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스틸컷. D.seeD디씨드·트리플픽쳐스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모든 것이 빠른 여자와 모든 것이 느린 남자. 접점이 존재할 것 같지 않던 두 사람이 운명적인 시간에 서로를 마주한다. 발렌타인데이의 마법이 가져온 귀엽고 발랄한, 그리고 애틋한 사랑을 담은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속 주인공들 이야기다.
'마이 미씽 발렌타인'(감독 진옥훈)은 기다리던 데이트를 앞두고 감쪽같이 사라진 발렌타인데이를 찾아 나선 여자 샤오치(이패유)와 비밀의 열쇠를 쥔 남자 타이(유관정)의 마법 같은 첫사랑 시차 로맨스다.
영화는 서로 엇갈리던 두 남녀가 결국 사랑에 이른다는 로맨스물 공식 줄거리를 따른다. 그러나 평범한 소재를 흥미롭게 만드는 건 '시간'에 대한 재밌는 설정이다.
샤오치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1초 '빠른' 여자다. 덕분에 사진 속 그의 모습은 전부 눈을 감고 있으며, 노래도 춤도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사람들과 엇박자를 낸다. 영화를 볼 때도 남들보다 빨리 웃는다.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스틸컷. D.seeD디씨드·트리플픽쳐스 제공
이와 반대로 타이는 모든 것이 1초 '느린' 남자다. 시계마저도 그가 바라볼 때는 일상적인 흐름을 거부하고 느리게 움직인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마저 느리다. 영화를 볼 때는 남들보다 한 박자 늦은 타이밍에 웃는다.
영화는 두 개의 시점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갑자기 하루가, 그것도 기대로 한껏 부풀었던 발렌타인데이가 사라진 걸 알게 된 샤오치가 경찰에 분실 신고를 하게 된 때다.
카메라는 먼저 언제나 빠른 여자 샤오치의 시선을 따라 발렌타인데이 이전까지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까지 타이는 샤오치의 시선 안에 들어오지 못한 주변부 인물에 머무른다. 그런 타이가 샤오치의 세상에 속하게 되는 건 실종된 발렌타인데이 이후다.
샤오치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진행한 영화는 타이의 시선으로 발렌타인데이 전까지의 세상을 한 번 더 비춘다. 타이가 바라보는 세상에는 샤오치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리고 이는 사라진 하루와 엮인다.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스틸컷. D.seeD디씨드·트리플픽쳐스 제공
24시간이 통째로 사라진 세상이라는 판타지는 평범할 것 같던 영화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끈다. 1초 빠른 여자와 1초 느린 남자가 만들어낸 마법 같은 하루의 공백을 채워가는 과정은 '마이 미씽 발렌타인'을 여타 로맨스와 다르게 만드는 지점이다.
샤오치 모르게 그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던 타이는 자신을 제외한 세상의 시간이 멈추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것도 발렌타인데이에 말이다. 마치 이날을 위해 1초씩 저축하는 것 마냥 느리게 시간을 살아 온 타이 앞에 펼쳐진 세상은 선물과도 같다.
늘 느렸던 타이는 늘 빨랐던 샤오치를 따라갈 수 없었던 시간이 사라진 세상에서 천천히 그만의 속력과 방향으로 진심을 전한다. 샤오치를 데리고 버스로 자신에게 소중한 공간을 찾아가고, 언제나 눈 감은 사진밖에 없었던 샤오치에게 눈을 뜬 사진을 찍어준다.
늘 타이를 가로막던 시간이 사라졌기에 가능한 순간들이 펼쳐진다. 멈춰진 24시간, 발렌타인데이는 타이로 인해 애틋한 시간으로 변한다.
놓쳐버린 줄 알았던 발렌타인데이는 사실 샤오치에게는 진정한 사랑이 결여될 뻔한 하루다. 샤오치의 빈 부분을 타이가 느리지만 차곡차곡 채워 넣으며 결국 잃어버린 하루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가득 찬, 어느 날보다 더욱더 의미 깊은 날이 된다. 결국 사랑을 구성하는 건 시간이 아니라 마음임을 샤오치와 타이가 보여준다.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스틸컷. D.seeD디씨드·트리플픽쳐스 제공
영화는 시간이 멈춘다는 설정 외에도 곳곳에 판타지적인 요소와 유머를 가미해 전반적인 분위기를 발랄하게 가져간다. 또한 비현실적인 상황에서도 타이가 멈춰진 세상에서 홀로 움직일 때, 다양한 각도로 타이를 둘러싼 세상을 비추는 카메라는 현실의 아름다움을 서정적으로 담아낸다.
유튜브나 OTT가 아닌 라디오, 스마트폰이 아닌 필름 카메라, 이메일이 아닌 편지 등 영화에 등장하는 아날로그 감성은 의외로 판타지적인 요소와 잘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낸다.
로맨틱 코미디에 미스터리와 판타지를 잘 엮어낸 감독의 연출 덕분에 영화는 흥미롭게 앞을 향해 전진한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샤오치와 타이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세상을 찬찬히 둘러보며 샤오치와 타이의 감정을 뒤따르게 만든다.
여기에 샤오치와 타이를 연기한 이패유와 유관정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연기는 관객들을 스크린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더한다.
119분 상영, 1월 14일 개봉, 12세 관람가.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포스터. D.seeD디씨드·트리플픽쳐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