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수 검찰총장. 이한형 기자
검찰 중간간부 인사로 교체가 결정된 주요 권력 비위 수사팀이 새 근무처로 가기 직전 주요 인물들을 재판에 넘겼다. 그간 결정을 미뤄왔던 대검찰청이 수사팀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막판에 극적 타협을 이룬 모양새다. '친정부 성향' 꼬리표에 검찰 직제개편안 통과와 잇따른 편향 인사로 입지가 좁아진 김오수 신임 검찰총장이 내부 다지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원지검 형사3부(이정섭 부장검사)는 1일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에 연루된 이광철(51)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 기소했다. 지난 5월 13일 대검에 이 비서관의 기소 방침을 처음 보고한 지 50여 일 만이다. 이 비서관은 2019년 3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과정 전반을 지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수사팀은 첫 보고 이후에도 3차례 더 대검에 이 비서관의 기소 의견을 보고했다. 그때마다 대검은 보강 수사를 요구하거나 참고인 추가 조사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번번이 승인을 미뤄왔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지난달 25일 검찰 중간간부 인사가 단행됐고, 반년간 수사를 이끌어온 이정섭 부장검사는 대구지검 형사2부장으로 발령이 났다.
이 부장검사뿐만 아니라 같은 수원지검 형사3부의 김재혁 부부장검사도 이번에 대구지검으로 전보됐다. '김학의 사건'을 지휘했던 송강 수원지검 2차장도 청주지검 차장으로 자리가 옮겨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사실상 수사팀 해체 수준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달 2일로 예정된 새 근무처 부임일이 임박하면서 이 비서관의 기소 전망도 어두워졌지만, 대검은 수사팀의 마지막 근무일에 임박해 결국 기소를 승인했다. '김학의 사건'에 연루돼 지휘를 회피한 김오수 검찰총장 대신 박성진 대검 차장이 최종 결재했다고 한다.
한 검찰 관계자는 "만약 지금 처분을 하지 않아 후임으로 오는 부장검사에게 사건이 가면 수사를 전혀 하지도 않은 검사가 공소장을 써야 하고 자기 이름으로 서명해야 하는데 그건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라며 "이정섭 부장검사가 있을 때 처리하는 게 맞는 사안이다. 대검 차장 인사가 났을 때 당연히 처분도 바로 이뤄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비서관과 마찬가지로 결재를 미뤄와 '사건 뭉개기' 의혹이 일었던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도 막판에 기소 처분이 이뤄졌다. 김오수 총장이 최종 승인했고, 이로써 사건에 연루된 백운규(57)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채희봉(55)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61)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 착수 8개월여 만이다.
두 사건 모두 수사팀의 의견이 관철된 데에는 김 총장의 결단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처분이 늘어지면서 검찰 내부의 비판이 확산되고, 검찰의 독립성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문제 의식이 높아지자 김 총장이 내부 결속을 다지면서 자신의 리더십을 다잡으려는 의지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다만 월성 원전 사건의 경우 수사팀이 주장해온 배임 혐의가 정 사장에게만 적용된 부분에는 여전히 '방탄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팀인 대전지검 형사5부(이상현 부장검사)는 백 전 장관에게 정 사장에 대한 배임교사 혐의를 적용하겠다고 보고했지만, 김 총장은 수용하지 않은 채 직권으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를 소집했다. 백 전 장관의 배임교사 혐의가 적정한지 외부 전문가들에게 판단받겠다는 취지다. 지난 2018년 수심위 도입 이후 검찰총장이 직권으로 소집을 신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경험 많은 부장검사들 다수가 모여 의견일치를 봤는데, 이를 외부 판단에 맡기겠다는 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정권 인사에 대한 기소 부담을 외부 기구를 통해 회피하기 위한 김 총장의 전략적 행보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백 전 장관의 배임교사 혐의 기소 여부는 수사팀 교체 이후 결정된다. 이번 중간간부 인사에서 이상현 부장검사는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장으로 전보됐다. 특히 대전지검의 경우 최근 법무부가 마련한 직제개편안에 따라 형사5부가 사라지고 인권보호부가 신설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