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가덕도에 추진하려는 신공항 조감도. (사진=연합뉴스)
17일 정부의 김해신공항 백지화 발표에 여야가 또다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가덕도신공항이 대안으로 사실상 확정된 분위기 속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선공에 나선 탓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무턱대고 반대도, 환영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與, 선거용 전략 아니라더니 "환영"여당은 일제히 "선거용 전략이 아니다"라고 손사레를 치고 있다.
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만약 내년 보궐선거 일정 때문에 (신공항 발표를) 미뤄야한다면, 김해신공항의 검증결과는 결국 발표할 수가 없게 된다. 내년 보궐선거 이후에 발표하면 대선을 의식한다고 또 의심할 것"이라며 '포퓰리즘 정책' 논란에 선을 그었다.
2016년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 평가에서는 김해공항 확장이 1위였다. 이어 경남 밀양, 가덕도 순이었다. 김해신공항 계획이 백지화되고 3위였던 가덕도신공항이 추진될 경우 경제성 문제에도 불구하고 재보궐 선거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동남권 관문공항 추진을 위한 긴급 대책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낙연 대표를 필두로 2030년 세계박람회 유치에 맞춰 가덕도신공항을 개항하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정부 발표가 나온 뒤 동남권 관문공항 추진을 위한 긴급 대책회의에서 "부울경 시도민의 오랜 염원인 가덕도 신공항 가능성이 열렸다"라며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도 검토 의사를 밝혔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합법적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특별법을 통과시켜 2030년 개항을 목표로 하겠다는 방침이다.
부산 북강서갑을 지역구로 둔 전재수 의원은 이날 대책회의 전 기자들과 만나 "부산·울산·경남 여야 의원 공동발의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삼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장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검증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정부·여당의 부산 민심 잡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야당 내 TK(대구·경북)과 PK(부산·울산·경남) 사이를 파고들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PK에선 가덕도신공항을 염원해 왔지만, TK에서는 부산 가덕도에 신공항이 생기면 군위·의성 신공항이 타격을 받을 거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항소심 이후 침묵하던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24시간 운항이 가능하면서 부산신항과 바로 연계할 수 있는 공항은 현재로서는 가덕도가 최선의 대안"이라며 "동남권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동남권 신공항'을 최대한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부산 보궐 필승카드는 가덕도신공항?민주당 지도부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당 안팎에선 기본 전략이라는 게 중론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부산과 대구를 갈라치기 해서 재보궐 선거에서 이기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검증위가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것부터 "김해신공항 백지화를 정답으로 결정해 놓고 움직인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부산 강서구 가덕도동 대항항 전망대에서 항공기 모형이 설치 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은 이날 발표가 있기 전부터 가덕도신공항 추진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지난 6일 최고위원회의 뒤 이동하면서 "국토부 2차관 들어오라고 하라"고 하기도 했다. 국토부 2차관은 항공, 공항 등 교통 분야를 맡고 있다.
또 국토부가 가덕도신공항 용역비 20억원 증액에 난색을 표하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야 간사는 본래 정책연구용역비 26억원에서 20억원을 증액했다. 이는 가덕도신공항 적절성 검토에 쓰일 예정이다.
민주당이 이처럼 가덕도신공항에 사활을 거는 데엔 부산 재보궐 선거 판세가 조금씩 바뀐다는 판단이 나오면서다. 당초 전통적 험지인 부산에서의 재보궐은 어렵다는 분위기였지만, 최근 당 안팎에서 생각보다 국민의힘에 밀리지 않는다는 여론조사가 나오면서 "해 볼 만 하다"는 말도 나온다.
기본 컨셉은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는 것. 국민의힘이 그동안 시정을 도맡는 동안 부산이 제2의 경제도시 자리를 내줬는데, 민주당이 가덕도신공항을 완성시켜 동남권 메가시티로 재도약시키겠다는 얘기다.
여권의 부산시장 후보로 언급되는 김영춘 전 의원이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4년 전 정치적 결정이 엉터리였기 때문에 그만큼의 시간을 까먹은 셈이다"라고 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김해신공항안이 확정된 것을 강조해 부산 민심을 자극하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오른쪽)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野국민의힘은 딜레마에 빠졌다.
김 위원장은 이날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정부의 정책 일관성이 지켜지지 않는 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정부가 일단 김해신공항 백지화를 발표하면 부산·울산·경남 쪽에서 얘기하는 가덕도 공항에 대한 강구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여권이 내년 보궐선거를 앞두고 어떻게 하든 부산시장 선거에서 덕을 보려고 무리하게 신공항 계획 변경을 추진하는 것 같다"며, "이는 월성 1호기 문제와 판박이로, 정부의 김해신공항 최종 검증에 대해 감사원 감사로 적절성을 따져보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부산 선거를 앞두고 가덕도신공항 추진을 반대할 순 없지만, 대구·경북의 들끓는 민심을 외면하기도 어려운 탓이다.
부산시장 출신인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은 "정작 국무총리 시절에는 뒷짐 지던 이낙연 의원은 대통령 후보가 되어 보겠다고 신공항을 들먹거리고 있다"면서도 "오늘은 김해신공항의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했으니 내일은 가덕도 신공항 만든다고 선언하라. 신공항 정치의 마침표를 찍고, 부산의 미래를 향한 대통령의 결단 지켜보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 등 대구경북 지역구 의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김해신공항 백지화 관련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하지만 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의 속내는 더 복잡하다. 부산 재보궐 승리를 이듬해 대선 승리의 모멘텀으로 삼아야 하지만, 당의 주축인 대구·경북 민심의 동요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국민의힘 초선의원은 "내년 보궐선거, 이듬해 대선 앞두고 용역까지 마친 국책사업을 왔다리갔다리 바꾸면 국민들이 앞으로 정부를 믿고 따르겠냐"며 "내년부터 착공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걸 뒤집는다고 하면 하나의 선거용 내지는 그 지역에 사는 민심을 잡기 위한 술수"라고 말했다.
또다른 국민의힘 초선의원은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에 영향을 줄 거라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부산 선거가 가덕도신공항에 말려들 상황이라 야당에서 적극적으로 어떤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것도 맞다"고 했다.{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