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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억압과 의심 박차고 나간 소녀 '레벨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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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 리뷰]억압과 의심 박차고 나간 소녀 '레벨16'

    외화 '레벨16'(감독 데니시카 에스텔하지)

    (사진=㈜제이브로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채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규칙 아래 똑같은 날들만을 보내는 사람들. 그 사이에 한 가지 의심이 피어오르는 순간, 의심은 체제를 깨부수고 자유를 갈망하는 출발점이 된다. 외화 '레벨16'은 밀폐된 환경을 벗어나려는 소녀를 통해 진정한 '나'를 찾는 한 존재를 보여준다.

    '레벨16'(감독 데니시카 에스텔하지)은 여학생만으로 구성된 기숙사 학교에서 한 소녀 비비안(케이티 더글라스)이 의문의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고군분투하는 본격 밀실 호러 스릴러다.

    '베스탈리스'는 10대 소녀들로 이뤄진 기숙사 학교다. 기숙사 학교라고 하지만 영화는 마치 병원의 서늘함을 내뿜는 이상한 공간에서 시작한다. 똑같은 옷을 입은 소녀들이 등장해 줄을 서서 세수한다. 마치 어떠한 규칙이 그들을 옭아매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행동은 CCTV를 통해 감시된다.

    이 기묘한 공간에 있는 것은 모두 어린 소녀들뿐이다. 이들에게 강요되는 것은 '여성성'이다. 복종해야 하고 청결해야 한다. 인내하고 겸손하며 온순해야 한다. 그것이 여성이자 소녀들에게 강요되는 덕목이자 이 이상한 공간의 규칙이다.

    (사진=㈜제이브로 제공)

     

    알 수 없는 규칙으로 이뤄진 공간에서 소녀들이 꿈꾸는 것은 좋은 부모에게 입양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말을 잘 듣고 기다린다면 언젠가 입양돼 기숙사를 벗어나리라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창문 하나조차 없는 꽉 막힌 밀실은 '움직이는 사진'으로 표현되며, 바깥세상의 공기는 오염돼 있다고 믿는 소녀들로 채워져 있다. 이러한 상황과 말을 통해 소녀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기숙사'라 불리는 공간에 갇혀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소녀들에게 주어진 건 '복종'과 '청결'이다. 심지어 제시간에 세안하지 않은 소녀가 이른바 '아래층'으로 끌려가 벌을 받는다는 설정 역시 이 영화 속 공간과 규칙이 심상치 않은 비밀을 감추고 있음을 암시한다.

    영화는 밀실 스릴러가 그러하듯이 이상한 규칙, 외부와 차단된 밀실에 의문을 갖는 인물을 통해 그동안 '진짜' 내지 '모든 것'이라 여겨진 것들을 모조리 의심하게끔 만든다. 의심은 작은 단서에서부터 시작해 주변 전체를 믿지 못하게끔 만든다.

    이러한 의심은 사회가 지니고 있는 체제, 오래된 규칙에 대한 저항에서 오는 의심으로도 읽힌다. 영화 속 베스탈리스는 보는 시각에 따라 독재를 떠올리게 하고, 여성에 대해 유독 많은 규제와 규칙을 강요하는 사회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곳에서는 관리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주어진 것을 입고 주어진 것만 먹어야 한다. 베스탈리스 안에 개인의 자유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체제를 의심하는 순간 자신이 쌓아 올린 그간의 시간과 충돌하게 된다. 이는 비비안의 모습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제이브로 제공)

     

    독재와 권력이 남성적인 속성을 지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자연스레 시선은 여성적인 측면에서 '레벨16'을 돌아보게 한다.

    영화 내내 비비안을 비롯한 베스탈리스 소녀들에게 강조되는 건 역사적으로 여성에게 요구돼 온 아름다움과 행동 양식이다.

    여성의 지위가 이전보다 한 걸음 나아갔다고 하지만 유리천장은 여전히 존재하다. 나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 유리천장이 조금은 더 높아졌을 뿐이다. 사회는 지금도 여성에게 아름다움과 조신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중심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길 바란다. 단순한 노무만을 주고, 제대로 된 교육 기회조차 박탈한다.

    한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보다 '여성'이자 '아름다움' 그 자체로서 존재하길 원하는 베스탈리스의 원칙들은, 현실 세상의 여성에게 지금까지도 적용되는 기괴한 규칙들이다. 결국 베스탈리스의 독재 체제는 여성들에게만 혹독하리만치 강요되는, 남성이라는 권력 집단에 의해 재단되는 여성성의 강요로도 볼 수 있다.

    영화 마지막에 자유를 위해, 나 자신을 찾기 위해 탈출을 감행하는 비비안은 막다른 길에 몰려 결국 메스로 자신의 얼굴 여기저기를 긋는다. 그렇게 그동안 나를 이뤄온 것들, 비록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떨쳐낼 수 없었던 억압의 상징을 스스로가 깨부순다.

    비비안은 오롯이 자신으로 살 수 없도록 만든, 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게 한 체제를 향해 그 체제가 가장 원했던 '아름다움'을 스스로 버림으로써 자유를 획득한다. 전부였던 모든 것에서 작별을 고하면서 결국 비비안은 생애 처음 바깥세상의 공기를 느끼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진짜 '나'를 향한 용기가 만든 결과다.

    '레벨16'의 주된 공간인 베스탈리스는 여성을 향한 인간과 사회의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면들이 모여 만들어낸 상징적인 장소다. 또 다른 베스탈리스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여성들을 옭아매며 압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레벨16'은 여성들에게 보내는 단단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102분 상영, 12월 10일 개봉, 15세 관람가.
    (사진=㈜제이브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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