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70도 보관 백신 모의 샘플을 이용한 극저온 온도변화 감지장치의 실온 노출 실험. 실온에서 1분까지의 노출은 이력이 기록되지 않지만, 2분부터 확산이 시작돼 10분이 지나면 육안으로 뚜렷하게 식별된다. 한국화학연구원 제공
국내 연구진이 코로나19 백신이 안전하게 보관되고 유통됐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온도변화 감지장치를 개발했다.
극저온 보관·유통이 필요한 백신이 권장온도 이상 노출됐는지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12일 한국화학연구원에 따르면 박제영, 오동엽, 황성연 박사팀이 개발한 장치는 백신병 옆에 특정 화합물을 담은 용기를 붙여 백신의 보관 온도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현재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유통되고 있는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모더나, 얀센 백신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상온에서 보관·유통할 수 있지만, 화이자 백신은 영하 70도 정도의 극저온에서, 모더나 백신은 영하 20도의 저온에서 보관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백신이 영하의 저온에서 보관·유통됐는지 직관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극저온 상태에서 보관해야 하는 mRNA 백신이 상용화된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 없어 관련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활용한 물질은 에틸렌글리콜(알코올이 포함된 화합물로 무색의 끈끈한 액체)과 물을 섞은 물질로 자동차 엔진의 과열을 막아주는 냉각수로도 많이 쓰인다. 녹는점이 영하 69도로 영하 69도 이하에서는 고체 상태를 유지하지만, 그 이상의 온도에서는 녹기 시작한다.
연구팀은 이 물질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색소를 넣고 색소가 번지는 걸 볼 수 있는 하얀 펄프 가루를 그 밑에 흡착제로 넣었다.
즉 물질이 영하 69도 이상의 온도에 노출돼 고체에서 액체로 변하면 액체가 화합물 밑의 펄프 가루에 스며들면서 사인펜 색이 젖은 종이에 번지듯 색깔이 번지기 시작한다.
영하 70도 정도의 극저온에서 보관해야 하는 화이자 백신에 적용하면 영하 60도 이상 노출 시 5분 이내에 색이 번지고 상온(영상 20도)에 노출되면 2분 이내에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권장온도보다 높은 온도에 노출된 시간이 길어질수록 색이 더 많이 번져 손쉽게 노출 정도를 알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에틸렌글리콜 대신 다른 화합물 '수크로오스(d-sucrose)'와 물을 섞으면 영하 20도에서 보관해야 하는 모더나 백신에 적용할 수 있다.
연구팀은 유통이나 사용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상온에 짧게 노출될 때 색이 번지지 않도록 화합물의 비율을 설정했다. 권장온도 이상에서 2분 이상 노출됐을 때만 색이 번지도록 했다.
왼쪽부터 황성연, 박제영, 탄-하오 (박사과정), 오동엽 박사. 연구팀이 '극저온 온도변화 감지장치'가 부착된 백신 모의 샘플을 들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제공
에틸렌글리콜을 40%, 물을 60%의 비율로 섞으면 온도가 영하 69도보다 올라가도 고체가 바로 액체로 변하지 않고 고체와 액체가 섞여 있는 상태가 일정기간 지속되기 때문에 짧은 시간의 온도 변화로는 색이 번지지 않는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 장치는 상온에 노출된 후 다시 극저온에 두어도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조작이 불가능하다고 연구팀은 덧붙였다.
연구책임자 박제영 박사는 "아직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온도 조절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지만, 해당 아이디어가 빠르게 적용될 수 있도록 백신 취급 및 운송 기업과 협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