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청문위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법사위 한솥밥'을 먹던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는 검증의 무대이면서도 여야 동료 의원들과 동거동락해왔던 '축적의 시간'이었다.
야당의 날 선 질의와 여당의 철통 방어가 오가며 때때로 청문회장에 웃음도 터져 나왔다.
판사 출신 3선 의원인 박 후보자는 19대 초선 시절부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될 때도 법사위원이었다.
박 후보자는 후보자 선서를 마친 뒤 모두 발언에서부터 여야 의원들과 눈을 맞추며 이름을 거론했다.
"존경하는 윤호중 위원장님, 기재위에서 함께 2년간 일했습니다. '우리' 김도읍 간사(국민의힘)님, 법사위를 같이 시작했습니다. 백혜련 간사님, 송기헌 전 간사님(이상 더불어민주당) 참 애 많이 쓰셨습니다. 우리 장제원 의원님(국민의힘) 수도 없이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밖의 여러 위원님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호명됐던(?) 김도읍 간사는 이날 오후 자신의 첫 질의를 시작하면서 포문을 이렇게 열었다.
"하아(한숨), 후보자님, 청문회답게 갑니다. 김○○(불법 투자업체 대표)이라는 사람 알고 있죠?"
김도읍 의원은 박 후보자가 다단계 불법 투자 혐의로 수사를 받는 친여지지모임 운영진 김모씨가 개최한 야유회에 참석한 사실을 문제 삼았다.
김 의원은 "화내지 말고 들어보세요"라며 박 후보자의 야유회 참석으로 투자자들이 현혹됐다는 진술 내용을 읊었다.
"노래를 시키면 (박 후보자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라고 하면 계곡물에 들어가서 춤을 췄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질의에 나선 여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이렇게 두둔했다.
"김도읍 간사님이 질의하는 과정에서 김○○이 오히려 갑의 위치에 있는 것 같습니다. 춤추라면 춤을 추고라는 이야기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정치인의 위치가 이런 거구나. 지역구 의원들은 알지만, 유권자들에게는 정말 을 중의 을 위치에 있습니다. (중략) 굉장히 정치인의 애환이 느꼈습니다."
당시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박 후보자의 '애환'으로 평가한 것이다.
바통을 넘겨받은 장제원 의원은 "한표라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의 비애에 공감합니다만"이라고 발언을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사시존치를 요구하는 고시생들에게 100분의 1만이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씁쓸한 마음"이라고 지적했다. 박 후보자를 찾아온 고시생들과의 폭행 논란을 거론한 것이다.
장 의원은 박 후보자가 과거 대변인 시절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의 재산신고 누락을 "고의성이 다분하다"고 한 논평을 되돌려주며 박 후보자의 재산신고 누락을 지적했다. 박 후보자는 "그 의원은 몰랐다고 해서 무혐의 처리가 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그다음 두 사람 사이 대화는 이랬다.
"그러니까요."(장제원 의원)
"그러니까요."(박범계 후보자)
"아니, 그러니까요."(장 의원)
"그러니까요."(박 후보자)
청문회장에서 웃음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두 사람도 멋쩍은 듯 웃었다.
박 후보자는 과거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 때 위원장 대행을 맡았다가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박뿜계'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장제원 의원이 증인의 답변 태도를 문제삼으며 질의시간 1초를 남겨두고 제지를 요청하다 '풉'하고 갑자기 터진 웃음이었다.
장 의원은 이날 청문회에서 박 후보자를 향해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성이 후보자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라고 지적했고, 박 후보자는 "이중적이지 않다"는 답변을 내놓으면서 같은 질문과 답변이 반복됐다.
말미에 박 후보자는 재산 관련 소명을 내놓으며 "제가 장제원 의원님이기 때문에 말씀드린다"는 말을 덧붙였다.
박 후보자가 법사위원 시절 청문회에서 한 발언을 부메랑으로 돌린 야당 의원도 있었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박 후보자가 과거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프라이버시를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자료제출 거부를 용납하지 않았다"고 박 후보자의 가족이 받은 장애수당 수급에 관한 자료를 요구했다.
박 후보자는 "저는 금도를 넘지 않았다"고 답했다.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아 달라는 우회적 요구로 읽힐 만한 대목이다.
질의에 등장하는 가족은 박 후보자의 부모로 보인다. 박 후보자의 부모는 1급 장애인이었다. 부친은 어린 시절 집을 떠나 소식이 끊겼고, 역시 1급 장애인인 모친이 홀로 5남매를 키웠다고 한다.
같은 당 김남국 의원의 질의 순서 때, 박 후보자는 "어릴 적 부모님과 임연수라는 생선을 잘 조려서 김밥하고 같이 싸서 창경원에 가는 게 제 꿈이었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따뜻한 눈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장제원 의원의 앞선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박 후보자는 설명했다.
백혜련 간사는 "후보자와 제가 법사위에서 오랜 시간 함께했는데 저도 이번에야 처음 알게 됐다"며 "굉장히 제가 무심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박 후보자를 찾아갔다가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시존치 고시생 모임 회원을 "비정규직으로 열악환 환경에서 손가락 잘려가면서 일한 노동자도 아니고"라고 빗대 논란이 됐다.
같은당 김남국 의원은 20대 국회 패스트트랙 사건에 연루된 박 후보자를 두둔하며 "정황상 오히려 폭행을 당하였던 것이 아닌가"라고 발언했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후보자를 둘러싼 여야 난타전이 반복되지만, 2000년 인사청문제도가 도입된 뒤 현역 의원이 낙마한 적은 없다. '의원 불패'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다.
"동료 의원을 몰아세우기 어렵다"는 말을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저 자리에'라는 인식이 문제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날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은 불발됐다.{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