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애 변호사. 연합뉴스
"검찰에게 특수수사권을 남겨둬야 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생각이셨어요. 이건 외부에 알려지면 곤란할 오프더레코드입니다만, 그건 대통령님이 의지가 워낙 강했어요. 경찰이 특수수사를 할 수 있는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다고 하셨죠." (이광철 청와대 민정 비서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 세력으로 꼽혔다가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정부의 핵심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꾼 권경애 변호사(사법연수원 33기)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입을 열었다. 곧 출간할 책 '무법의 시간'을 통해서다. 권 변호사는 '조국 흑서(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에 이어 또 한 번 정권 핵심부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광철 "검찰에 특수수사권 남겨둔 건 文의 강력한 뜻"책 '무법의 시간'에 따르면, 권 변호사는 정부·여당의 입장에서 '때마침 나타난 뜻밖의 쓸모 있는 응원군'으로 통하며 여권의 실세들과 접촉이 이어졌다. 2019년 4월 국회 패스트트랙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공수처 법안이 통과된 후 두 법안의 맹점에 대해 진보 진영의 인사들까지 비판이 이어질 때 권 변호사 혼자 페이스북에서 정부·여당 측의 검경수사권 조정안과 공수처법의 설계도를 친절히 설명하고 반대 논리를 조목조목 논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여론은 검찰이 특수수사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비판했는데, 이광철 청와대 비서관은 이에 대해 "검찰이 중대범죄를 직접 수사할 수 있는 특수수사권을 남겨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뜻"이라고 밝혔다. 당시는 현 정권이 전 정권에 대한 이른바 '적폐 수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박근혜 정부 말기였던 2016년말 23명에 불과했던 서울중앙지검 4개 특수부 검사는 2018년 8월 43명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조국 전 수석이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되면서 불거진 의혹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검찰 특수부 조직은 축소됐다. 2019년 10월 8일 조국 당시 법무부장관은 '10월 중으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 3개 지검 특수부를 반부패부로 개편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8일은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중앙지검 특수부에서 3차 검찰 조사를 받고, 조 전 장관의 동생 조권씨는 영장심사를 위해 강제구인됐던 날이었다. 권 변호사는 "그들의 남편이자 형인 법무부장관이 비장한 어조로 검찰 개혁안을 발표했다. 특수부 해체를 선포했다"며 "현실 같지 않았다"고 했다.
◇법무부장관에 지명된 조국 "합법 아닌 건 하나도 없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박종민 기자
권 변호사는 법무부장관에 지목된 조 전 수석과의 대화도 공개했다. 2019년 7월 25일 이광철 당시 행정관의 주선으로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이 행정관과 김남국 변호사(현재 국회의원)와 밥을 먹은 뒤 조 전 수석실 방으로 올라가서다. 청문회 준비를 걱정하는 권 변호사의 질문에 조 전 수석은 "합법 아닌 건 하나도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권 변호사는 "조국 지명자가 공개석상에서도 내뱉은 그 말은 이후 문재인 정부의 공직자나 공직 후보자의 윤리적 흠결에 제기되는 질타를 방어하는 표준 문장이 됐다"면서 "공직 임명의 잣대를 상식과 공정이 아니라 합법과 불법으로 바꿔치기한 그 문장은, 그날 조국 수석의 빛나던 눈빛과 두 행정관의 따뜻한 환대의 기억들을 통증으로 바꿔놓았다"고 서술했다.
권 변호사는 청와대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바라보는 시각도 간접적으로 전했다. 윤 전 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 검증이 마무리됐을 시기 이광철 당시 행정관은 사무실로 찾아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2017년 11월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 수사를 청와대와 구체적인 상의 없이 진행시켰다"고 말했다고 한다. 권 변호사는 이날 이 행정관과의 대화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이 외부에 표명한 약속과 청와대의 현실이 차이가 있고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윤석열 서울지검장을 마냥 '우리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점은 분명했다"면서 "언제든 정권의 비리가 터지면 원칙대로 수사하는 윤석열 검사의 기질에 대한 우려가 없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광철, 페이스북 글 올린 뒤 5분만에 전화 "글 쓰는 거 막을 수 없지만…"권 변호사와 자주 접촉했던 이광철 비서관은 권 변호사가 정권에 날을 세우는 글을 올릴 때면 다급하게 전화를 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 변호사는 조국 장관 임명 당일이었던 2019년 9월 9일 '김오수 당시 법무차관과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하고 조국 특별수사팀을 구성하자고 대검 간부들에게 제안했다'는 기사를 보고 다음날 페이스북에 조국 장관을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사모펀드로 어떻게 장난치는지를 잘 모르는 지지자들에게 어처구니없는 해명으로 핍박받는 노무현2를 연기하며 강렬한 방어와 지지를 끌어모아서 세상 모두를 속일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들 지지자들을 개돼지로 보고 있다는 것'이라는 강력한 비판이 담긴 글이었다.
이광철 비서관. 연합뉴스
권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5분 후 이 비서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면서 "전화로 전해지는 그의 다급함은 압박으로 다가왔다"고 밝혔다. 이 비서관은 조 전 장관의 임명에 대한 청와대 내부 상황을 전하며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건 권 변호사님이 우리 정부에 애정이 깊으시니까, 물론 권 변호사님이 페북에 글을 쓰시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이라는 말도 했다. 권 변호사는 "이 비서관이 전화를 직접 건 목적은 분명했다. 정부와 조국을 비판하는 글을 쓰지 말라는 것, 그는 부탁이었을지 모르나 내게는 무거운 압박이었다"고 썼다.
이 비서관 이외에도 김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권 변호사에게 글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20대 청년운동 단체에서 만난 친구였던 김 전 의원은 권 변호사에게 전화를 글어 "페이스북 글을 당장 내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조국 청문회를 앞두고 '사모펀드 비리가 정경심 교수와 조금이라도 연관돼 있다면 정권의 큰 부담이 될 것이 우려된다'는 글이었다. 권 변호사가 "그런 요구는 무례하다"고 맞서자, 김 전 의원은 옆에 있던 권 변호사의 대학 선배를 바꿔줬고 그도 글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권 변호사는 이후 글을 내렸고 "그런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이번 한 번뿐이라고 못 박았다"고 했다.
◇여권이 권 변호사를 회유한 방법 "조국 사태 관여하지 말고…비례대표든 뭐든 다 얻을 수 있다"
권 변호사는 여권 핵심 인사와 친분을 자랑하며 자신을 회유한 인물도 폭로했다. 모교 연세대 운동권의 대부로 불리며 연대 민주동문회를 주도했던 77학번 중 한 사람인 H는 '조국 수호 촛불집회'가 열리던 시기 권 변호사에세 찾아와 "야당은 이미 흘러간 권력, 너같은 사람이 다음 정권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일(조국 사태)는 관여하지 말고 침묵하고 흘려보내라"면서 "3개월만 침묵하고 있으면 비례대표든 뭐든 원하는 자리는 다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H는 그러면서 당시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등 연세대 동문 선배를 언급하며 "청와대 인간들, 뭔일만 생기면 전화한다"고 말했다.
김남국 현재 민주당 의원이 변호사 시절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공개했다. 두 사람은 2019년 서울지방변호사회 '공수처 및 수사권 조정TF'에서 함께 활동했다. 김 의원은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표창장 위조 혐의로 처음 기소된 2019년 9월 7일 자정 무렵에도 권 변호사와 통화를 하며 "정 교수님이 위조하신 것 같아요, 사모펀드도 관여하셨고"라면서 "(조국 장관) 후보 사퇴하셔야 할 것 같아요, 임명하시면 안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조국 장관 임명이 강행된 뒤 서울변회TF 회의에서 마주친 김 의원은 입장이 바뀌었다. 김 의원은 TF 회의 후 권 변호사와 따로 만난 자리에서 "그래도 저는 진영을 지켜야죠. 조국 장관님을 수호해야죠"라는 말을 했다고 권 변호사는 전했다. 김 의원은 이후 작년 총선에서 경기 안산시 단원구 을 후보로 전략 공천돼 당선됐다.
권 변호사의 책 '무법의 시간'은 24일부터 약 보름간 예약 판매를 진행한 뒤 7월 중 출간할 예정이다. 민변 출신인 권 변호사는 2020년 탈퇴하기 전까지 민변 소속으로 한·미 FTA와 미디어법 반대, 국가보안법 수사 중단 촉구 활동에 앞장섰고,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시국 선언에도 두 차례 이름을 올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