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국가브랜드경쟁력지수' 타이어 부문 13년 연속 1위, '2021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타이어 산업 부문 12년 연속 1위. 대전과 충남 금산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한국타이어의 수식어다. 하지만 한국타이어에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13년 전 노동자 10여 명이 심장 질환과 암 등으로 잇따라 숨지며 '죽음의 공장'이라 불리기도 한 것. 당시 집단 역학조사가 이뤄졌지만, 다양한 암과 작업현장과의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다. 13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하다 다치거나 죽고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노동부의 감독이 이뤄지고 수백 가지의 위반사항이 적발된다. 수억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현장의 위험은 아직도 개선되지 않았고,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하루하루는 여전히 위태롭다. 대전CBS는 한국타이어의 작업현장 실태와 노동부의 관리·감독 현황을 살펴보고, 멈추지 않는 사고의 원인을 다각도로 조명해 해결책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의 내부 모습. 독자 제공
한국타이어에 대한 대전고용노동청의 감독 기간에도 사흘에 한 번꼴로 산업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복되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는커녕 감독 기간에도 마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고가 이어지면서 정부의 허술한 감독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감독관이 감독 중인데도 '사고' 빈번한국타이어에 대한 고용노동청의 감독은 지난 2017년부터 총 98일에 걸쳐 이뤄졌는데, 이 기간에 2.6일에 한 번씩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수년 전부터 감독에서 드러난 위반사항이 개선되지 않고 반복해서 적발되면서 감독이 '무용지물'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대전CBS는 대전고용노동청이 한국타이어에 대해 실시한 감독을 전수조사했다.
먼저, 대전공장의 경우를 살펴보면, 2017년부터 노동청이 한국타이어 대전 공장에 대해 실시한 수시·정기·특별감독은 8차례, 기간은 총 50일이다. 이 기간에 11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했는데, 지난해 11월 17일부터 12월 18일까지 실시한 특별감독 기간에만 총 10건의 사고가 났다.
해당 기간에 발생한 사고를 살펴보면 설비에 말려 끝내 노동자가 숨진 사고를 포함해 베임, 부딪힘, 넘어짐, 과도한(무리한) 힘·동작으로 노동자들이 다치는 일이 잇따랐다.
금산공장의 경우 사고가 더 자주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청이 2017년부터 금산공장에 대해 실시한 감독은 7차례, 기간은 총 48일이다. 금산공장의 감독 기간에 발생한 사고는 총 26건으로 집계됐다.
대전고용노동청. 김미성 기자
대전공장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11월 실시된 특별감독 기간에만 24건의 사고가 잇따랐다. 사고 유형은 절단·베임·찔림, 넘어짐, 떨어진 물체에 맞음, 사고성 요통 등으로 나타났다. 그 외 비사고성 작업 관련성 요통, 과도한(무리한) 힘·동작에 의한 부상도 있었다. 노동자들은 특별감독 기간 이러한 사고로 다쳐서 일할 수 없는 날이 최대 60일에 달했다. 이 사고들은 모두 근로감독관이 공장에 투입돼 지도·감독을 하는 와중에 버젓이 발생한 것들이었다.
◇감독에 여러 차례 적발돼도, 개선 안 하면 그만?감독에서 수차례에 걸쳐 적발된 사항이 또다시 적발되면서 개선되지 않고 있는 점도 확인됐다.
2017년 5월 대전공장과 금산공장에서 실시한 사고성중상해재해 발생 사업장 감독에서 한국타이어 측은 △안전난간 구조 미비 △MSDS 경고표지 미부착 △출입금지 미실시 등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10월과 11월 금산공장과 대전공장에 대해 실시한 감독에서도 △난간 미설치 △협착방지 미조치 △컨베이어 비상정지장치 미설치 등이 적발된다.
또 2019년 11월 두 공장에 대해 실시한 사고성 중상해재해 발생 사업장 감독에서도 한국타이어 측은 △난간 미설치 △국소배기장치 제어풍속 미달 △협착방지 미조치 등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사고가 발생해 실시한 지난해 특별감독에서는 △성형기 벨트드럼 등 끼임 위험점에 대한 방호장치 미설치 △국소배기장치 제어풍속 미달, 덕트 파손, 작동 불량 등 관리상태 미흡 △배치전건강진단 및 특수건강진단 미시행 △안전보건표지 미부착 등이 드러났다.
적발 사항을 종합해보면, 난간 미설치, 협착방지 미조치, MSDS 미게시 및 경고표지 미부착 등은 감독마다 적발되다시피 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안전과 직결된 추락이나 끼임 등을 방지하는 시설이 개선되지 않은 사이 노동자가 설비에 끼여 숨지는 등 산재 사고는 반복됐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부 감독 시스템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으로, 정부가 감독을 충실하게 진행했다면 유사한 사고가 줄어들거나 한 번 적발된 것들이 개선됐어야 했지만, 현장의 위험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근로감독관 역시 감독의 한계를 인정하는 상황이다.
대전고용노동청 한 근로감독관은 "사업장이 크고 근로자도 수천 명에 달해 감독에 들어가도 모든 설비나 모든 근로자에 대해 일일이 세세하기 볼 순 없는 상황"이라며 "현장을 감독하더라도 정비보수 같은 비정형 작업을 전부 확인하긴 어렵고, 특히 한국타이어는 근로자가 몸으로 타이어 직접 다루다 보니 근골격계 부담 작업이 많아서 구조적으로 근골격계질환이 많이 발생한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노동청 감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강력한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노동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중앙대 이병훈 사회학 교수는 "그런 사고가 계속 발생하도록 방치 내지는 조장하는 사용자의 책임 못지않게 사고를 막아야 될 행정적인 조치가 따르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더는 이런 일이 발생이 되지 않도록 사후조치가 엄정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까 해당 사업장에서 이런 문제를 소홀히 하고 재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동전문 손익찬 변호사 역시 "매년 사망 사고가 한두 건씩 나면 언론의 주목을 받고 노동부가 특별감독에 들어가 수백 건을 적발하고 몇 억씩 과태료 물린다. 그런데 몇 년 뒤 감독하면 똑같다. 개선되는 게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감독에 따른 처벌이 무섭지 않다는 것이다. 비용을 들여 개선하는 것보다 내버려 둬도 기업 운영하는 데 크게 상관없다는 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해조사의견서에 현장 노동자 지적사항은 '부실'산재 예방과 대처의 기초 자료로 노동자의 업무 구조와 환경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자료인 재해조사의견서에 정작 노동자의 목소리는 담기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앞서 2017년 10월 22일 오후 7시 10분쯤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제1공장에서 30대 노동자 A씨가 끊어진 고무시트를 손으로 올리던 중 맞물려 가동되는 벨트와 벨트 사이로 손 등 신체 일부가 말려 들어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전CBS가 입수한 해당 사고의 재해조사의견서에 따르면, 사고가 난 원인은 두 가지였다. 벨트 컨베이어 상의 비상정지장치 설치 위치가 부적절했던 점과 컨베이어가 가동 중인 상태에서 끊어진 고무시트를 벨트 위에 올린 점이다.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은 해당 사고에 대해 현장 노동자들이 지적한 문제가 재해조사의견서에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금산공장의 노동자 A씨는 "해당 작업은 2인 1조 작업이지만, 식사시간의 경우 설비를 세우지 않기 위해 교대로 밥을 먹으며 밥 교대를 한다"며 "숨진 A씨의 경우 2호기 보조원인데, 4호기 보조원과 밥 교대를 하면서 2호기, 4호기 업무를 동시에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혼자 2대를 작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홀로 작업하게 된 상황에 대한 조사가 부실했다"고 꼬집었다.
대전고용노동청 측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배제했다는 지적에 대해 "감독이나 TF를 할 때 양 노조를 포함해 사전 설명을 하고, 노사가 참여해 진행하고 있다"며 "(사고 이후) 노사정 합동 TF를 운영하며 노동조합 의견도 적극 수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노동전문 손익찬 변호사는 "정부가 짚어낼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재해조사의견서를 작성할 때 기계밥 먹고 일하는 현장 노동자 목소리가 좀 더 반영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의당 남가현 대전시당위원장 역시 "현장작업시스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감독에 참여하는 것이 굉장히 필요하다"며 "그래야 실질적으로 현장을 바꿀 수 있는 안전조치 등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