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한 안보가 평화를 뒷받침합니다. 밤낮없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치열한 현장(熱戰)의 이야기를 역사에 남기고(列傳)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국회 포럼 현장에서 워리어 플랫폼의 일부인 조준경을 직접 써보고 있다. (사진=자료사진)
3배율 조준경을 눈에 가까이 하자 빨간 점과 표적이 선명하게 보였다. 숨을 참고 방아쇠를 당기자 날카로운 반동이 느껴지면서 레이저가 전자 표적 한가운데에 명중한 것이 보였다. 군 시절 K2 소총을 쏠 때 가늠자-가늠쇠 정렬을 하는 것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조준이 가능했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지난 11일 육군본부 주관으로 국회에서 열린 '워리어 플랫폼 국회 포럼'을 찾아 육군의 차세대 개인전투장비 사업인 '워리어 플랫폼'의 현 주소를 짚어봤다.
지난 11일 열린 워리어 플랫폼 국회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는 남영신 육군참모총장. (사진=육군 제공)
◇첨단 장비는 일단 외산 도입, 차차 국산화…방탄복 대해선 아쉽단 목소리도워리어 플랫폼이란 군이 그동안 무관심했던 개인전투장비류 개선을 위해 전투복, 전투화, 방탄복, 응급처치키트, 개인화기 부가장비, 야간투시경 등의 현대화 보급을 추진하는 사업이다. 선진국 군대에서는 이미 보급된 물건들이기도 하다.
육군은 2017년부터 이 사업을 추진해 개념 연구와 업체 선정 등의 절차를 거쳐, 특수전사령부 등 일부 부대를 중심으로 보급을 진행하고 있다. 2020년 국정감사에서 육군은 워리어 플랫폼의 적용 대상을 4만 4천명에서 14만 4천명으로 늘리고, 예산은 3331억원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보급 장비는 피복, 장구류, 장비, 무기체계 등 크게 4가지로 나뉘는데 모두 33종이다. 육군은 이 장비들 가운데 국산품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에는 국산화를 추진하고, 아직 그러기 힘든 경우 외국제를 직도입해 보급한 뒤 차차 국산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군 당국이 미국에서 도입해 테스트와 개념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열상장비. (사진=김형준 기자)
대표적인 사례로 사람에게서 나오는 열을 감지할 수 있는 열상장비의 경우 국내 기술로는 아직 군용으로 쓸 만한 성능의 장비가 마땅치 않다고 전해진다. 육군은 미군에서 AN/PAS-13G라는 이름을 붙인 미국 L3 해리스사의 열상장비를 들여와 개념연구와 테스트 등을 진행하고 있다.
취재진이 열상장비를 들여다본 채 육군 관계자를 향하자 그의 모습이 빨간색과 파란색 등의 열로 보이기 시작했다. 열상장비는 밤에 빛을 증폭해 보여주는 야간투시장비와는 다르게 열을 감지해 적을 포착한다는 특징이 있어, 미군은 야시장비에 열상장비를 혼합해 사용하고 있다.
총구에 장착해 총성을 줄이고 적이 내 위치를 찾기 어렵게 만드는 소음기의 경우에도 미군 특수부대가 사용하는 제품들이 군에 그대로 보급될 예정이다. 소음기는 총기 부품 가운데서 만들기 까다로운 축에 속해, 현재까지는 국내 업체의 제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육군이 포럼에서 공개한 워리어 플랫폼 특수전용 방탄복의 시제품(왼쪽). (사진=김형준 기자)
현재 개발 중인 특수전용 방탄복의 시제품 또한 이 자리에서 공개됐는데 권총탄과 파편을 막는 소프트 아머(soft armor)와 소총탄을 막는 방탄판을 모두 장착하는 타입이다. 해외 특수부대가 사용하는 방탄복의 경우 무게 등의 문제로 크기를 줄여 방탄판만을 주로 장착하고, 소프트 아머는 필요할 때만 끼울 수 있게 설계하곤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소 의외다.
군 일각에서는 "시가전이나 대테러전에서 쓸 방탄복도 중요하지만, 적지 종심으로 깊게 침투하는 특전사나 특공대의 임무를 생각해볼 때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가슴께에 장비를 휴대할 수 있는 체스트리그(chest rig)의 개발과 보급도 필요하다"는 평도 나왔다.
미국 SOG사의 '씰 스트라이크' 단검(나이프). 특전사에는 얼마 전 이와 유사한 특수전용 칼이 1만자루 정도 납품됐다. (사진=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언론 등 통해 떠오른 품질 검증 문제, 군 당국도 인식…개인 구매 장비 필요성도?첨단 장비들만큼이나 극복할 과제도 있다. 국산화 장비에 대한 품질 검증 문제가 대표적이다.
몇 달 전 육군은 미국 SOG사의 칼 하나를 '많이 참고해' 만든 다용도 칼 약 1만자루를 특전사에 보급했는데, 이 칼은 기성품과 상당 부분 비슷하며 언론을 통해 중국에서 불법으로 복제돼 만들어진 칼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진짜 문제는 현행법상 이 칼의 납품 과정에 법적이나 절차적인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포럼에서 한국국방안보포럼 양욱 연구위원은 "물품의 입찰 공고가 하나 뜨면 응시하는 업체가 50~60개는 기본인데, 대부분은 국방에 전문성이 있는 업체가 아니라 경매나 조달 등에 특화돼 있다"며 "가격으로만 입찰하는 사람들이 들어온 경우도 많다. 입찰을 딴 뒤 제조사나 군수사령부에 연락해 물건이 무엇인지,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문의해서 연결하는 실태가 반복된다"고 비판했다.
양 위원은 "특전사 칼의 경우 미국 회사의 칼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 납품했는데 이는 특허권 위반이다"며 "법적이나 절차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상거래 질서상에서는 문제가 있다. 육군이 혼자서만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만 예방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포럼에서 관련 내용 발표를 맡은 육군 군수사령부 박춘식 소요조달과장(대령)은 "현재의 최저가 입찰제가 아닌, 전문성과 역량 등을 반영한 생산 능력 점수와 가격 점수를 반영한 종합심사낙찰제 도입이 필요하다"며 "리스크에 미리 대처할 수 있기에 국토부에서 공사 입찰을 할 때도 사용하는 제도다"고 설명했다.
박 과장은 "사용자들의 만족도를 향상하기 위해서는 미리 이러한 제품을 잘 만드는 업체를 평가하고, 쇼핑몰에 등록해 두면 사용 부대에서 이를 신청해 계약을 체결하는 '다수공급자계약' 제도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군수사와 조달청이 제품에 대해 사전 적격성 검증을 진행하면 된다는 얘기다.
미군은 장병들이 보급품 대신 민간 회사들의 장비를 개인적으로 구매해 쓰려고 할 때, 밀스펙(Mil-Spec, 군사작전에 쓸 수 있다는 내구성 충족 기준)에 합격한 제품을 몇 가지 제시한 뒤 이 가운데 골라서 구매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박 과장의 발언은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도 해석된다.
현재 워리어 플랫폼의 보급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개인 구매 장비 사용도 일정 부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군 당국은 여기에 아직 소극적인 모양새다. 익명을 요구한 군 소식통은 "부대에선 워리어 플랫폼이 보급되고 난 뒤에 부족한 장비는 구입해서 쓰라는 식인데 앞뒤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육군 일부 부대에선 현재 내부에서 이 문제에 대한 공청회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벽 너머의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인 '코너샷'. (사진=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벽 너머 적 공격한다며 들여온 '코너샷'은 개점휴업…"첨단 장비만큼 운용개념도 발전해야"
이와 함께 군 일각에서는 첨단 전투장비가 도입되면서 기존의 운용개념에도 발전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기술은 발전하더라도 이에 맞춰 싸우는 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는 2000년대 '벽 너머의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라며 우리나라 여러 특수부대에 도입됐던 이스라엘제 '코너샷'이 거론된다. 코너샷은 앞에 권총을 달고 벽 너머로 내민 채, 카메라로 조준하며 공격할 수 있다는 이유로 많은 각광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군뿐만 아니라 테러조직 등에도 방탄복이 널리 보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권총탄은 방탄복에 쉽게 막히기 때문에, 현대 대테러전의 전술은 적에게 총을 여러 발 쏴 빠르게 무력화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군 소식통은 "코너샷의 경우 벽 너머의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구조상 방아쇠가 무겁다는 문제가 있어 여러 발을 빠르게 쏘기 어렵다"며 "일선의 특수부대들에서도 현 시점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결국 첨단 장비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운용개념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실패가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사례가 되는 셈이다. 일단 육군은 이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보병학교를 중심으로 교리 발전과 전술훈련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