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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제약은 보톡스 판정에서 왜 대패했을까?

기업/산업

    대웅제약은 보톡스 판정에서 왜 대패했을까?

    美 ITC '대웅제약이 메디톡스 균주 도용' 예비판정
    전문가 증언 및 증거제출 부실
    증거 기반 미 사법체계서 일방적 패배 자초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6일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를 도용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대웅제약 보툴리눔 제품의 미국내 수입을 10년간 금지하는 예비판정을 내렸다.

    대웅제약은 지난 2017년부터 메디톡스와 3년째 '보톡스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번 판정은 그 흐름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수백억원에 이르는 소송비용이 소요되는 것은 물론 보톡스 최대 시장인 미국 영업이 중단되는데 따른 영업손실도 엄청날 것으로 추정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천문학적인 손해배상도 감수해야 한다.

    ITC 심리 쟁점…대웅제약은 메디톡스의 균주를 도용했나

    ITC에 대웅제약을 제소한 것은 메디톡스였다. 대웅제약이 메디톡스 연구원 이 모씨를 통해 메디톡스의 균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영업비밀을 손에 넣었다는 것.

    도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메디톡스 균주와 대웅제약 균주가 유사 또는 동일한지 여부를 우선 가리는게 핵심이다. 균주의 유사성 여부와 함께 양사가 어떻게 균주를 개발했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것도 도용 여부를 밝힐 수 있는 또다른 쟁점이었다.

    메디톡스는 "두 회사의 균주가 매우 유사하며 대웅제약이 메디톡스 연구원을 통해 제조공정 등 영업비밀을 빼내 균주를 만들고 유사한 제조공정으로 제품을 생산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대웅제약은 "자사 연구원이 경기도 용인의 토양에서 균주를 발견한 뒤 독자개발했으며 양사의 제조공정이 유사한 것은 많은 문헌에 공정이 공개돼 왔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심리한 ITC의 행정판사는 핵심쟁점에서 메디톡스의 입장을 거의 전적으로 받아들이며 대웅제약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웅제약은 왜 대패했을까?

    우선 전문가 증언에서 판사의 신뢰를 얻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양사는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청문회 과정에서 균주 전문가들을 각각 내세웠다.

    핵심쟁점인 균주의 유사성을 가리기 위해 메디톡스 측 전문가는 두 균주와 그 '조상'에 해당하는 '홀에이하이퍼'라는 균주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비교분석했다. 비교 분석 결과 만약 두 균주가 동일한 특징을 많이 보일수록 유사성은 높아진다.

    (사진=연합뉴스)

     

    메디톡스 측 전문가는 비교분석방법으로 '단일염기다형성'(SNP)을 이용했다. SNP는 쉽게 말해 개체를 구분할 수 있는 유전자 차이(변이)를 가리킨다. 똑같은 위치에 있는 유전자라도 사람에 따라 해당 유전자 구성물질 중의 하나인 염기 종류가 다를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른 기질과 특징을 보이는 것은 이 SNP 때문이다.

    메디톡스 측 전문가는 양사 균주의 SNP를, 조상격인 '홀에이하이퍼'균주와 비교분석했더니, 홀에이하이퍼 균주나 다른 종류의 보툴리눔 균주에는 없는 SNP가 양사 균주 6군데에서 똑같이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즉 양사 균주가 홀에이하이퍼 균주로부터 한몸인 상태에서 갈라져 나오면서 6개의 SNP를 공유했고, 이후 분리됐다는 주장이다.

    반면 대웅제약 측 전문가는 '16s rRNA'라는 유전자를 분석했다. 이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로 거의 변이가 없어 개체의 유사성을 분석하는데 이용된다. 대웅제약 측 전문가는 양사 균주의 이 유전자를 서로 비교한 결과 두군데에서 차이를 발견했다며 양사 균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메디톡스 측 전문가의 분석법은 완전하지 않으며, 실제로 분석해 보니 모두 166개의 SNP와 삽입절단이 발견됐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대웅제약 측 전문가의 비교 분석결과에는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이후 드러났다. 무려 166개라던 SNP를 28개로 수정한 것.

    이런 오류에 대한 ITC의 판단은 단호했다. ITC 내 부서로서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조사를 벌여온 '부정수입조사국'은 '대웅제약 측 전문가는 메디톡스의 분석방법이 완전하지 않다고만 말할 뿐 홀에이하이퍼균주와 비교분석도 하지 않았다'며 '메디톡스 측의 유전자 분석법은 궁극적으로 논쟁이 불가한 것'이라고 밝혔다.

    판사 역시 "대웅 측 전문가가 오류를 인정했고, 이는 결국 메디톡스 측 전문가의 분석이 더 믿을만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더 나아가 "두 균주가 전혀 관련성이 없다면 전체 유전자 370만개 가운데 똑같은 위치 6곳에서 동일한 변이가 일어날 확률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판사는 결론적으로 "6개의 SNP 관련 증거는 대웅제약 균주가 메디톡스 균주에서 유래했음을 보여준다"며 "이는 토양에서 분리해냈다는 대웅제약의 주장을 물리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전문가 증언 부실과 함께 증거 제시가 미흡한 점도 대웅제약의 대패를 불러왔다. 대웅제약은 특히 균주를 자체개발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관련 증거는 제대로 내놓지 않은 것으로 판결문에서 드러났다.

    판사는 대웅제약의 자체개발을 인정할 수 없는 3가지 이유를 판결문에 적시했는데 △대웅제약의 제조공정이 메디톡스와 유사하고 △독자개발했다는 증거가 부족하고 △이례적으로 짧은 개발기간을 들었다.

    판사는 "대부분의 제약사들은 의약품 인허가 절차에 대비해 실험실 노트 등 각종 개발기록을 유지하지 않을 수 없는데, 대웅제약은 극히 적은 양의 실험실 노트를 생산했다"며 "ITC 제소 이후에도 연구개발 기록이 부족하다는 것은 제약사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개발과정에서) 다른 문헌을 인용했다는 증거도 부족했고 제조공정이 공개돼 있다는 문헌의 증거도 내놓지 못했다"며 "균주 제조공정이 문헌에 공개돼 있다면 대웅제약이 흙속에서 균주를 찾기 위해 애쓸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고 반문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판사는 "(만약 대웅제약이 균주를 자체개발했다면) 증거제출은 쉬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판사는 "반면 메디톡스는 상당량의 개발 기록을 생산했고, 그 기록에는 공정과 참고문헌 등이 적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메디톡스의 주장에 대해서는 '증거가 우세하다(the preponderance of the evidence)'는 표현을 판결문에 반복적으로 담았다.

    "구체적 도용경위 못밝혔지만 도용은 맞아"

    결론적으로 판사는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균주를 도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물론 도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의 메디톡스 균주가 빼돌려져 대웅제약에 전달됐는지 구체적인 경위는 알 수 없으며, 유출자로 의심을 받고 있는 이 모씨가 도용 행위에 개입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각종 유전자 분석 증거와 제조 공정의 유사성, 대웅제약의 증거 제출 부족, 균주 확보의 시급성 등 여러 정황 증거를 통해 대웅제약의 도용 가능성을 인정했다.

    대웅제약은 도용 경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도용이 맞다고 판결한 것은 '편향과 왜곡의 극치'라며 지난달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중대한 오류로 가득한 예비판결을 명백하게 탄핵하고 11월의 최종결정에서 반드시 승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웅제약의 생각대로 최종판정에서 결과가 뒤바뀔지는 미지수다. 최근 ITC 최종판정 경향을 보면 예비판정을 뒤집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것.

    특히 증거 제시를 중시하는 미국 사법체계상 대웅제약이 계속해서 증거제시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면 판정을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 예비판정에서도 판사는 "대웅제약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요구에 응하면서 자체 개발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본안 재판 전에 증거를 조사하는 절차로 미국에서 운영중이다. 만약 증거를 제출하지 않으면 법정모욕죄로 처벌하거나 상대방 주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등 불이익을 받는다.

    일부 판사들은 판결에 흠결이 있더라도 증거를 제출하지 않은 쪽에 불리한 판결을 내릴만큼 증거 제출을 매우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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