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이유찬(사진 왼쪽)이 9회초 무사 1루에서 허경민의 희생번트와 상대 수비 실책을 틈타 홈까지 파고들고 있다. 이때 LG 포수 이성우(사진 가운데)가 주자가 들어오는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욕했다"
5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0시즌 KBO 리그 LG 트윈스와 준플레이오프 2차전 9회초 마지막 공격에서 두산 베어스의 대주자 이유찬의 주루 플레이를 덕아웃에서 지켜본 오재원의 소감이다.
김태형 두산 감독도 그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뛸 상황이 아니었는데…"라고 말했다.
이처럼 한결같은 반응을 이끌어 낸 극적인 장면은 경기 막판에 나왔다.
두산은 4회초 대거 7득점을 뽑는 등 LG에 8대0으로 앞서갔다. LG는 홈런 4방을 포함해 막강한 공격력을 발휘했고 스코어를 8대7로 좁혔다. 두산은 LG가 추격하는 동안 계속 해서 득점권 기회를 놓쳤다.
9회초 천금같은 기회가 왔다. 선두타자 김재환이 볼넷으로 출루한 것이다. 김태형 감독은 발이 빠른 이유찬을 대주자로 세웠다. 다음 타자 허경민은 희생번트를 댔다. 이때 LG 마무리 고우석이 악송구를 범했다.
이유찬은 빠른 발을 활용해 여유있게 3루로 뛰었다. 그런데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3루를 돌아 홈까지 파고들었다. 이 순간을 두고 김태형 감독은 "주루코치가 막았는데 이유찬이 뛰었다"고 했다.
LG 수비가 흔들린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비교적 빠르게 만회했다. 1루주자가 홈까지 파고들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LG는 홈으로 공을 뿌렸고 타이밍상 아웃에 더 가까웠다.
그런데 이때 믿기 힘든 장면이 연출됐다.
포수 이성우가 홈플레이트 앞에 나와 있었고 포구하는 순간 홈으로 뛰는 주자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그는 태그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이유찬이 홈으로 뛸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한 것 같았다. 고우석이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쳤지만 듣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유찬의 무모한 플레이는 점수차를 2점으로 벌리는 귀중한 득점으로 연결됐다.
김태형 감독은 "되려면 그런 게 되더라"며 "뛸 상황이 아니었는데 LG 포수가 앞에 나와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 점수가 결승점이라 생각한다. 마무리 이영하가 덕분에 편하게 던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8회에 마운드에 올랐던 이영하는 9회말 마지막 수비 때 김현수-로베르토 라모스-채은성으로 이어지는 LG 중심타선을 상대해야 했다. 만약 1점차였다면 홈런 한방에 동점이 될 수 있었다. 부담이 컸다.
이영하는 "아무래도 1점차와 2점차는 크게 다르다고 느껴진다. 어떻게든 1점을 내준 덕분에 여유가 생겼고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얻은 이영하는 LG의 마지막 세 타자를 연거푸 잡아내고 두산의 9대7 승리를 지켰다. 이로써 두산은 2연승으로 준플레이오프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만약 LG의 수비 실수가 없었다면, 그래서 이유찬이 홈에서 아웃됐다면 분위기가 다시 LG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야구 경기에서는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
이유찬의 무모한 주루에 깜짝 놀랐던 두산 덕아웃은 극적인 반전 득점에 크게 환호했다. 오재원은 "결과가 좋으면 괜찮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