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박종민 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이 재판부가 과거 '사법농단 사건' 단죄 의지를 드러냈다는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재판 진행의 공정성을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 기피신청은 하지 않기로 했다. 재판부는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규정한 '헌법 103조'를 읽으며 재판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거둬 달라는 뜻을 내비쳤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1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 대한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올해 1월까지 거의 매주 이어지던 공판이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 대한 1심 판결과 맞물리며 멈춘 지 약 3달 만이다.
재판부는 이들에 대한 1심 판결 선고 의미를 어떻게 여기는지 검찰과 변호인에게 묻고 이후 재판 진행 방식을 논의하고자 이날 정식 공판이 아닌 준비기일로 진행했다. 앞서 형사합의 36부는 지난달 23일 이 전 상임위원과 이 전 실장에게 각각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며 임 전 차장의 공모도 일부 인정한 바 있다.
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이 출석할 의무가 없어 임 전 차장은 나오지 않았고 변호인만 법정에 출석했다. 변호인은 "관련 사건 판결의 의미를 어떻게 여길 수 있는지 의견을 밝히라는 취지인데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피고인(임종헌 전 차장)의 의견을 내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판결 선고 의미에 대해 피고인은 말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의견을 물을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정면으로 지적한 셈이다.
재판부에 대해 기피신청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같은 증인을 중복 소환하지 않는 방식으로 공판을 진행하자는 검찰 측 의견에 "동의한다"고 밝히며 해당 재판부에서 계속 재판을 받겠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그러면서 조선일보의 지난 2월 한 기사 내용과 관련해 사실조회 신청을 하겠다고도 밝혔다. 조선일보는 이 사건 재판장인 윤종섭 부장판사가 2017년 10월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반드시 진상 규명을 해서 연루자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 사진공동취재단
변호인은 "김 대법원장이 해당 시기 '판사 블랙리스트' 재조사 관련 판사 10명을 초청해 면담한 사실이 실제 있는지, (있다면) 명단은 누구인지, 명단 중 해당 보도처럼 "진상규명을 해야한다"고 말한 판사는 누구인지, 이 발언이 보존돼 있는지 등에 대한 것"이라며 "신청 목적은 재판 공정성 관련이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재판부의 심증이 이와 같다면 그 자체로 편향적일 수 밖에 없다는 의중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김 대법원장의 임성근 전 부장판사 사표 제출 당시 논란을 언급하며 "민법상 이중적 태도이며 공정성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이 부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러한 사실 조회 신청을 인용할지 말지 여부는 검찰 측의 의견도 들은 뒤 추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별도로 기피신청을 하지 않은 만큼 오는 26일부터 다시 공판을 재개하고 증거조사를 이어가겠다고도 밝혔다.
재판부는 재판을 끝내기 직전 "한마디만 더 하겠다"며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법대에 앉아있는 재판부 구성원 모두가 이 조항이 정한 법관이며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며 공정하게 심리하고 있다는 입장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