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휴스턴의 제임스 하든과 LA 레이커스의 앤서니 데이비스 (사진=연합뉴스)
미국프로농구(NBA) 휴스턴 로켓츠의 베테랑 P.J 터커는 올해 2월6일(이하 한국시간) 이후부터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밈(meme)' 현상의 주인공이 됐다.
그날은 휴스턴이 신장 208cm의 장신 센터 클린트 카펠라를 타 구단으로 이적시키고 신장 196cm의 터커를 주전 센터로 기용하겠다는 뜻을 널리 알린 날이다.
터커의 센터 전업은 파격적인 결정이다. NBA 센터의 평균 신장은 210cm를 조금 넘는다. 터커의 키는 그보다 10cm 이상 작다.
휴스턴은 높이를 포기하는 대신 기동력과 활동량을 높이는 '스몰볼(small-ball)' 농구를 구사하는 팀이다. 예전에도 승부처에서 터커가 센터로 뛰는 경우가 있었다.
예전에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지만 이제는 없다. 터커는 대체 불가한 휴스턴의 주전 센터다.
'단신' 터커의 센터 전업을 두고 전세계 NBA 팬들은 다양한 '밈'을 쏟아내며 즐거워 했다. '밈'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특정 콘텐츠를 의미한다.
국내 농구 팬은 단어 센터로 '센터는 터커다'라는 재치있는 이행시를 만들었다. 터커도 팬들의 반응을 즐기고 있다. 직접 응답하기도 했다. 자신의 SNS에 직접 올린 합성사진이 대표적이다.
(사진=P.J 터커 인스타그램 캡처)
터커는 최근 ESPN을 비롯한 미국 현지 언론을 통해 "나는 작다. 하지만 강하다. 나는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고 누구를 상대로도 버틸 수 있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항상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결코 허언(虛言)이 아니다. 적어도 LA 레이커스는 확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휴스턴은 지난 5일 미국 올랜도에서 열린 2019-2020시즌 NBA 플레이오프 2라운드 1차전에서 레이커스를 112대97로 완파했다.
레이커스는 서부컨퍼런스 정규리그 승률 1위 팀이다. 1라운드에서 포틀랜드를 4승1패로 완파한 반면, 휴스턴은 오클라호마시티와 7차전 접전을 펼쳤다. 하지만 하루 쉬고 2라운드 1차전에 임한 휴스턴이 충분히 쉬고 나온 레이커스를 완전히 압도했다.
휴스턴의 간판 제임스 하든이 36득점을 퍼부었고 러셀 웨스트브룩과 에릭 고든이 각각 24득점, 23득점씩 올렸지만 승리의 주역은 또 있었다. 바로 센터 터커다.
터커는 36분동안 출전해 6득점 9리바운드 2스틸을 올렸다. 기록은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터커의 활동량은 나머지 선수들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고 열심히 막았다.
레이커스에는 211cm의 장신이자 리그를 대표하는 빅맨 앤서니 데이비스(AD)가 있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1차전에서 자신보다 10cm 이상 작은 터커를 상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ESPN 분석에 따르면 데이비스가 1차전에서 터커를 상대로 기록한 공격권은 총 26회였다. 여기서 공격권은 데이비스가 터커를 앞에 두고 공을 잡아 공격을 시도할 수 있었던 기회를 의미한다.
하지만 데이비스가 터커 앞에서 직접 슛을 시도한 장면은 한 차례 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불발됐다. 또 데이비스는 터커의 수비를 대면했을 때 실책 2개를 범했다.
데이비스는 1차전에서 25득점을 올렸지만 터커를 앞에 두고 올린 점수는 1점도 없었다. 터커가 데이비스를 잘 막은 수준을 넘어 아예 슛을 던지지 못하게끔 상황을 몰아갔다는 것이다.
레이커스에는 데이비스를 필두로 드와이트 하워드, 자베일 맥기 등 210cm가 넘는 좋은 빅맨들이 많다.
데이비스가 센터로 뛰기 싫어하는 관계로 프랭크 보겔 감독은 맥기 혹은 하워드를 센터로, 데이비스를 파워포워드로 함께 기용하는 경우가 많다.
1차전 이후 레이커스가 데이비스를 센터로 기용하는 시간대를 늘릴 수 있다는 미국 현지 보도가 나왔다.
높이 약화를 감수하더라도 기동력이 강하고 활동량이 많은 휴스턴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또 공격을 할 때 공간을 더 넓힐 수 있게 된다. 스페이싱 문제는 레이커스가 1차전에 고전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데이비스가 센터로 뛰는 라인업은 그동안 휴스턴을 상대로 어떤 효과를 봤을까.
지난 1차전에서 데이비스가 맥기 혹은 하워드와 함께 출전한 약 16분동안 레이커스는 득실점 마진 +6점을 기록했다.
반면, 데이비스가 센터로 뛰었던 약 21분동안 기록된 득실점 마진은 -12점이었다.
이같은 흐름은 지난 2월 맞대결에서도 나타났다.
휴스턴은 올해 2월7일 카펠라를 트레이드한 후 레이커스를 만났다. 41득점을 몰아친 러셀 웨스트브룩을 앞세워 121대110으로 승리한 날이다.
NBA 휴스턴 러셀 웨스트브룩과 앤서니 데이비스 (사진=연합뉴스)
당시 레이커스는 데이비스가 맥기 혹은 하워드가 함께 나섰던 16분동안 득실점에서 +6점 이득을 봤다. 반대로 데이비스가 센터를 맡았던 24분동안 -10점 손해를 봤다.
레이커스는 지난 1차전에서 2명의 빅맨을 기용했을 때와 데이비스에게 센터를 맡겼을 때 공수에서 눈에 띄는 차이를 보였다.
2명이 빅맨이 동시에 뛰었을 때 공격권당 평균 득점은 1.14점, 실점은 1.00점이었다. 반면, 데이비스가 센터를 맡았을 때는 평균 0.86득점, 1.17실점을 기록했다.
즉, 데이비스가 센터로 뛰었을 때 레이커스는 더 나은 수비력을 보였지만 공격에서는 손해를 봤다.
이같은 경향이 비단 휴스턴을 상대했을 때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정규시즌 내내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2명의 빅맨을 동시에 투입한다면 -특히 휴스턴의 스몰볼을 상대로는- 리바운드 싸움에서 상대를 압도해야만 한다.
하지만 휴스턴은 지난 1차전 때 리바운드 싸움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다. 올랜도 버블 안에서의 경기 내용을 돌아보면 리바운드에서 밀리더라도 이긴 날이 더 많았다. 높이 손해를 감수하고 다른 부분에서 강점을 찾는 스몰볼의 진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휴스턴의 농구는 변함없다. 어느 정도 3점슛 성공률이 뒷받침만 된다면, 또 수비에서 지금과 같은 에너지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어느 팀을 상대로도 이길 수 있는 팀이 바로 휴스턴이다.
이에 맞서는 레이커스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두팀의 2차전은 한국시간으로 7일 오전 9시30분에 개최된다. 국내 스포츠 전문 채널 SPOTV가 생중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