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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청춘아, 내 청춘아"…오늘도 물질 나가는 해녀

영동

    [르포]"청춘아, 내 청춘아"…오늘도 물질 나가는 해녀

    • 2020-07-21 05:05

    [강원 동해안 해녀들의 이야기①]
    질환 안고 사는 해녀들…고령화에 사고위험 '노출'
    동해안 해녀들 매년 사고 이어져…70대 이상 80%


    ※해녀 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지 올해로 3년째다. 해녀들의 삶에는 변화가 있었을까. 지방도시 인구소멸 위기까지 나오는 강원 지역에서 해녀들의 고령화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해녀들이 고령화하면서 매년 안타까운 사망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강원영동CBS는 해녀들의 삶을 조명해 보고, 보존·계승 움직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짚어보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르포]"청춘아, 내 청춘아"…오늘도 물질 나가는 해녀
    (계속)
    강원 강릉 영진해변에서 해녀들이 물질을 하러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사진=유선희 기자)

     

    장맛비가 한차례 지나고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지난 8일 찾은 강원 강릉 영진해변. 파고를 확인하고 바다로 향하는 해녀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영진해변에서 물질하는 해녀는 모두 4명. 이른 아침부터 해녀들은 허리에 납을 차고, 한쪽 어깨에 망태기를 짊어지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요즘 마땅한 수산물이 없어 고민이 많지만 "물질하기에 딱 좋은 날씨지"라고 말하는 해녀들의 목소리가 밝았다. 취재진에게 힘차게 손을 흔들고 바다로 들어간 해녀들은 그렇게 3시간 가까이 물속을 누볐다. 규칙적으로 백사장에 몰려오는 파도만이 주변의 정적을 깼다.

    햇빛이 강렬히 내리쬐는 오전 8시 40분쯤 해녀들은 성게를 가득 담은 망태기를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물질의 강도를 실감케 하듯 해녀들은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 굽은 등과 허리는 그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해녀들은 잠시나마 쉴 틈도 없이 해녀 웃옷만 겨우 벗어내고 짐을 그대로 들고는 집으로 향했다. 환복과 아침 식사를 위해서다. 바쁘게 아침을 먹은 해녀들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 잡아 온 성게를 정리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보통 약 8시간 정도 소요되는 고된 노동이다.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사진=유선희 기자)

     

    "청춘아~ 내 청춘아~~ 죄 많은 내 청춘아~"

    성게알을 발라내던 신차순(81) 해녀가 박철로의 '죄 많은 내 청춘' 노래의 한가락을 뽑아낸다. 일에만 몰두하던 동료 해녀들이 모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흥겹게 노래를 마친 신 해녀는 씁쓸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나이 먹는 게 서글퍼... 뭐 하다 나이 먹었나 싶어서... 나이 젊어서 그렇게 숱한 고생을 하다가 이제 할 만하니까 늙어서 꼬부랑 할머니가 되니 서글프지 안 서글프나..."

    영진해변에서 가장 고령인 해녀 신씨의 주름진 얼굴에 젊은 날의 청춘이 묻어났다.

    해녀들은 대부분 50년 이상 된 베테랑이지만, 한해 한해 지날수록 힘에 부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가장 나이가 적은 해녀는 70살로 70대 3명, 80대 1명이다. 활동하던 해녀들이 힘에 부쳐 일을 그만두고, 더이상 뒤를 이을 해녀들도 없어 눈에 띄게 줄었다. 타지역 해녀들의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질을 마친 강릉 영진해변 해녀들이 성게알을 분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유선희 기자)

     

    영진해변 해녀들에 따르면 50여 년 전만 해도 11명이 함께했다. 하지만 점점 줄어들다가 현재는 4명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동료 해녀 1명이 조업에 나섰다가 숨지면서 4명이 됐다.

    앞서 지난 2월 14일 영진해변 앞 약 50m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해녀 A씨(77)가 의식을 잃었다. 동료 해녀들의 신고로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동료 해녀의 사망은 그 어떤 사건보다 가슴 저릿한 일이다.

    사망한 동료 해녀와 나이가 같은 이순자(77) 해녀는 "예전에 심장수술을 해서 심장이 좋지 않았고 사고 당일 바닷물이 차가웠던 게 안 좋았던지, 그날따라 수영이 잘 안 된다고 말하더니 별다른 작업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됐다"며 "저희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물질을 했는데 잘못됐으니 너무 놀랐고, 동네가 난리가 났었다"고 사건 당일을 떠올렸다.

    동료 김영택(78) 해녀는 "해경에서 출동해 구조하고 이런 것들을 다 봐서 그런지 그날 일들이 생생하고 너무 충격받아서 신경안정제를 사다 먹었을 정도였다"며 "늘 한 팀을 이뤄 일을 나갔으니 마치 내 일 같기도 해서.. 우리는 그날 일 이후에 20일 정도 물질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최근 5년 간 강원 동해안 해녀사고 현황으로, 사고의 80%(10명)가 70대 이상에서 발생했고 이중 90%(9명)가 사망했다.(자료=환동해본부 제공)

     

    가뜩이나 잠수병 등 여러 질환을 안고 일하는 해녀들은 고령화까지 맞물리면서 사고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크다. 동해해양경찰청이 지난 2016년부터 올해 6월까지 동해와 속초, 울진, 포항 등 동해안에서 파악한 해녀 사고 현황에 따르면 매년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고의 80%(10명)가 70대 이상에서 발생했다. 그리고 이 중 90%(9명)가 사망했다.

    구체적으로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6년 4건, 2017년 1건, 2019년 2건, 2020년 5건 등으로 최근 5년 동안 모두 12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이 중 10명이 사망했고, 2명이 구조됐다. 지역별로는 동해 4건, 울진과 포항 각 3건, 속초 2건이다. 이어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60대 2명(16.7%), 70대 9명(75%), 80대 1명(8.3%)이 사고를 당했다. 사고원인은 심정지, 익수, 호흡곤란 등이다.

    물질을 평생 직업으로 해온 해녀들이지만, 주변 사망 사건을 접하면서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신차순(81) 해녀는 "이제는 노안이 오기도 했고 아무래도 예전만큼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는 힘들어서 겁나기도 한다"며 "그래도 배운 게 이것뿐인데 어쩌겠느냐"고 말끝을 흐렸다. 해녀 대부분 몸이 허락할 때까지는 물질을 이어나갈 생각이라고 입을 모았다.

    물질 중인 강원 동해안 해녀들(사진=유선희 기자)

     

    고령 해녀들의 무리한 작업을 막기 위해 제주도에서는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했다. 제주도는 지난해 8월부터 은퇴하는 만 80세 이상 해녀들에게 3년 동안 월 30만 원씩 수당을 제공하고 있다.

    더 나아가 올해부터 사고예방 준수 어촌계에 인센티브 도입을 추진 중이다. 해당 정책들이 실제 해녀 사고감소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여부는 더 따져봐야 할 부분이지만,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부분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이와 관련해 강원 동해안 해녀들은 "자녀들은 다들 이제 물질하지 말라고 만류하는 데 우리는 생활비도 쓰고 손녀, 손자들에게 용돈을 주려면 이렇게 또 바다로 나가게 된다"며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지원책을 마련해준다면 생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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