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전국택배연대노조(택배노조)는 서울 강동구 상일동역 1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파트 단지 앞 배송을 더 진행할 경우 조합원들에게 정신적으로 매우 큰 충격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하에 조합원을 보호하기 위해 단지 앞 배송을 일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진 임민정 수습기자.
택배 차량의 지상 도로 출입 금지 등 아파트 '갑질'에 단지 입구까지만 배송하기로 한 택배 노동자들이 입주민들의 항의에 결국 정상 배송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일시적인 조치일 뿐, 아파트와 택배사에서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면 '총파업'까지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민들 항의성 문자에…노조 "조합원 보호 위해 다시 정상배송"
16일 전국택배연대노조(택배노조)는 서울 강동구 상일동역 1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파트 단지 앞 배송을 더 진행할 경우 조합원들에게 정신적으로 매우 큰 충격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하에 조합원을 보호하기 위해 단지 앞 배송을 일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8일부터 단지 앞 배송에 참여한 택배 노동자들은 주민들로부터 비난·조롱이 뒤섞인 항의 문자와 전화를 받았다. 주민들은 "제 택배가 부피가 커서 보여주기에 이용하는 것이냐", "다른 택배 기사들은 저상차 잘 이용하고 있는데, 왜 앞으로 마주치면 얼굴 붉히게 만드는 것이냐. 좋은 기사분들 끌어들여 피해를 주나. 참 못 됐다" 등 문자를 보냈다.
택배노조는 "일부 입주민들이 우리 택배 기사들에게 참을 수 없는 비하 발언과 조롱, 모욕, 심지어 협박하는 내용의 문자 폭탄을 보냈다"며 "한 분은 정신적 공황상태까지 빠지는 등 정신적 피해를 호소했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든 정리되면 고객들과 얼굴 맞대고 배송해야 하는 분들이라 많이 힘들어했다"고 설명했다.
16일 전국택배노조가 공개한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입주민들의 항의성 문자. 한 사람이 5~6건의 문자를 발송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진 전국택배노조 제공.
다만 개별배송 재개는 일시적인 것일 뿐, 사태 해결이 될 때까지 아파트 단지 앞에서 촛불집회와 농성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또 사태 해결을 위해 택배사가 나서지 않을 경우 오는 18일 긴급 중앙집행위원회, 25일 전국대의원회의를 열어 총파업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들은 "일부 몰지각한 입주자대표회의나 입주민들 행태에 택배 노조와 기사들은 지지 않고 싸워왔다. 국민들이 이 사회에 정의가 흘러넘치도록 지지와 응원 보내줬는데 여기서 이렇게 중단할 수는 없다"며 "이번 사태를 국민과 함께하는 저항운동으로 확산시켜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어 "이번 '입구 앞 배송' 투쟁에 동참하지 않았던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등 기사들을 주말 동안 만나 설득해서 다음주 부터는 더욱 큰 투쟁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상차량과 손수레 배송 등 기사들의 뼈와 살을 갈아 넣는 배달 행위에 택배사가 앞장 서서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고, 고덕동 아파트를 '배송 불가 지역'으로 선포하라고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며 "총파업을 포함한 강력한 투쟁으로 택배사들에 대해 엄중한 투쟁을 전개해 내갈 것이다. 싸움은 이제부터"라고 덧붙였다.
16일 전국택배연대노조(택배노조)는 서울 강동구 상일동역 1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파트 단지 앞 배송을 더 진행할 경우 조합원들에게 정신적으로 매우 큰 충격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하에 조합원을 보호하기 위해 단지 앞 배송을 일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진 임민정 수습기자.
◇갈등 원인은 그대로…"대화하자" vs "일방적 매도"고덕동 아파트 택배 논란은 지난 1일 시작됐다. 약 5천 세대 규모인 이 아파트는 안전사고와 시설물 훼손 우려 등을 이유로 택배 차량의 아파트 단지 내 진입을 금지했다. 기존 택배 노동자들에게는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는 '저상차량'으로 바꾸거나 손수레를 이용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택배 노동자들은 전형적인 아파트 측의 '갑질'이라며 반발했다. 택배 차량을 대부분 자비로 부담하는 노동자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는 저상차량으로 바꾸라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일반 택배 차량이 저상차량보다 더 많은 물건을 실을 수 있다.
게다가 저상차량은 상하차 시 노동자 건강에 심각한 무리를 준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차량에 오르내리며 물건을 옮겨야 하는데, 차량 높이가 낮아진다면 근골격계 질환이 더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반 택배 차량의 화물칸 높이는 1m 80cm인데 반해 저상차량의 높이는 1m 27cm에 불과하다.
택배노조는 "일반 차량에서는 허리를 펴고 작업할 수 있으나, 저상차량의 경우 허리를 깊이 숙이거나 기어 다니면서 작업해야 한다"며 "아파트 입주민들이 편리하게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고, 아파트 단지를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드는데 왜 모든 걸 택배 노동자가 감수해야 하냐"고 주장한다.
반면 아파트 측은 1년 간의 유예 기간을 준 데다 택배사와 협상을 진행 중이었는데 노조 측이 일방적으로 주민들을 매도했다는 입장이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사용자 측인 택배회사에 지난해 3월부터 수차례 지상운행을 자제하고 대신 저상차량 배차를 통한 지하주차장 운행 및 배송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며 "아파트 지하에 일정 공간을 마련하는 등 '통합택배 시스템'을 제안했지만 노조 측이 일방적으로 협의를 중단하고 기자회견을 진행해 입주민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재 고덕지구의 공원화 아파트 단지들은 이미 다 저상차량을 통한 지하주차장 운행 및 배송이 이뤄지고 있는데, 왜 우리 아파트 단지만을 대상으로 노조가 이의를 제기하고 협상을 요구하는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며 "노조가 우리 아파트를 일방적으로 매도한 행위에 대한 해명이 선행돼야 협상 요청을 공식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6일 전국택배노조가 '문 앞 배송'을 결정한 이후 한 택배 노동자가 손수레에 배송할 물건을 옮기고 있다. 사진 임민정 수습기자.
◇협상 제의에 아파트 '무응답'…택배사도 '침묵'
이날부터 재개 된 '문 앞 배송'은 쉽지 않아 보였다. 한 택배기사 A씨는 일반 택배 차량으로 단지 입구까지 온 다음 손수레로 물건을 옮기기 시작했다. 손수레에는 과일과 야채 박스 등 약 15개 정도의 물건만 옮겨 실을 수 있었다. 이렇게 6개 동을 배송하는 데 약 1시간 정도 소요됐다. 이 아파트는 총 53개 동으로 이뤄졌다.
A씨는 "다른 곳보다 여기는 더 많이 걷는다"며 "도로가 울퉁불퉁해서 더욱 힘들다"고 토로했다.
택배노조는 지난 8일 아파트 측에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허용해달라며 대신 '아파트 단지 내 안전 속도 협의', '택배 차량 후면 카메라 의무 설치', '안전 요원 배치' 등을 제안했지만, 아직 답변은 없다.
이외에도 아파트 입구에 '택배보관함' 설치나 '실버택배' 도입 등이 해결책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비용 문제 등 이유로 도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문제 해결의 한 축인 택배사는 아파트 측 요구대로 각 대리점 및 택배 노동자들에게 저상차량을 도입하라는 입장만 유지한 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