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통일부 출입 시절 취재수첩. 윤석제 기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불을 지핀 '작은 정부론'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이 대표는 "여성가족부와 통일부는 특임 부처이고, 생긴 지 20년 넘은 부처들이기 때문에 그 특별 임무에 대해 평가할 때가 됐다"며 두 부처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여성가족부를 출입한 적이 없다. 다만, 통일부 폐지 주장에 대해선 출입 경험이 있는 기자로서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필자가 통일부를 출입했던 때는 남북관계가 활발하게 전개되던 지난 2007년 노무현 정부 마지막 1년여 기간이다. 당시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출입시절 작성한 케케묵은 현장 취재수첩들을 꺼냈다.
지난 2018년 6월 8.15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논의하기 위해 방북하는 남북 적십자회담 남측 대표단을 태운 버스가 동해선 육로 비무장지대를 통과해 금강산으로 향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통일부로 전입 간 날짜를 보니 2007년 4월 10일로 당일 금강산에서는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리고 있었다. 2007년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각종 회담과 행사 등으로 남북 왕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해다.
취재수첩을 한 장씩 넘겨보니 필자도 5월 9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 취재 풀(pool) 기자단으로 2박 3일 금강산에 머문 것을 시작으로, 12월 21일 '남북경협사무소 개소식' 취재차 개성을 다녀온 것 까지 8개월 여 사이에 8차례로 한 달에 한 번꼴로 '월북'했다.
금강산 전경. 사진공동취재단 취재수첩에는 당시의 이런저런 에피소드 흔적도 담겨 있었다.
첫 방북 취재였던 5월 이산가족 상봉 때의 일이다.
남측 모 신문사 사진 기자가 휠체어에 앉은 북측 이산가족의 모습을 찍었다는 이유로 북측 관계자들이 해당 기자를 강제 연행하려 해 기자단과 남측 관계자들이 모두 달라붙어 북측과 수 십 분간 '죽자 사자'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6월 개성에 있는 '영통사'(천태종 성지) 복원 3주년 기념행사 참관 당시에는 북측 행사 지원요원으로 나온 '보장성원'들 가운데 자장면을 좋아한다던 27살 여성 동무가 있었다.
여린 외모지만 남측 기자들의 요청에 '홀로 아리랑'을 나지막이 부르고 사진 촬영 제의에도 거리낌 없이 응해 필자의 사진 파일에는 지금도 그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박종민 기자 2007년 한 해 뜨겁게 전개됐던 남북교류 열기는 그해 말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진영 이명박 후보의 당선으로 한순간에 식기 시작했다.
MB 정권의 대북정책 슬로건인 '비핵·개방·3000'은 북한이 확실히 핵을 포기하고 자진해서 개방하면 1인당 국민소득을 3천 달러까지 올려주겠다는 구상이다.
한마디로 말해 북한 정권이 먼저 무릎 꿇어야 경제적으로 도와주겠다는 통보였다. 또, 대통령 당선인의 인수위원회에서도 통일부를 외교부로 통폐합하는 문제가 검토됐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10년간 통일부가 너무 비대해졌다는 이유 등을 들었으나 사실은 '햇볕정책'으로 대변되는 진보 정권의 상징적 정책을 지우기 위한 목적이 컸다. 그러나 '통일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냐'라는 당시 비판 여론에 밀려 통폐합 대신에 내부 조직 개편을 단행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판문점에서 유엔사 장병들이 비무장 상태로 경계근무를 하는 모습. 황진환 기자 취재수첩에서 통일부 통폐합 문제와 관련해 그때 당시 남북관계 전문가들을 상대로 취재한 내용을 발견했다. 남북교류가 활발하든 안 하든 공식적인 대북 관계는 오랜 기간 통일부가 총괄해 왔기 때문에 통일부가 폐지될 경우 그동안 쌓인 인적자원이나 노하우 등 학습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
북측의 경우 대남사업은 조선로동당 산하의 통일전선부가 주도해 왔고, 남측에서는 통일부가 상대하면서 '파트너십'을 쌓았는데 이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또, 통일부의 존립은 남북관계의 투명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는 의견도 눈에 들어왔다.
지난 1974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비밀리에 평양을 다녀온 뒤 깜짝 발표한 '7.4 남북공동성명'을 비롯해 이후 국가안전기획부와 국정원이 대북문제에서 상당한 역할을 해 왔다.
실제로 필자의 취재수첩에는 금강산 남북이산가족행사 당시 남측 수행원 80여 명 가운데 국정원 50명, 통일부 20명, 적십자사 10명 등이라는 취재 내용이 적혀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윤창원 기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도 "대북 업무는 국정원과 청와대가 주도적으로 해왔으니까 통일부를 폐지해도 아무 지장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업무 성격상 '음지'에서 일하는 게 몸에 밴 정보기관이 통일부 폐지 이후 공식적인 대북 업무까지 총괄하게 되면 대북관계의 투명성이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2007년 당시 국정원 3차장(북한 담당) 산하에는 통일부와 거의 유사한 업무를 담당하는 8실이라는 부서가 있었지만, 8실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진보정권의 '햇볕정책'이든 보수정권의 '압박정책'이든 대북 정책은 늘 상대 진영의 공격과 비난의 대상이었지 합당한 평가나 격려를 받아 온 적이 없다.
따라서 통일부가 없어진다면 대북 문제 관련 모든 질타는 청와대가 직접 감수해야 해 정권이 보수든 진보든 일종의 '방패' 역할로서의 통일부 존립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은 흥미롭다.
취재수첩을 덮으며 당시 취재 내용을 지금의 현실에 대비해 봤는데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관계는 한반도 안보가 걸린 중차대한 사안인 만큼 정책 마련부터 실행까지 신중하고 무겁게 접근해야지 정치적 실익을 앞세워 가볍게 덤벼서는 안 된다.
지난달 17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남북공동선언 국회비준동의 및 종전선언 평화협정 촉구 기자회견'. 윤창원 기자 당장의 남북 관계가 좋든 안 좋든 통일부 존폐 문제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2007년 남북을 오가며 각종 회담과 행사를 취재하다 보니 자주 마주쳐 사적인 얘기도 주고받게 된 3살 위 북측 보장성원이 있었다.
개성에서 열린 행사 취재차 도라산 남북출입국사무소를 거쳐 북녘땅을 밟은 어느 날.
저쪽에서 다가오며 "내가 윤 선생 보려고 일부러 나왔어"라며 웃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그 형님은 지금 잘 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