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공무원 피격 사건 파장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우리 측이 제안한 공동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보내온 입장과, 우리 군이 파악한 정황이 확연히 달라 진상규명이 필요하지만 북한이 조사에 응하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과의 진정성을 믿고 '공동조사'를 제안한 청와대로서는 추가 액션을 취할 카드도 마땅치 않다.
◇北 침묵하는 사이 커져가는 의혹들…월북·시신훼손 쟁점 여전
29일 오전 인천시 옹진국 대연평도 북측 해역에서 중국 어선들이 조업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청와대가 북한에 공동조사를 요구한 것은 지난 26일. 그로부터 나흘이 지났지만 북한의 답변은 없는 상태다. 그 사이 우리측의 감청 정보가 공개되고 사망 공무원에 대한 해경의 중간수사결과도 발표되면서 혼선은 커지고 있다. 특히 핵심 의혹들은 기존 북측 설명과는 확연히 달라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선 숨진 이 모씨가 북한에 월북 의사를 표현했는지가 아직 불분명하다. 북측은 '정체불명 침입자', '불법 침입자' 라는 표현만 했을 뿐 월북의사를 밝혔는지는 함구한 상황이다. 반면 해경은 공무원이 북측 해상에서 월북 의사를 표현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이씨의 신상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는지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북한은 이씨가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렸다고 했지만 해경의 조사는 다르다.
해경은 "실종자만이 알 수 있는 이름, 나이, 고향, 키 등 신상정보를 북측이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통지문에서 '80m'까지 접근해 신분 확인을 요구했다고 했는데 북한군이 이보다 훨씬 가까이 접근해 신상을 파악하고 월북 의사를 물었을 가능성이 있다.
가장 쟁점은 시신 훼손 여부다. 북한은 시신은 유실됐으며 부유물만 태웠다는 입장이다. 반면 우리 군은 첩보내용을 근거로 "방독면을 쓰고 방호복을 입은 북한군이 시신에 접근해 불태운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혔으며, 최근까지도 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혼선이 커지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우리 군의 감청 정보들이 새어나오면서 '연유를 발라서 태우라고 했다', '사살하라는 감청을 우리군이 들었다' 등 자극적인 내용들이 연달아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김정은 직접 사과한 상황에서 北 조사 응하기 쉽지 않아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자료사진)
국민적 혼란이 크지만 북한이 공동조사에 응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낮다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는 북한 체제의 특수성과 연결된다. 최고존엄인 김정은 위원장이 사과를 하고 자체 조사 결과를 알려온 마당에 이를 뒤집는 새로운 조사 결과를 내놓는다는 것은 북한 체제의 특성상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최고존엄인 김정은 위원장 명의로 사과를 했다는 것이 오히려 조사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며 "이미 북한에서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에 그것을 뒤집는 새로운 조사에 응할 가능성은 적어보인다"고 말했다.
게다가 남북 공동조사의 경우 실무자들끼리의 접촉이 필요한데,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이어가고 있는 북한이 접촉에 응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제안한 '군 통신선 재가동'도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에 소극적일 경우 통신선을 다시 이어 소통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수 있다. 이미 북한의 지도부가 지난 6월 군 통신선을 비롯한 남한과의 모든 연락채널을 차단하기로 결정하고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쉽게 뒤집기는 힘들다는 분석도 있다.
문제는 북한의 침묵이 길어질 경우 우리가 취할 추가적인 행동이 마땅치 않다는데 있다. 문 대통령이 이미 김 위원장 사과가 '각별하다'며 진정성을 인정했고, 청와대가 던질 수 있는 카드를 모두 던졌기 때문에 진상규명을 위해 북한에 추가적인 요구를 하기 어렵게 됐다.
'플랜B'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가 이번 사건을 대화의 지렛대로 삼고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혔다는 비판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