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발신제한' 스틸컷. CJ ENM·TPSCOMPANY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배우 조우진이 데뷔 22년 만에 처음으로 단독 주연을 맡은 영화 '발신제한'에서 그동안 보여준 모든 것을,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모두 집중해 쏟아냈다. 그 결과는 벌써부터 조우진의 다음 주연작이 기다려진다는 것이다.
은행센터장 성규(조우진)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출근길에 나선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출근길은 의문의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 한 통과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지금 당신의 의자 밑에는 폭탄이 설치돼 있습니다"라는 말로 한순간에 뒤바뀐다.
전화기 너머 의문의 목소리는 자리에서 일어날 경우 폭탄이 터진다고 경고한다. 성규는 이 의문의 전화를 보이스 피싱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회사 부하 직원의 차가 폭발하는 것을 목격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테러범의 지시에 따라 성규는 거액을 마련해야 하는 동시에 부산 도심 테러의 용의자 누명을 쓰고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인다.
영화 '발신제한' 스틸컷. CJ ENM·TPSCOMPANY 제공 '발신제한'은 차량이라는 공간을 이용해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도심 추격 스릴러다. 자동차는 밀폐된 공간이자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영화는 움직이면서도 움직일 수 없는 공간과 주인공 성규의 복합적인 내면 변화를 통해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렇기에 카메라는 이러한 이중적인 공간이 주는 아이러니함을 담아내기 위해 주로 성규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거나 다른 차량처럼 도심 한복판을 운행하는 성규의 차량을 원거리에서 잡아낸다.
대개 한정되고 폐쇄된 공간에서 이뤄지는 사건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주인공이 옴짝달싹하지 못한다는 제약으로 인해 점차 공포에 질려가는 모습을 담는다. '발신제한'은 이와 비슷하지만 움직일 수 있는 차량을 다루며 기존의 폐쇄 공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와 차별성을 갖는다.
그러나 운전석 밑에 설치된 폭탄은 마치 지뢰처럼 성규가 움직이는 순간 폭발하게 된다. 이에 성규는 범인의 지시에 따라 부산 이곳저곳을 누비면서도, 정작 자리를 벗어나 그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에 영화는 다른 요소들을 적절히 안배해 긴장을 이끌어 가야 한다. 그렇기에 목소리로만 나오는 범인의 정체를 감추고, 과연 그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성규에게 거액의 돈을 요구하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차량이라는 배경의 이점을 이용해 부산 곳곳을 누비며 카체이싱 액션을 선보이며 폐쇄성이 주는 단순함을 벗어나 동적인 액션이 주는 오락적인 쾌감을 부여하고자 한다.
영화 '발신제한' 스틸컷. CJ ENM·TPSCOMPANY 제공 그러나 '발신제한'에서 무엇보다 극의 몰입과 긴장을 유지해나가는 것은 성규 역할을 맡은 배우 조우진이다.
장난 전화로 여긴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가 장난이 아님을 알게 된 성규는 긴박하고도 절실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여기에 아들이 예상치 못한 부상까지 입자, 성규는 범인이 요구한 거액의 돈을 마련하기 위해 억지웃음과 거짓으로 영업에 나서야 한다.
앉은 자리 밑에 설치된 폭탄, 피 흘리는 아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폭탄을 터트리겠다는 범인의 협박, 그리고 이 와중에도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사업 수완을 발휘해 고객 유치에 나서야 하는 처지까지 성규의 상황은 여러 부조화들이 뒤엉키며 그를 극한으로 내몬다.
이러한 내면의 변화와 이로 인한 감정을 표출하는 성규의 얼굴을 카메라는 시종일관 지근거리에서 담아낸다. 성규로 인해 뜬금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에 정당성이 부여되고, 관객들은 설득된다. 이처럼 성규의 불안하게 떨리는 눈동자마저 잡아내는 카메라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성규에 감정 이입하며 캐릭터가 주는 서스펜스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발신제한' 스틸컷. CJ ENM·TPSCOMPANY 제공
이는 조우진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22년 동안 충무로와 안방극장을 종횡무진하며 닦아온 깊이 있는 내공으로 인해 완성됐다. 그렇게 조우진은 단순히 '원톱'이라는 위치뿐 아니라 스릴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인 스릴을 영화 내내 이어가며 첫 단독 주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범인이 성규를 협박하게 된 사연이다. 영화 중반을 지나며 드러나는 사연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될 만큼 다른 의미로 극적이고 큰 인상을 남긴다. 스릴과 액션 뒤로 다가오는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일면은 더욱 씁쓸하게 다가온다.
다만 이 영화는 긴장을 효율적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사실상 예측 가능한 이야기로 진행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배우 조우진의 연기와 범인의 사연이 갖는 힘만큼은 큰 영화다.
94분 상영, 6월 23일 개봉, 15세 관람가.
영화 '발신제한' 포스터. CJ ENM·TPSCOMPANY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