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북부에는 화력발전소를 비롯해 대산 석유화학단지, 현대제철 등 다(多)탄소 배출 산업들이 밀집해있다. 사진은 보령 석탄화력발전소 모습. 신석우 기자
탄소중립의 목적은 간단하다. 지구와 인류의 지속성 확보다. 폭염과 혹한, 미세먼지 등 기후변화 위기에서 살아남자는 것이다. 지구 평균 온도가 1.5℃ 상승하면 기후는 재앙이 된다. 온도 상승의 주범인 탄소 배출량을 2050년까지 제로(±0)로 줄이자는 것이 탄소중립, 즉 넷제로(Net Zero)이고 200여 국가가 넷제로를 약속한 것이 파리기후협약이다.
탈(脫)석탄으로 대표되는 탄소중립은 생활과 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플라스틱은 줄이고 쓰레기는 재활용(자원순환)해야 한다. 화력발전은 태양광발전 등 재생에너지 100%(RE100)를 향한 에너지로 전환해야 하고 관련법도 제·개정해야 한다. 소비 패턴과 생산 공정이 바뀌고 일자리가 생기거나 사라지면서 산업도 재편된다. 이 과정에서 배제·낙오되는 시민은 없어야 한다.
지속성 확보는 탄소중립만으로 가능할까. 공정과 정의 등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류 가치에 반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 이를테면 양극화와 혐오라는 산을 넘지 않고도 가능할까. 양극화는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고 혐오 범죄는 내 가족을 위협한다. 공정과 정의를 둘러싼 갈등과 불만은 사회 비용을 배가시킨다. 배려와 공동체, 포용적 사회를 향한 인식 전환이 중요한 이유다.
탄소중립과 포용적 사회로의 대전환을 우리는 '도시 전환'이라 부른다. 도시전환의 주체인 국가와 기업, 시민 가운데 성패의 열쇠를 쥔 것은 역시 시민의 동참이다. 대전CBS는 시민들의 이해와 동참을 돕는 한편 넷제로 생태계 조성과 이를 위한 탄소화폐 도입을 제안하는 기획보도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신석우 기자
탄소중립은 이제 기후위기만을 뜻하지 않는다. 먹고 사는 경제적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한국의 수출 기업들이 탄소중립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2030년에는 160조 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이란 어두운 전망이 제시되기도 했다.
◇탄소중립(넷제로)이란탄소 배출은 줄이고 포집 및 흡수는 늘리고.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0(Net Zero) 감축하겠다는 개념이다.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 이상 상승할 경우 기후는 재앙이 되고 지구와 인류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경고에 따른 것이다. 교토의정서가 일부 선진국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수준이었다면 파리기후협약은 전 세계 200여 국이 사실상 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 기후위기보다 강력한 개념이다.
◇그린뉴딜 vs 그린워싱그린뉴딜은 쉽게 말하면 환경+일자리를 뜻한다. 환경(탄소중립) 관련 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것. 1930년대 미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펼쳤던 뉴딜정책을 환경(그린)과 접목하는 구상이다.
정부는 △도시·공간·생활 인프라 녹색전환 △친환경 모빌리티 확산 △그린에너지 △녹색산업 혁신 생태계 구축 등 4대 분야를 중심으로 오는 25년까지 73조 4천억 원을 투입해 66만 여 일자리 창출과 목표량의 20%인 1229만 톤의 탄소 감축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전기차, 재생에너지 100%(RE100) 등의 대규모 프로젝트 뿐 아니라 미세먼지 차단 숲이나 전교실 와이파이 구축, 폐플라스틱 생수병 현금 보상(자원순환)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 및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그린뉴딜로 볼 수 있다.
다만 대통령직속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인 '에너지전환해유 사회적협동조합' 양흥모 이사장은 "국비 확보 수단으로 토건 사업을 그린뉴딜로 포장하거나, 실질적 움직임 없이 마케팅 수단으로 ESG(Environment Social Government) 경영을 강조하는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과는 구별돼야 한다"고 밝혔다.
◇탄소국경세(稅)와 국내·충남의 산업구조그렇다면 탄소중립이나 그린뉴딜 등의 대전환이 왜 중요한가. 먹고 살기 위해서다.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탄소국경세와 유럽연합(EU)의 탄소세 부과는 앞으로 우리가 '먹고 사는데'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세계 9번째 온실가스 다(多)배출국이자, 반도체와 자동차·석유제품 등 다(多)탄소 산업 비중이 높은 '수출 의존국'으로서 탄소국경세가 본격화될 경우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사실상 지구와 인류의 지속성이란 명제보다 더 급한 불이 탄소국경세(稅)로 대표되는 경제적 타격일 수 있다.
스탠다드 차타드그룹은 지난 7일 한국의 수출업체가 탄소 감축을 추진하지 않을 경우 2030년 수출 손실 규모가 160조 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3월 지역균형뉴딜투어 충남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맨 오른쪽)과 '충남 에너지 전환, 그린뉴딜 추진전략'을 보고하는 양승조 충남지사(맨 왼쪽). 충남도 제공
국가적 타격은 지역에도 연쇄적일 수밖에 없는데, 충남의 상황은 특히 더 걱정스럽다.
충남에는 국내 석탄 화력발전소 58기 중 28기가 밀집되어 있다. 서해안을 따라 서천부터 보령과 태안까지 석탄이 미세먼지와 탄소를 배출한다. 당진에는 현대제철 공장의 용광로가 24시간 타오르고 서산의 석유화학단지 역시 쉴 새 없이 안전과 환경을 위협한다. 내륙의 사정도 비슷하다. 아산을 중심으로 반도체 공장과 자동차 공장, 자동차 부품 회사가 즐비하다.
지난해 충남이 온실가스 배출량은 1억7천만 톤, 국내 전체 배출량의 24%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수출 상위 품목이자 다(多)탄소 산업들로 구성된 게 충남의 산업 구조다. 개편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의 '충남 대전환' 선언은 의미가 남다르다. 문 대통령은 충남 보령석탄화력발전소에서 진행된 '에너지 전환과 그린뉴딜 전략보고' 행사에서 "2034년까지 충남에서만 석탄화력발전소 12기를 폐쇄하고 해상 풍력발전과 태양광단지 조성 등 신재생에너지 중심지로 탈바꿈한다"며 "화석연료의 산업시대를 이끌어 온 충남의 역사적인 대전환"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양승조 충남지사 역시 이 자리에서 25년까지 31조 원을 투입하는 충남형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이 행사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진행됐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형나 경희대 교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진행한 특강에서 "국내 수출의 51%가 집중된 미국과 EU, 중국이 넷제로와 그린뉴딜을 선언했고 이 중 미국과 EU는 탄소국경세 도입을 추진 중"이라며 "국내 주요 수출 품목을 중심으로 국경세 도입에 따른 영향 분석과 대응 전략, 제품환경발자국 평가와 관련된 제도 정비 등이 요구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