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서 농사를 짓는 이충민(34) 씨는 요즘 수확을 눈앞에 둔 옥수수밭을 보면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
공들여 기른 옥수수밭이 멧돼지들의 공격으로 쑥대밭이 됐다.
이씨는 지난해 농어촌공사에서 논 2천696㎡를 빌려 올해부터 옥수수 농사를 시작했다.
임대한 논에 5년간 의무적으로 밭작물을 심도록 한 농어촌공사의 규정 때문에 옥수수 재배를 택했다.
논을 밭으로 가꾸기는 쉽지 않았다. 15t 트럭 5대 분량의 거름을 쏟아붓고 트랙터와 포크레인을 동원해 평탄 작업을 하는 데 500만원이 들었다.
적지 않은 목돈이 들었지만, 정성을 쏟은 것에 보답하듯 쑥쑥 자라 야무지게 달린 옥수수가 익어가는 것을 보며 위안으로 삼았던 이씨는 지난달 25일 밭을 둘러보다 깜짝 놀랐다.
수확을 10여일 앞둔 옥수수밭이 난장판이 돼 있었다.
사람 키를 훌쩍 넘긴 옥수수 대는 힘 없이 쓰러져 있었고, 막 영글기 시작한 옥수수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멧돼지의 공격은 이날부터 이달 3일까지 열흘 가까이 계속됐고, 이 씨의 옥수수밭은 절반가량이 피해를 봤다.
초평면에서 멧돼지 피해를 본 농민은 이씨뿐이 아니다.
최모(55) 씨와 김모(49) 씨의 고구마밭은 바닥이 훤히 드러나도록 들쑤셔졌고 막 달리기 시작한 고구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멧돼지들은 장모(52) 씨의 과수원 사과나무까지 쓰러뜨렸다.
지난달 말부터 현재까지 초평면에서만 5개 농가 2천㎡의 밭과 과수원이 멧돼지 피해를 봤다.
멧돼지들은 7마리가 떼 지어 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밭작물을 먹어치우고 땅을 헤집어놨다.
야생동물 피해를 본 농가에 대해 보상금이 지원되지만, 피해액보다는 턱없이 적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통계청의 작물별 소득 단가를 기준으로 보상액이 산정되는 데 이 소득 단가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생동물 피해 방지를 위한 노력 등을 판단해 보상금을 감액한다.
이씨는 수백만원의 피해를 봤지만, 보상금은 88만원에 불과하다. 다른 피해 농민들도 손에 쥔 보상금은 고작 수십만원이다.
농민들은 "야생동물 퇴치를 위해 그물망이나 전기 철조망을 쳐보지만 무용지물"이라며 "소득 단가를 현실화해 보상금을 적정하게 산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진천군은 6명이 한 조를 이루는 포획단 5개 조를 연중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멧돼지를 완전히 퇴치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어서 농민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멧돼지 포획단 김병호(51) 씨는 "최근 초평면에서 어미 멧돼지 2마리를 잡았지만, 진천 일대를 무리 지어 다니는 멧돼지의 일부일 뿐"이라며 "해마다 수백마리를 잡지만 최상위 포식자인 멧돼지 개체 수가 급속히 불어나 퇴치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