경남도청 앞으로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