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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추모한 유명인들은 왜 '실드리스트'에 올랐나

문화 일반

    박원순 추모한 유명인들은 왜 '실드리스트'에 올랐나

    일부 유명인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추모글로 피해자 '지우기' 논란
    "'2차 가해' 없다", "잘못 모르겠다" 등 피해자 언급에 2차 가해 지적도
    문화평론가 "수사 종결이니 '불문'에 부치자? '내로남불' 기득권 발상"
    여성인권운동가 "영향력에 책임감 있다면 2차 가해 정당화 근거 주지 말아야"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이 13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엄수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한 추모와 장례방식을 두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일부 유명인사들의 발언이 박 전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를 지운다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류근 시인은 지난 10일 박 전 시장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SNS에 "살아서 악마들에게 시달리느니 죽어서 신에게 심판받길 선택한 건가"라며 "아, 여기가 마침내 지옥"이라고 성추행 의혹으로 죽음에 이른 박 전 시장을 향한 부정적 여론과 상황을 '악마'와 '지옥'에 빗댔다.

    그는 '조문 보이콧'을 밝힌 정의당 류호정 의원을 향해서도 "'구상유취', 입에서 젖내가 난다"면서 "당신들 100만 명의 정의감과 도덕성보다 나는 박원순의 단 하루가 더 아쉽고 아깝고 안타깝다. 정치를 동아리방에서 하나. 어른까지는 아니어도 인간도 안 된 것들이 정치는 무슨"이라고 비판했다. 류 의원의 사진도 함께 올렸지만 논란이 일자 해당 게시물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류근 시인은 12일에도 "정신적 결벽증에 대해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죄가 있으니 죽었다고 주장한다. 비겁하다고 욕한다. 뭐든 자기 기준에서, 자기 눈높이에서 해석하고 해부한다. 말이 칼이 되고 오물이 돼 넘치는 시대. 비애롭다"라고 지적했다.

    전우용 역사학자와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박 전 시장을 고소한 피해자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전 역사학자는 11일 SNS에 박 전 시장을 기리며 "그가 두 여성(아내와 딸)에게 가볍지 않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건 안다. 그가 한 여성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른다"고 밝혔다.

    이어 "나머지 모든 여성이, 그만한 '남자사람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원순을 빼고, 한국 현대 여성사를 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박 전 시장이 여성인권에 기여했던 족적에 주목했다.

    황 칼럼니스트는 11일 박 전 시장 조문을 다녀온 후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남긴 입장문에 반박을 펼쳤다.

    심 대표는 이날 짧은 입장문을 올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이와 동시에 "이 상황에서 가장 고통스러울 수 있는 분 중 한 분이 피해 호소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해 호소인에 대한 신상털기나 2차 가해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호소드리고 싶다"고 피해자 보호를 당부했다.

    황 칼럼니스트는 이를 두고 "'피해 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고소인을 약자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이다. 주장만 있고 사실 확인이 안 되어 있는 상태"라며 "이럴 경우 '고소인'이라 쓰는 게 맞다. 정의롭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2차 피해'는 '1차 피해'가 확인됐을 때에나 쓰일 수 있는 말이다. 고소인의 주장만 있었지 그 피해가 확인된 바가 없으므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고소인에 대한 피해는 '1차 피해'이다. 고소인에게 그 어떤 피해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여성계는 이처럼 박 전 시장을 감싸고, 피해자를 무시하는 분위기를 두고 "성폭력 가해에 이용된 권력이 또 다시 가해자를 비호하고, 사건의 진상 규명을 막는 것에 분노한다"(한국여성의 전화),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피해자의 용기에 오히려 2차 피해를 가하고 있는 정치권, 언론, 서울시 그리고 시민사회에 분노한다"(한국여성민우회), "박 전 시장은 과거를 기억하고 말하기와 듣기에 동참해 진실에 직면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길에 무수히 참여해왔다. 그러나 본인은 그 길을 닫는 선택을 했다"(한국성폭력상담소) 등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관련 발언을 접한 네티즌들은 해당 추모글이 피해자를 교묘히 지우고 있거나, 2차 가해를 조장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성추행 고소 이후 사망한 박 전 시장의 장례가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러지는 것에 대한 국민 여론도 갈리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의 동의자 숫자는 3일 만에 56만 명을 넘어섰다.

    뿐만 아니다. 황 칼럼니스트의 주장과 달리 박 전 시장을 고소한 피해자 신상털기 등 2차 가해는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12일 한 인터넷 언론사 게시판에는 사진과 함께 피해자 신상을 특정한 글이 올라왔고 이미 SNS를 중심으로 피해자 신상 루머까지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피해자가 경찰에 SNS 등 증거자료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이번 사건은 피고소인인 박 전 시장의 사망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진상 규명이 불가한 상황을 초래한 것이 박 전 시장 본인인 만큼, 이를 빌미로 피해자나 피해 증거 자체를 '없는 일'이나 '모르는 일'로 취급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황진미 문화평론가는 "폭로도 아니고 피해자가 경찰서에 변호사를 대동하고 가서 증거를 제시해 고소를 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 진행이 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없었던 일인양 덮고, 죽은 사람은 방어권이 없으니 불문에 부치자는 태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무고이고, 결백하다고 믿는다면 오히려 진실을 밝혀 박 전 시장의 명예를 회복하자고 나서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이런 것도 아니고 그냥 눈과 귀를 닫고, 어떻게 감히 신성한 진보의 가치를 사수해 온 고인을 욕되게 하느냐는 호통이 전부다. 2차 가해를 문제시하는 성인지 감수성도 없을 뿐더러 올바른 가치와 정당성을 상실한 '내로남불' 기득권적인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추모는 개인 표현의 영역이지만 피해자 언급과 관련해서는 사회적 영향력이 큰 유명인이라면 발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여성인권운동가는 "그들이 적어도 책임감이 있다면, 피해자 신상을 털고, 추정 사진을 돌려보는 그 행동이 정당화되는 근거를 주지는 말아야 한다. 그런 방향으로 메시지가 가는 것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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