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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조사 매듭 '박원순 사건'…200일의 '혼돈' 무엇을 남겼나

사건/사고

    수사·조사 매듭 '박원순 사건'…200일의 '혼돈' 무엇을 남겼나

    • 2021-01-27 05:00

    수사기관 제역할 못해…6개월 훌쩍 넘겨 인권위發 피해 인정
    "가해자 처벌뿐 아니라 사건 진실규명도 수사기관 역할" 지적
    '피해호소인' 호칭으로 2차 가해 부추긴 여당과 朴 지지자
    "사건 초기부터 문제 제기 존중하는 피해자 보호 이뤄져야"
    단순 사과론 부족…책임자 처분, 개선책 마련·이행 '핵심'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영현이 지난해 7월 13일 영결식을 하기 위해 서울시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이를 부인 강난희 여사 등 참석자들이 뒤따르고 있다. 이한형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직권조사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박 전 시장의 언동은) 성희롱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하다"고 결론지으면서, 해당 사건에 대한 국가기관들의 '공적 판단'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앞서 지난해 7월 충격을 던졌던 박 전 시장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큰 상흔을 남겼다. 박 전 시장이 천만 시민을 이끄는 '3선 시장'이자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지난 1993년 국내 최초의 '성희롱' 소송인 서울대 신모 교수 사건을 승소로 이끈 인권변호사 출신이었단 점에서 후폭풍은 더 컸다.

    가해자로 지목된 그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초반부터 사건 양상은 혼돈 그 자체였다. 망자는 말이 없었고, 그 자리엔 각종 추측과 억측이 난무했다. '그럴 리 없다'며 박 전 시장의 사망을 안타까워하는 지지자들의 옹호를 포함한 진영 논리에 음모론까지 더해지면서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기도 했다. 현 시점에서 박 전 시장의 사건이 던진 시사점들을 짚어봤다.

    ◇가해자 사망 후 '덩그러니' 방치된 피해자…피해사실 인정에만 6개월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인권위는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 보고를 의결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했다. 이한형 기자

     

    피해자인 서울시 전직 비서 A씨가 가장 먼저 피해를 호소한 곳은 경찰이다. A씨는 지난해 7월 8일 박 전 시장을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소한 뒤 당일 고소인 조사를 마쳤다.

    박 전 시장은 여성단체를 통해 피소 가능성을 인지한 임순영 당시 서울시 젠더특보로부터 이를 전달받았다. 사건의 파장을 예감한 그는 이튿날 관사를 나가 소식이 끊긴 이후 7시간여 만인 7월 10일 새벽 성북구 북악산 숙정문 주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시는 충격에 휩싸였고, 과녁을 잃은 화살들은 모두 피해자의 몫으로 돌아왔다.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A씨를 비난하는 온라인 댓글 등 '2차 가해'가 시작됐고, A씨 측은 1차 기자회견과 함께 추가고소장을 접수하며 방어에 나섰다.

    피해자의 요청과 달리 수사는 연일 난항이었다. 박 전 시장의 통화내역 확인을 위한 통신영장 신청은 법원에서 막혔고, 박 전 시장 유족이 낸 포렌식 관련 준항고 및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되면서 또다시 벽에 부딪혔다.

    사건 발생 약 5개월이 흐른 지난해 12월에야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를 열어본 경찰이 내놓은 최종 성적표는 초라했다. 서울경찰청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고소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서울시 부시장 및 전·현직 비서실장 등 7명이 박 전 시장의 강제추행을 방조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혐의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등을 조사해 온 국가인권위원회의 제2차 전원위원회가 열리는 25일 오전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박 전 시장의 피소사실 유출 건을 수사한 서울북부지검은 박 전 시장이 생전에 사건 공론화를 의식한 발언을 했다는 사실 등을 밝혀 피해자 주장에 일부 힘을 실었다. 다만, 검찰은 "개인적 관계를 통해 정보를 취득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는 적용할 수 없다"며 경찰, 검찰, 청와대 관계자 등을 모두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로부터 20여일 뒤인 지난 25일, 인권위는 약 5개월 간의 직권조사 끝에 "박 전 시장이 업무와 관련해 피해자에게 행한 성적 언동은 인권위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박 전 시장이 숨진 뒤 정확히 200일 만이었다.

    A씨의 공동변호인단으로 활동해온 서혜진 변호사는 "이 사건에 대한 국가기관으로서 마지막 판단일 수 있는데, 명확히 성희롱이라고 인정한 데 의미가 있다"면서도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공식적으로 고소를 해 수사의뢰를 한 사건인데, 수사기관의 역할이 부족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사건이 있을 때 갑자기 유력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사망하면 다 묻어버리는 식의 관행은 수사기관이 끊어주길 바랐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며 "수사기관은 가해자를 처벌하는 기능뿐 아니라 실체적 진실을 파악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이 불가한 사안도 조사위원회를 꾸려 수사를 진행하는데, 가해자가 사망했다고 사건을 소극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수사기관 스스로 자신들의 기능을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이 앞장선 '2차 가해', 일파만파…"피해자 의사 존중돼야"

    지난해 7월 13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엄수된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에서 공동장례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가해자의 '위력'은 그가 몸담은 정당과 지지자들에 의한 '2차 가해'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전철을 밟게 된 거대여당은 패닉에 빠졌다. A씨를 두고 '피해자'가 아닌 '피해호소인'이라는 이례적인 호칭까지 등장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A씨에 대해 "당 대표로서 너무 참담하고 국민께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시정 공백에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호소인의 고통에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통렬한 사과를 드린다"고 사죄를 하면서도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를 고집했다.

    30여년간 여성운동을 해오며 '여성계의 대모'로 불렸던 같은 당의 남인순 의원 또한 당 내 여성의원들의 입장을 내는 과정에서 '피해호소인'이란 표현을 쓰자고 주도한 것으로 나타나 분노를 샀다. A씨는 지난 18일 남 의원을 지목해 "피해호소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신조어를 만들어 나의 명예를 훼손시켰고, 더욱 심각한 2차 가해가 벌어지도록 환경을 조성했다"며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박 전 시장의 측근과 지지자들에 의한 2차 가해도 빗발쳤다.

    민경국 전 서울시 인사기획비서관은 A씨가 과거 박 전 시장의 생일에 전달한 자필 편지를 페이스북에 공개했고, 경희대 미래문명원 김민웅 교수와 오성규 전 서울시 비서실장 등이 게시물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A씨의 실명이 잠시 노출됐다. 오 전 실장은 경찰 수사결과가 발표된 직후 "(서울시의) 묵인·방조가 거짓으로 드러난 만큼, 4년에 걸친 성폭력이라는 주장 또한 그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A씨를 공격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11일 서울시청 정문 앞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추모하는 조화가 놓여 있다. 박종민 기자

     

    지지자들 역시 A씨가 박 전 시장과 함께한 행사 영상 등을 공유하며 사건을 왜곡하는 한편 A씨의 의도를 의심하는 각종 음모론과 비난을 쏟아냈다. 이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박 전 시장 사건이 일종의 '진영 싸움'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간접적으로나마 2차 가해의 존재를 인정했다. 시(市) 차원의 성추행 방조 의혹 등을 사실로 확정짓지는 않았지만, 기관 내 성인지 감수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동료 및 상급자들이 피해자의 전보요청을 박 전 시장의 성희롱 때문이라고 인지했다는 정황은 파악되지 않는다"면서도 "객관적 증거는 확인하기 어렵더라도 두 사람의 관계를 친밀한 관계로만 바라본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관점의 차이라고 보여진다. 동료들과 상급자들이 박 전 시장과 A씨가 친하다고 인식하면서도 성희롱으로 문제의식을 갖고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라며 "이러한 부분이 결론적으로 묵인·방조 효과를 가져온 것 같다"고 부연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은 "가해자가 속한 그룹이나 세력, 위치는 달라도 (성폭력) 사건마다 각각의 이유로 사건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도는 매번 형성된다. 이것이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기본적 속성이고 구조적 문제"라며 "그래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과정과 절차를 중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진술이나 고소, 신고 등 피해자가 '이것은 문제다'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의사를 존중하는 피해자 보호가 처음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신속하고 전문적인 조사, 징계 등의 처분이 정확히 이뤄지는 과정이 제도적으로 반복되어야 사람들이 이를 신뢰하고 '피해자 색출'을 줄여나갈 수 있다. 가해자의 위치, 상황과 무관하게 이러한 접근이 무너지지 않는 게 중요한 실전"이라고 강조했다.

    ◇"책임자들이 책임져야 할 시간"…재발방지책 마련과 이행이 '핵심'

    지난해 7월 28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역 주변에서 한국성폭력 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촉구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이제 당면한 과제는 2차 가해 중단과 △관련자의 책임 있는 행동 △제도개선의 실효성 있는 추진이다.

    A씨 지원단체들이 모인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지난 25일 입장문을 내고 피해자를 향해 쏟아졌던 2차 가해 중단을 촉구했다.

    공동행동은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에서 2차 가해가 시작됐다"며 "가해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신호탄이었고, 일사불란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수호하기 위해 피해자의 일상을 끝도 없이 파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실의 영역이 아닌 믿음의 영역 안에 갇혀 피해자를 공격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뱉어 놓은 글과 말을 삭제해야할 것"이라며 "포털사이트, 커뮤니티, 유튜브 등에 유포되는 피해자에 대한 사진, 영상, 실명, 음해성 가짜뉴스 게시자들은 구속수사 및 엄중처벌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관련자들의 사과와 처벌 등도 남아있다. 피소유출 의혹에 휘말린 남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은 인권위 발표 직후 사과의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직·간접적으로 피해사실 자체가 부인돼온 만큼 단순한 사과만으로는 부족하다. 피해자 지원단체들이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가해자가 속해있던 정당으로서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하고 사안을 축소, 은폐하려 했던 모든 행위자를 엄단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권위가 서울시와 여성가족부,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에 관련 제도 개선을 권고한 만큼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가부는 "인권위 조사결과에 따른 우리 부 관련 제도개선 요청사항 대부분이 지난해 11월 대책에 반영돼 있는 내용이다. 앞으로 이를 적극적으로 조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도 "자체적으로 마련한 성차별·성희롱 근절 특별대책을 차질없이 시행하는 한편 추가 대책을 마련해 인권위 권고사항을 엄격히 이행하겠다"고 수용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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