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전자랜드 이대헌(사진 왼쪽)과 유도훈 감독 (사진=KBL 제공)
"(이)대헌아 잘 봐. 오늘은 네가 한번 하는거야"
지난 18일 인천에서 열린 2020-2021시즌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전주 KCC와 홈경기에서 66대66 동점이던 종료 4.9초를 남기고 유도훈 인천 전자랜드 감독이 작전타임 때 건넨 말이다.
작전판을 잡은 유도훈 감독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포워드 이대헌을 바라보며 작전 지시를 했다. 그 표정은 온화하면서도 냉철했다.
이대헌은 에릭 탐슨의 스크린을 받고 톱으로 나왔다. 인바운드 패스를 담당한 가드 김낙현이 이대헌에게 공을 건넸다. 그리고 이대헌을 향해 전력질주했다.
이는 핸드오프를 활용하는 2대2 공격을 위한 세트다. 김낙현이 지나갈 때 가벼운 토스로 공을 넘겨 자연스럽게 공격을 전개하는 패턴이다.
유도훈 감독은 두 가지 변화를 줬다. 김낙현의 핸드오프 공격을 미끼로 썼다. 상대가 김낙현이 공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한 순간 이대헌이 골밑으로 파고드는 것으로 작전을 바꿨다. KCC에 혼선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대헌에게는 더 힘을 실어줬다. 그와 에릭 탐슨의 자리가 바뀌었다. 원래는 이대헌이 스크리너 역할을, 외국인선수가 공을 받는 역할이었다. 외국인선수가 해왔던 역할을 이대헌에게 맡긴 것이다.
급박한 상황에서 유도훈 감독이 이처럼 과감한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도훈 감독은 "첫째, 이대헌의 컨디션과 밸런스가 워낙 좋았다. 둘째, 마침 이대헌이 잘하는 왼쪽 방향 돌파가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한 뒤 "이대헌이 너무 빨랐다. 김낙현이 오기도 전에 안으로 치고 들어갔다"며 웃었다.
허를 찌른 작전과 빠른 타이밍의 돌파에 KCC 수비는 당황했다. 그리고 이대헌은 또 한번 상대 수비를 흔드는 대담한 결정을 했다.
안으로 파고 든 이대헌이 스크린 이후 골밑으로 질주한 탐슨에게 절묘한 패스를 건넨 것이다. 탐슨은 송교창의 수비를 넘어 68대66 승리를 이끄는 결승 득점을 터뜨렸다.
이대헌이 그 상황에서 패스를 할 것을 예상했는지 묻는 질문에 유도훈 감독은 "당연히 그렇다. 상대 수비 움직임에 따라 반대쪽 베이스라인도 줄 수 있었다. 탐슨에게 어려운 패스를 정말 잘 찔러줬다"고 칭찬했다.
유도훈 감독의 새로운 작전타임 '어록'에 농구 팬들은 즐거워 했다.
유도훈 감독은 "언제까지 '떡 사세요'만 할거야(외국인선수에게 의지해 패스를 주려고 머리 위에 두 손을 올리는 국내선수의 모습을 풍자)", "신명호는 놔두라고(3점슛이 약한 신명호에게 압박수비를 하지 말라는 냉정한 지시)" 등 어록이 많다.
과거 말들이 선수들의 안이한 태도나 집중력 부족을 지적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어록'은 느낌이 다르다.
유도훈 감독은 "중요한 순간에 플레이를 해내면 자신감이 올라간다. 승부처에서도 적극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비록 실패할 때도 있겠지만 이대헌은 그런 경험을 통해 앞으로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