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피해 아동쉼터'는 학대당한 아이들을 부모 등으로부터 격리해야 할지를 법원이 판단하기까지 임시로 아이들을 보호하고 치유하는 공간이다. 법원의 판단이 길어지면 수개월을 머무를 수도 있다. 하지만 쉼터는 성별구분만 있을 뿐이다. 나이나 장애와 같은 전문적 '케어'가 필요한 요소들은 간과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CBS노컷뉴스는 영유아와 장애아 등이 뒤섞여 쉼터에서조차 쉬지 못하는 학대피해 아동쉼터의 현주소를 조명한다. [편집자주]
그래픽=고경민 기자
"툭하면 소리를 지르고 울어요. 몇 시간씩 제 머리끄덩이를 잡혀가면서 매달려야 해요. 다른 애들도 신경을 써야 하니 '멘붕'이 오는 겁니다."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초등학생 영윤이(가명)는 6개월 전 엄마에게서 폭행을 당하는 것 같다는 학교 선생님의 신고로 가정으로부터 긴급 분리 조치됐다.
하지만 장애아를 선뜻 받아주는 학대피해 아동쉼터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두 달여를 친척집을 떠돌았다. 가까스로 차로 한 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의 쉼터에서 영윤이를 받아줬다.
이때부터 영윤이는 부모의 학대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아갔다.
◇장애아 경험 없는 복지사만 '끙끙'하지만, 영윤이가 들어오면서 쉼터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자폐증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는 영윤이의 지적능력은 세 살에서 멈춘 상태다. 영윤이는 홀로 화장실을 가는 것도 버거울 정도다. 물건을 던져 부수는 일도 다반사다.
문제는 모든 보육사들이 영윤이 케어에만 집중하다보니 쉼터에 함께 머물고 있는 여섯 명의 학대 피해 아동들은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쉼터 보육사 A씨는 "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영윤이한테만 집중을 해야 한다"며 "다른 아이들을 돌볼 겨를이 없어 막막하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쉼터에는 A씨를 포함해 복지사 자격이 있는 3명의 보육사가 근무하고 있지만, 누구도 장애인 보육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없다.
A씨는 "장애아들의 심리상태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어 어떻게 보호하고 관리할지 모르겠다"며 "예산이 부족해 장애인 간병인을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장애 전문 보육사가 있지 않는 한 더 이상 버티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전담 보호·관리 사각지대' 놓인 학대피해 장애아들3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전국의 학대피해 아동쉼터 76개소 가운데 장애아를 위한 전용쉼터는 한 곳도 없다.
다만 '학대피해 장애인쉼터'가 전국 17곳에 있기는 하지만 장애 아동을 따로 구분하지 않아 안정적인 보호가 힘든 구조다.
그마저도 시설은 이미 포화상태다. 보건복지부의 '2019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를 보면 학대피해 장애아 10명 중 6명은 '학대피해 아동쉼터와 장애인쉼터'를 못 구해 단기보호시설이나 폭행을 당했던 집으로 돌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때문에 쉼터의 보호를 받지 못한 학대피해 장애아들이 재학대 위험 속에 방치되고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학대피해 장애아동 서비스 지원체계 마련연구 보고서'에는 2015년 기준 학대피해 장애아동의 재신고율은 28.5%로 비장애아동의 2배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학대피해 장애아들은 아동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아동쉼터와 장애인쉼터를 통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재학대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장애아 전담 관리 필요, 증상별 치료체계 병행"전문가들은 장애아동들은 비장애 아동들보다 더 심한 불안 증상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격리된 장소에서 집중 보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정신지체 등 선천적인 장애뿐만 아니라 자폐증이나 ADHD가 있는 경우 여러 사람들이 뒤섞인 공간에서 증상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곽 교수는 "어린 장애아동일수록 집중적인 심리치료를 통해 과잉행동 등의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크다"며 "비장애 아동이나 성인과 분리하는 것과 더불어 장애 정도에 따라 학대피해 아동을 세분화해 보호,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