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금지령'으로 비유되는 고액 신용대출 규제 발표에 대출이나 주택 거래를 앞둔 분들은 이른바 '멘붕(멘탈붕괴)'에 빠졌는데요. 오는 30일부터 시행한다던 규제가 일주일이나 더 빨리 시작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금융소비자의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각종 대출 규제에 이제는 본 적 없는 신용대출 규제까지 더해져 복잡하기 그지 없는데요. 가장 많이 물어보는 새로 바뀐 신용대출 규제 핵심 질문만 추려보고요. 왜 일부 시중은행은 이렇게까지 대출 규제를 앞당기는지 알아봤습니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1. 금융당국이 발표한 신용대출 규제 뭐길래이번 신용대출 규제의 뼈대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연 소득 8000만원을 넘는 고소득자의 신용대출 총액이 1억원을 넘으면 돈 빌린 사람 별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40%를 적용한다는 겁니다. DSR은 대출을 빌려줄 때 소득을 기준으로 갚을 능력이 있느냐를 보는 지표인데요. 주택담보대출 뿐 아니라 신용대출과 카드론 등 모든 가계대출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소득 대비 대출 부담 수준을 나타냅니다. 한마디로 고소득자의 신용대출 총액이 1억원이 넘으면 대출 규제를 더 깐깐하게 본다는 거죠.
<대출자 a씨는="" 신용대출="" 1억원="" 넘게="" 받을="" 수="" 있나="">
· 연봉: 1억원 (금융당국이 지정한 연소득 8000만원 넘는 고소득자)
· 현재 가지고 있는 대출: 주택담보대출 5억원대출자>예를 들어 고소득자인 A씨는 규제 전인 현재는 신용대출로 1억 5000만원은 충분히 빌릴 수 있습니다. 은행들이 DSR을 통상 70% 이내로 관리하기 때문인데요. 신규로 신용대출 1억 5000만원을 받아도 DSR이 44%거든요. 하지만 규제가 시행돼 DSR이 40%로 제한되면 신용대출 가능 금액은 1억 2000만원으로 줄어듭니다.두 번째로는 1억원 넘게 신용대출을 받은 사람이 1년 안에 규제 지역에서 주택을 사면 1억원이 넘는 초과분에 한해서 대출금을 회수한다는 규제입니다. 다만 이미 신용대출을 1억원 넘게 받아 쓰고 있는 사람은 상관 없고요. 돈을 빌린 '개인별' 규제이기 때문에 아내가 1억원 넘게 대출을 받은 뒤 남편 명의로 집을 사는 경우는 대출금 회수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마이너스통장 같은 한도대출은 실제 사용금액이 아니라 금융회사와 약정 당시 설정한 한도 금액을 대출 총액으로 간주합니다.
<대출자 b씨는="" 신용대출금을="" 돌려줘야="" 하나="">
· B씨의 마이너스 통장 한도 3억
· 만기 끝나는 시점이 12월
· 내년 1월에 아파트를 사는데 마이너스 통장의 돈 3억을 보탤 예정대출자>예를 들면 대출자 B씨는 1년 안에 규제 지역에 집을 사면 대출 회수한다는 약정 대상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1억이 넘는 초과분인 2억은 뱉어내야 합니다. 마이너스 통장의 경우 보통 1년마다 금리를 재조정하고 5년마다 새로 약정을 맺는데요. 단순한 금리 조정과 기한 연장을 하는 건 상관 없지만, 5년 만기가 끝나서 다시 약정을 맺을 때는 회수 약정 규제 대상이 됩니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2. 마이너스통장 신규 개설 폭증?이러한 고소득자 신용대출 규제를 발표하고 일주일 만에 마이너스통장 신규 개설은 두 배가 넘었습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마이너스통장 신규 개설 건수는 신용대출 규제 발표 하루 전날인 12일 하루 동안 1931건이었다가 13일에는 2774건으로 껑충 뛰더니 20일에는 4232건으로 2배 넘게 늘어났습니다.
5대은행의 신용대출 잔액도 증가 추세입니다. 신용대출 규제 하루 전인 12일 129조 5053억원이었던 신용대출 잔액은 7일만에 1조 5301억원이 불어나 131조 354억원을 찍었고 20일에는 소폭 줄어들어 130조 1243억원을 기록했습니다. 금융당국의 신용대출 규제 발표 이후 '대출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크게 늘면서 대출이 외려 급증한 겁니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3. 그래서 나온 조기 규제 시행?이번 고소득자 신용대출 규제 말고도 이전에도 대출 규제 발표가 날 때마다 바로 직전에 대출은 급등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던 셈입니다. 금융당국은 이 때문에 대출 규제를 발표한 뒤 시중 은행들과의 화상 회의를 통해 가급적 빨리 규제 시행을 권고했습니다. 은행들도 대출 막차 행렬로 올해 대출 총량을 지키지 못할까봐 서둘러 대출 규제에 돌입하게 된 것이고요.
시중은행 가운데서도 가장 선제적으로 대출 규제에 나선 건 KB국민은행입니다. 당장 23일부터 1억원이 넘는 신용대출, 연 소득의 200%를 초과한 신용대출에 대한 심사를 대폭 강화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신용대출이 1억원을 넘는 개인에 대해 DSR 40% 규제를 적용했습니다. 특히 KB국민은행은 소득과 관계없이 신용대출 1억원을 넘어서면 규제를 적용한다는 방침이었는데요. 연소득 8천만원이 넘는 고소득자에 대해서만 범위를 한정한 금융당국의 방침보다 더 센 것이었죠. 하지만 국민은행 관계자는 " 23일부터 일주일 동안 한시적으로 소득과 무관하게 1억원 넘어서는 대출에 DSR 40%를 적용하고, 30일부터는 원래 금융당국의 발표대로 고소득자에 한해서만 DSR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국민은행처럼 23일부터 선제적으로 신용대출 조이기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대출 한도와 우대 금리를 줄이는 방법 등으로 신용대출 억제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우리은행도 1억원 초과 신용대출에 대한 규제를 전산 시스템 개발이 마무리되는 대로 이번 주 중 실행할 방침이고요. 주요 마이너스통장 대출 상품 최고한도는 1억원으로 낮추기로 했습니다(대면채널은 20일부터, 비대면 채널은 23일부터 시행). 농협은행 역시 대출한도, 우대금리를 줄이는 방식으로 신용대출을 조이고 있습니다. 18일부터 우량 신용대출과 일반 신용대출의 우대금리를 각 0.2%포인트, 0.3%포인트 축소했고 20일부터는 고소득자의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의 2배 이내'로 줄였습니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19일부터 별도의 한도를 두지 않았던 전문직 마이너스통장에 최대 1억원 한도를 신설했고요. 하나은행도 '하나원큐' 신용대출 최대한도를 지난달 8일부터 2억 2000만원에서 1억 5000만원으로 줄였습니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4. 더 강한 대출 규제 방안 나올까?금융당국의 생각은 확고합니다. 최근 2년 동안 거액의 신용대출이 많이 늘었기 때문에 위험 방지 차원에서라도 대출 규제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출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거죠. 2006~2007년 치과의사들이 엔화대출을 많이 받았다가 2008년 글로벌 위기 때 줄도산했던 병원처럼 고신용만 보고 대출을 하기에는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겁니다.
선진국처럼 '개인별 DSR'로 가는 게 궁극적 방향입니다. 이동훈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금융 선진국들은 개인별 DSR을 적용해 은행들이 알아서 대출을 관리한다"면서 "은행이 대출해줄 때 갚을 능력을 테스트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 단위의 DSR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했습니다.
당국이 큰 그림은 그리고 있지만 더 세세한 규제에 직접 나설지는 미지수입니다. 은행들이 대출 관리를 위해 자체 방안을 내놓을 확률이 더 큰데요. 실제로 한 은행은 제대로 쓰지 않는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줄이는 방안을 7월말부터 시행하고 있고 더 강력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는 마이너스 통장 2천만원 초과하는 신규나 연장 건은 만기일 3개월 전까지 한도의 10%도 쓰지 않았을 경우 마이너스 통장 한도의 20%가 자동으로 줄어든다는 건데요. 그 한도를 은행이 더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