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박종민 기자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의혹으로 재판 중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재판장에게 "법관의 양심보다 개인의 양심을 우선한 것이 아닌지 깊은 우려를 하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26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 대한 공판을 진행했다. 임 전 차장과 일부 혐의가 겹치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올해 3월 유죄를 선고한 후로는 처음 열리는 임 전 차장에 대한 정식 재판이다.
재판부는 이날 공판에서 임 전 차장 측 사실조회 신청을 기각했고 이에 대한 피고인 측의 이의신청이 있었다며 이에 대한 검찰과 피고인 양측의 의견을 들었다.
앞서 임 전 차장 측은 이 사건 재판장인 윤종섭 부장판사가 2017년 10월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단죄 의지를 밝혔다는 조선일보 보도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겠다는 취지로 신청서를 냈지만 지난 20일 기각됐다.
직접 발언 기회를 요청한 임 전 차장은 "재판장은 지난 공판준비기일에서 이 사건 재판에 임하는 자세와 관해 헌법 103조에서 말하는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을 언론 보도를 통해 본 바 있다"며 "잘 아시는 것처럼 헌법 103조에서 말하는 법관의 양심은 헌법 19조에서 말하는 개인적 양심과는 확연히 구별된다"고 말했다.
이어 "만일 조선일보 보도와 같이 재판장님이 발언했다면 법관으로서의 직업적 양심보다는 개인적 양심을 우선한 것이 아닌가 피고인은 깊은 우려를 하고 있다"며 "이 점에 대해 재판장의 깊이 있는 숙고와 성찰을 부탁드린다"며 사실조회 신청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준비기일에서 헌법 103조를 언급하며 공정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는 윤 부장판사의 입장을 개인의 양심 관련 조항인 헌법 19조를 언급하며 맞받아 친 것으로 공정한 재판에 대한 우려를 재차 부각한 셈이다.
반면 검찰은 "사실 조회는 법원이 공판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변호인의 사실조회 신청은 목적을 보더라도 법원의 공판 준비 위해 필요한 사항도 아니고 재판부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재판부의 결정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양 측의 의견을 종합해 추후 이의 신청 허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앞서 이 재판부는 지난 3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규진 전 위원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이민걸 전 실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는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들 중 처음으로 나온 1심 유죄 판결이다.
특히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을 통해 비공개 정보와 자료를 수집한 혐의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권보장을위한사법제도소모임(인사모)의 활동을 방해한 혐의 등에 대해 임 전 차장의 공모도 인정하면서 사실상 임 전 차장에 대한 유죄 판결이 예고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