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진짜로 아들이 너무 불쌍해서 제가 그렇게 했습니다."
지난달 20일 인천지법 324호 법정. 판사 앞에서 살인을 자백하는 피고인은 백발이 성성한 76세 할머니였다.
피고인석 의자에서 일어난 A씨는 "최후 진술을 해보라"는 재판장의 말에 눈물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그는 "희망도 없고, (아들) 하는 꼴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술을 마셔) 제정신일 때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라며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올해 4월 19일 밤이었다. 그날도 A씨의 아들 B(51)씨는 어김없이 술에 취해 있었다.
사업에 실패한 뒤 아내와 이혼했고, 아들 양육비도 제대로 보내주지 못한 채 온전히 술로 하루를 보내는 그였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소주를 찾기 시작해 잠들 때까지 5병을 넘게 마셨고, 술에 취하면 고통스러운 하루의 기억을 까맣게 잊었다.
그날도 B씨는 인천시 미추홀구 자택에서 침대에 걸터앉아 "술을 더 내오라"라고 어머니에게 소리쳤다.
보다 못한 초등학교 2학년생 조카가 "할머니한테 왜 그러느냐"고 말렸지만 이미 술에 취한 외삼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이의 엄마인 B씨의 여동생도 "돈은 하나도 안 주면서 엄마한테 왜 그러느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끼어들었다.
B씨와 다툰 여동생은 짐을 싼 뒤 아이를 데리고 남편이 있는 경기 수원으로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112신고가 접수된 건 다음 날 새벽 1시께였다. "아들의 목을 졸랐어요" 신고자는 A씨였다.
5분 만에 경찰이 출동했을 때 A씨의 집은 살인 사건이 일어난 현장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말끔하게 정돈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