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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홀로코스트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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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 리뷰]홀로코스트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에 관하여

    외화 '살아남은 사람들'(감독 버르너바시 토트)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스틸컷. 알토미디어㈜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남겨진 건 무엇일까. 슬픔과 트라우마에 둘러싸인 채 살아남은 이들을 버티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감독 버르너바시 토트)은 그 답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8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부모가 행방불명 된 열여섯 살 소녀 클라라(아비겔 소크)는 홀로코스트로 가족을 모두 잃은 의사 알도(카롤리 하이덕)를 만난다.

    클라라와 알도는 나이를 뛰어넘는 친구가 되고, 서로를 딸과 아버지처럼 돌보며 잊었던 가족의 따뜻함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스탈린 지배하의 헝가리 사회는 여전히 경직되어 있고, 언제 다시 그들을 갈라놓을지 모른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제목처럼 시대의 비극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서로의 트라우마를 보듬으며 삶의 온기를 나누는 영화다. 이 작품이 홀로코스트를 다룬 여타 작품과 다른 지점이라면 바로 역사적 사건 그 이후에 남겨진 이들을 조명한다는 데 있다.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스틸컷. 알토미디어㈜ 제공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참극은 익히 알고 있다. 그러한 끔찍하고도 비극적인 일이 벌어진 이후 살아남은 이들에게 남는 건 상처다. 트라우마는 생존자들을 끊임없이 뒤쫓고 그들의 일상을 들쑤시며 '삶'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클라라와 알도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의 비극으로부터 살아남았다는 공통점을 가진 인물이다. 비록 나이와 지나온 각자의 삶은 다를지라도 동일한 상처를 품고 산다는 데서 그들은 동질감을 느낀다.

    영화 초반 클라라는 알도에게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을 꺼낸다. '왜 사느냐'는 질문은 클라라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알도 역시 지니고 있던 상처 그 자체다.

    실제로 초반에 나오는 클라라와 알도는 아슬아슬하게 위장된 평화 속을 위태롭게 걷던 인물처럼 보인다.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그저 살아남았기에 살아간다는 것마냥 표정도, 말도, 행동도 아슬아슬하다.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역시 그들을 예전처럼 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현재를 읽어 내려간다. 비슷한 상흔을 지닌 두 존재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은 곧 자기 자신을 마주 보는 시간이다.

    클라라는 종종 알도에게서 아빠를 떠올리고, 그 그리움은 엄마와 동생에 대한 깊은 향수로 이어진다. 클라라는 자신과 알도를 염화물(염소와 다른 원소가 화학 반응 시에 분해되지 않고 다른 화합물과 결합해 이뤄진 화합물)에 비교하기도 한다. 비극에 휩쓸리는 대신 살아남아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자책처럼 말이다.

    알도 역시 아내와 두 아이를 잃은 채 무채색처럼 살아간다. 이처럼 생을 얻은 대신 삶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두 존재는 아픔이라는 감정마저도 공유하며 서로를 보듬어 간다.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스틸컷. 알토미디어㈜ 제공

     

    클라라와 알도의 감정적 연대를 차갑게 바라보는 시선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감독이 둘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담은 건 같은 아픔을 간직한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강력한 감정의 공유다. 시대와 타인이 둘을 흔들지만, 둘은 묵묵하면서도 차근차근 그들의 길을 나아간다.

    영화는 왜 살아남았고, 왜 살아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했던 이들이 서로의 텅 빈 내면을 채워가며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여백이 많은 스크린 속 공간들은 마치 클라라와 알도의 내면처럼 느껴질 정도다.

    영화는 클라라와 알도가 각자의 상처, 즉 트라우마를 어떻게 마주하고 치유해 가는지를 따뜻하면서도 섬세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역사의 한가운데 존재했던 이들 모두가 겪은 과정이 클라라와 알도를 통해 그려진다. 결국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사람임을 보여준다.

    이는 비단 홀로코스트뿐 아니라 깊은 상처를 지닌 이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생존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치유의 과정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상처받은 이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가진 이들,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두려워하는 이들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와도 같다.

    클라라와 알도를 연기한 두 배우의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연기가 살아남은 두 존재의 삶을 스크린 속에 가득 채운다.

    알도 역의 카롤리 하이덕은 이 영화로 2020년 헝가리 필름 아카데미과 같은 해 헝가리 영화비평가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클라라 역의 아비겔 소크는 첫 장편 주연작인 '살아남은 사람들'로 2020 헝가리 영화비평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데 이어 미국 버라이어티지가 선정한 '주목할 유럽 영화인 10인'에 이름을 올렸다.

    88분 상영, 2월 10일 개봉, 15세 관람가.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포스터. 알토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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