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27일 검찰 하반기 인사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부임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던 이른바 '특수통 들어내기 수술'의 완성판이었다. '특수통'의 몰락은 다른 한편으로 2016년 12월 출범해 한국 정치사를 완전히 뒤바꿔 놓은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의 몰락을 뜻하기도 했다. 한 때 대한민국 검찰을 좌지우지 했던 윤석열 라인의 등장은 '최순실 특검'과 함께 출발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고 문재인 새정부 등장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던 특검 파견 검사들은 새정권 초창기 '개국공신'급 대접을 받기도 했지만, 3년이 훌쩍 지난 지금, 혹독한 인사 칼바람에 몸조차 가누기 힘든 지경에 처하고 있다.
◇하반기 인사서 철저히 소외…'블랙리스트' 수사팀
2016년 12월 21일 '박영수 특검' 사무실 간판을 내건 이래 70일에 걸친 특검기간 동안 가장 혁혁한 성과를 내놓은 팀이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팀이다. 양석조(29기) 부장검사를 정점으로 부부장 검사급인 김태은(31기), 배문기(32기), 이복현(32기)으로 구성된 블랙리스트팀은 문화계에 소문만 무성하던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규명하고 정책 구상에서 실행까지 주요 과정이 실존했음을 증명해 냈다. 그 결과 박근혜 정부의 '왕실장'으로 불렸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박 전 대통령의 복심이었던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까지 구속기소라는 성과를 이끌어 냈다. 박근혜 정부 몰락의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서 블랙리스트팀 파견 검사들은 완벽히 배제됐다. 당시 수사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았던 배문기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장과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은 각각 청주지검 형사2부장과 대전지검 형사3부장으로 좌천됐다. 삼성 불법승계 의혹 사건을 맡고 있던 이 부장검사는 이재용 부회장의 기소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터라 유임 가능성이 유력하게 제기됐지만 '윤석열 측근'이라는 낙인은 피해갈 수 없었다. 당시 부부장급 가운데 기수가 가장 높았던 김태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장이 대구지검 형사1부장으로 이동하면서 간신히 '선방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수사를 지휘했던 양석조(29기) 당시 부장검사는 동료 상갓집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덮으려 한다며 심재철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에 큰 소리로 항의 한 사실이 추미애 장관에게 알려지면서 올해 초 일찌감치 대전 고검으로 밀려났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소수의 예외…非특수통만 승진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팀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뇌물 공여 사건팀 파견검사들의 성적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시 부부장 검사급이던 박주성(32기) 인천지검 부천지청 공판부장은 제주지검 형사2부장으로 발령이 나면서 반등에 실패했고 사시 동기인 강백신(34기)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김해경(34기) 서울중앙지검 부부장은 각각 창원지검 통영지청 형사1부장과 전주지검 군산지청 형사2부장으로 내려갔다.
특수통으로 분류되지 않던 이방현(33기) 대구지검 포항지청 형사1부장과 조상원(32기)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장이 각각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장과 서울중앙지검 형사12부장으로 영전된 것이 눈에 띈다. 이 부장검사는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에서 수석검사를 역임하다 최순실 특검에 파견된 정통 금융전문가다. 특검 파견이 종료된 직후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이번 인사에서 금융범죄 수사의 핵심인 남부지검 금융조사부장으로 영전했다. 서울남부지검에서 라임 사건을 수사해왔던 조상원 부장 역시 2015년 광주지검에서 공안사건을 전담하는 등 전통적 개념의 '특수통' 검사는 아니었다.
특검 당시 부장검사급으로 차출돼 수사를 이끌었던 한동훈(27기) 검사장은 윤석열 총장이 부임하자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에 임명되며 검찰의 특수 수사를 총괄했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 수사로 윤 총장과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가 악화된 올해 초 인사에서 부산고등검찰청 차장검사로 내려간 뒤, '검언유착' 의혹에 연루돼 수사를 받는 상황으로까지 몰렸다. 현재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밀려난 상태다. 한 검사장과 함께 팀을 이끌었던 신자용(28기) 부산지검 동부지청장은 올해 초 인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하지 못했다. 사법연수원 기수를 감안할 때 검사장 승진이 아직 이르다는 평도 나오지만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을 역임할 당시 1차장검사에 임명됐던 전력 등을 고려한다면 올해 초 검사장 승진 탈락이 심상치 않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추미애 "형사 공판부 우수 검사에게 희망 메시지 드리고자 노력"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이번 인사에서 저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형사 공판부에 전념해온 우수 검사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드리고자 노력했습니다"라고 밝혔다. "조직의 공정과 정의가 있어야 하는 일에도 공정과 정의에 매진할 수 있다"며 하반기 인사에 대한 자부심도 드러냈다.
"지금까지 한 두건의 폼나는 특수사건으로 소수에게만 승진과 발탁의 기회와 영광이 집중되어 왔다면 이제는 법률가인 검사 모두가 고른 희망속에 자긍심을 가지고 정의를 구하는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인사를 바꾸어 나갈 것"이라며 특수통 검사들에 대한 불편한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추 장관의 이런 형사부 사랑이 뜬금없다는 정치권의 지적도 나온다. 추 장관은 더불어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0월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검찰이 미르재단 관련 고발 사건을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에 배당한데 대해 "헌법과 국회법에 따라 본회의를 진행한 정세균 의장을 여당이 고발한 사건은 대검 공안부에 배당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측근들의 연루 여부를 따져야 하는 권력농단형, 권력부패형 미르재단 사건은 단순 고발 사건으로 치부해 형사부에 배당했다"며 비난했다. 더 나아가 "국민들이 '참 웃기다'라고 할 것 같다"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런 설명은 이번 인사가 특수통 검사들에 대한 의도적 배제가 깔린 '불공정 인사'였음을 장관 스스로가 인정한 셈이어서 더욱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한 전직 검찰 출신 변호사는 "형사니 공안이니 특수니 따지지 말고 객관적 업무 성과에 근거해 진행하는 인사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인사 아니겠냐"며 추 장관의 설명을 반박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특수통=윤석열 측근' 주홍글씨에 신음하는 검찰기수의 고저를 가리지 않은 특검 파견 검사들의 연쇄낙마 현상은 이런 지적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특검 파견 검사들이 추 장관의 말처럼 '한 두건의 폼나는 사건'만 맡아온 것도 아니다. '국정농단'이라는 사상 유례없이 거대한 비위사건이었던 만큼 박영수 특검에서는 검찰 내부에서도 뛰어난 검사들을 선별해 팀을 꾸렸다. 특수통 검사들이 권력형 비위 수사에 대한 경험이 많기에 자연스럽게 박영수 특검 내에는 실력있는 특수통 검사들의 파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블랙리스트 의혹, 정유라 부정입학 의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 공여 의혹, 비선진료 의혹 등을 수사하며 끝내 현직 대통령을 구속시켰다. 상당수 파견검사들은 특검 종료 뒤에도 일선에 배치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직권남용 의혹, 이명박 전 대통령 뇌물수수 사건 등을 수사하며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적폐청산' 기조를 충실히 뒷받침해왔다.
검찰 일각에서는 이런 특검 파견 검사들에 대한 인사 불이익이 '조국 효과'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 검찰 관계자는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강행한 윤석열 총장, 그리고 그런 총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특수통'이라는 세 글자가 현 정권의 개국 공신들에게도 주홍글씨의 낙인이 될 수 있음을 이번 인사가 보여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