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8일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앞에서 현대중공업 중대재해 관련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웅규 기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제정된 지 4주만에 현대중공업 울산본사에서 40대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중대재해법은 공포 1년 뒤 시행돼 이번 사고에 적용되지 않지만 노조는 법 취지대로 책임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지난 5일 오전 9시쯤 현대중공업 대조립 1부 공장에서 용접작업을 준비하던 A(43)씨가 2.5t 무게 철판에 협착돼 사망했다.
이날 A씨가 맡은 작업과 전혀 상관없는 바로 옆 판계작업장에서 고정되지 않은 철판이 흘러내려 A씨를 덮친 것으로 파악됐다.
위쪽에서 철판을 잡아 줄 크레인을 비롯해 아래쪽에서 흘러내리지 않도록 방지대 역할을 할 외판받이빔이 설치되지 않았다.
사고가 난 철판은 선수나 선미쪽에 설치 될 것이어서, 중량도 크지만 굴곡이 있기 때문에 작은 오차없이 단단하게 고정해야 한다.
크레인으로 철판을 이송하는 작업은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인 '현대중공업 모스(MOS)'가, 철판을 맞추고 용접하는 작업은 현대중공업이 맡았다.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이하 노조)는 8일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고가 난 당시의 표준작업지도서를 공개했다.
표준작업지도서(유해위험평가서)는 선박의 기초 뼈대에 해당하는 판계작업을 진행하면서 노동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작성한다.
노조는 "현대중공업 모스가 작성한 표준작업지도서를 보면 곡블럭 철판 탑재 작업시 안전조치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철판 낙하와 미끄러짐, 협착과 같은 위험이 언제나 있을 수 있음에도 구체적인 안전조치 내용이 전혀 없었다는 거다.
이는 실제 사고 현장에서도 확인됐다. 철판이 완전히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크레인이 해체되었고 미끄러짐 방지대도 설치되지 않았다.
노조는 "철판이 완전히 고정되기 전까지 작업 주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며 "현대모스와 현대중공업 간 작업 공유가 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했다.
이어 "현대모스는 철판이 탑재되고 가용접이 되기 전까지 천장 크레인을 해제하지 않아야 했고, 현대중공업은 가용접과 마끄러짐 방지작업을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모두 발언을 하고 있는 조경근 현대중공업지부장, 박준석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금속노조 박세민 노동안전보건실장(사진 왼쪽부터). 반웅규 기자
이처럼 업무공유나 분리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비롯해 재하청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노조는 "하청업체인 현대모스가 승리ENG에게 재하청을 줘 크레인 작업을 했다"며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제한된 시간에 많은 작업을 무리하게 진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조경근 현대중공업지부장은 "또 한 명의 가장을 귀가가 아닌 어이없는 죽음으로 몰고 간 이번 사고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며 "중대재해법 취지대로 사업주를 구속수사 하는 등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박세민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현대중공업 단일 사업장에서만 무려 486명이 사망했다. 재발방지대책을 계속 요구했음에도 바뀐게 없다"면서 "노동부 울산지청장을 직위해제하고 담당자를 징계해야 한다"고 했다.
현대중공업은 재발 방지 차원에서 이날 하루 전 공장 생산을 중단하고, 협력사를 포함해 생산 부문 임직원 전원이 참여하는 안전대론회를 열었다.
이상균 조선해양사업대표 사장은 "또다시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회사 문을 닫는다는 각오로 현장 안전을 사수하는데 임직원이 함께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