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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리뷰]北, 트럼프 저울질로 장기전 포석…文대통령 시험대

국방/외교

    [한반도 리뷰]北, 트럼프 저울질로 장기전 포석…文대통령 시험대

    김여정 "미국이 아무리 원해도 올해 북미회담은 NO…우리에게 무익"
    美 대선 향배 불투명, 회담 잘해야 본전…하노이 노딜 학습효과도 영향
    독립기념일 DVD로 유화 제스처…정상간 '친분'외 美 대중정서까지 계산
    '적대시 철회해야 협상 시작' 문턱은 더 높아져…정부 어려운 숙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10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를 통해 미국의 북미대화 제의를 거듭 일축하며 장기전 태세에 돌입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나는 조미(북미) 사이의 심격한 대립과 풀지 못할 의견 차이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미국의 결정적인 입장 변화가 없는 한 올해 중, 그리고 나아가 앞으로도 조미수뇌회담이 불필요하며 최소한 우리에게는 무익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두 수뇌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라며 일말의 여지를 두긴 했지만 객관적 여건상 장기전이 불가피함을 설파했다.

    ◇김여정 "미국이 아무리 원해도 올해 북미회담은 NO…우리에게 무익"

    장문의 이날 담화는 핵협상에 대한 북한의 기존 논리구조를 따르고 있지만 '제2인자'의 언명이란 점에서 훨씬 무게감이 실린데다 내용도 비교적 분명하고 상세했다.

    그는 우선 11월 미국 대선 전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국이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우리가 받아들여주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정상회담 중 심각한 표정의 트럼프-김정은. (사진=연합뉴스)

     

    미국이 "우리를 눅잦히고(누그려뜨리고) 발목을 잡아 안전한 시간을 벌자는"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장관이 대화 메시지를 건네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차 북미정상회담을 언급한 속내를 간파했다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같은 전략적 도발 행위로 미국 대선 판을 흔들 것을 우려해 상황 관리에 진력해왔다.

    다만 김 부부장은 이날 담화에서 "우리를 다치지만 말고 건드리지 않으면 모든 것이 편하게 흘러갈 것"이라며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의 조건부 유예 방침을 지속할 뜻을 시사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이 지금의 대선 '위기'를 넘긴다 해도 그 이후 (북한에 대한) 수많은 적대적 행동"이 있을 것을 예견하며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 (사진=연합뉴스)

     

    ◇美대선 향배 불투명, 회담 잘해야 본전…하노이 노딜 학습효과도 영향

    김 부부장이 장기전을 천명한 핵심적 이유는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미국 대선의 향배가 매우 불투명한 상황에서 현 시점의 북미대화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판단에서다.

    만약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승리할 경우 북미대화는 원점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해도 전례로 볼 때 지켜진다는 보장이 없다.

    둘째, '하노이 노딜' 학습효과다. 김 부부장은 북미 정상 간 친분관계를 강조하면서도 "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 여하에 따라 대미전술과 우리의 핵계획을 조정하면 안 된다"고 경계했다.

    이어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과도 상대해야 하며, 그 이후 미국 정권, 나아가 미국 전체를 대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하노이 회담이 존 볼턴 당시 백악관 보좌관 등의 훼방으로 결렬됐다는 뼈저린 경험과 인식의 결과로 이제는 미국 조야로도 시야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그는 볼턴에 대해 "쓰레기"라 칭하며 이날 담화에서 유일하게 막말을 했고, "조미 수뇌들 사이의 관계가 좋다고 해도 미국은 우리를 거부하고 적대시하게 되어있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도 보여줬다.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 부부.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독립기념일 DVD로 유화 제스처…정상간 '친분'외 美 대중정서까지 계산

    이날 담화는 북한의 장기전 수행의 방향에 대해서도 암시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조건부 도발 유예 방침과 함께 김 부부장의 대미 유화적 제스처다.

    그는 공식 담화로는 이례적으로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 시청 소감과 이를 녹화한 DVD를 소장하려 한다는 매우 개인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영국 식민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기리는 독립기념일 DVD가 구체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미국인들에게 호의적 이미지로 다가설 것이란 점이다.

    이날 담화는 미국의 일방적 협상 태도를 비판하긴 했지만 전반적 어조는 절제되고 차분했다. 전날 비건 부장관이 최선희 부상을 가리켜 "낡은 사고에 갇혀있다"고 비판했던 터라 북한이 크게 반발할 것이라는 일반적 예상은 빗나갔다.

    김 부부장의 태도는 최근 남측에 원색적 말 폭탄을 퍼부었던 것과는 전혀 딴판으로, 미국 대중의 정서까지 계산에 넣은 심모원려로 보인다.

    여기에는 장기전 상황에서 전략적 도발은 꼭 필요한 경우 아니면 자제해 '실탄'을 아껴둬야 한다는 고육책도 엿보인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단기간에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절회는 어렵다고 보고, 앞으로는 이전과 같은 연속적인 군사 도발을 통해 단기간 승부를 보는 벼랑끝 전술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적대시 철회해야 협상 시작' 문턱은 더 높아져…정부 어려운 숙제

    다만 북한은 장기전에 돌입한 이상 하노이 회담에서의 '비핵화 대 제재해제' 교환 조건을 바꿔 협상 문턱을 크게 높였음을 재확인했다.

    미국이 제재해제 뿐 아니라 체제안전보장까지 망라하는 포괄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비로소 북미회담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호가를 높여 부르는 협상용 전술이지만, 안 그래도 큰 북미 간 입장차가 더 크게 벌어지는 것이어서 이래저래 장기전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로선 남북협력에 대한 미국의 강력지지 입장을 얻어내긴 했지만, 이것만 갖고는 중재자 역할을 재가동하는 충분한 동력을 만들어낼 수 없다.

    정대진 아주대 교수는 "우리 정부는 현 시기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현상 타파를 원하는 세력이라 볼 수 있는데 북미 간 '현상유지 대 현상타파'라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숙제를 받아든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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