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 은성수 금융원장. 윤창원 기자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을 놓고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금융결제원의 관할권을 차지하기 위해 정면 충돌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지급 결제와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전금법 개정안은 빅브라더(사회 감시·통제 권력)법이 맞다"고 강조했다.
전금법 개정안은 빅테크(대형 정보통신기업)‧핀테크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과 이용자 보호 체계를 정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은은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 등의 지불‧결제 수단을 통한 개인의 충전‧거래내역 등이 모두 금융결제원 한곳에 모여 금융위가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내용을 문제 삼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빅브라더 논란과 관련해 지난 19일 "지나친 과장이고 조금 화난다"며 "제 전화 통화기록이 통신사에 남는다고 통신사를 빅브라더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이날 "정보를 강제로 한데 모아놓은 것 자체가 빅브라더"라면서 "전금법이 빅브라더가 아닌 예로 통신사를 드는데, 이런 비교는 부적합하다"고 맞받아쳤다.
이 총재는 이어 "통신사를 빅브라더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은 맞지만, 여러 통신사가 가진 정보를 한곳에 모아두고 그걸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건 빅브라더가 맞다"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전금법 개정안 발의 목적이 소비자 보호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기관이 파산했을 때 예치금 주인을 찾아주거나 이용자에게 우선 변제하기 위한 취지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이주열 총재는 "금융결제를 한데 모아 관리하는 것은 소비자 보호와는 무관하다"며 "지금도 소비자 보호 장치는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금융결제원의 주 기능은 소액결제시스템, 금융기관끼리 주고받는 자금의 대차 거래를 청산하는 것이고, 이런 청산 업무는 중앙은행이 뒷받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책기관끼리 상대방의 기능이나 역할을 제대로 충분히 이해해 주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그게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고 비판했다.
두 기관이 한 치의 양보 없이 대립하고 있는 속내를 들여다보면 '금융결제원 관할권'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정안은 금융결제원 등 전자지급거래 청산기관에 대한 감독‧제재 권한을 금융위에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은은 "금융위가 금융결제원을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으로 지정해 관리‧감독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고유기능인 지급결제제도 운영‧관리 업무를 감독 당국이 통제하려는 의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금융위는 개정안 부칙에 '금융결제원의 업무 중 한은이 결제기관으로 불이행 위험을 감축하는 장치를 마련한 업무에 대해선 자료제출과 검사 대상 등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한은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두 기관의 수장이 상대기관에 대한 날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어 빠른 시일안에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