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김연경(10번)을 비롯한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 선수들이 31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A조 4차전 일본과 경기에서 승리한 뒤 환호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9년 전 숙적 일본에 막혔던 아픔을 시원하게 설욕했다.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짜릿한 역전승으로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올림픽 한일전에서 웃었다.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은 31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조별 리그 A조 4차전에서 일본을 3 대 2(25-19 19-25 25-22 -25 15-25 16-14)로 이겼다. 조별 리그 1패 뒤 3연승을 달리며 8강 진출을 확정했다.
그 중심에 김연경(33·중국 상하이)이 있었다. 이날 김연경은 양 팀 최다인 30점을 쏟아부었고 블로킹도 3개를 잡아냈다. 상대 공격을 걷어내는 디그도 세트당 3.6개를 해내며 수비에서도 활약했다.
일본도 주포 고가 사리나를 전격 선발 투입하며 맞불을 놨다. 대회 초반 부상을 당한 고가도 이날 선발 출전해 일본팀 최다 27점을 올리며 접전을 이끌었다. 그러나 일본은 김연경의 주도 속에 박정아(15점), 양효진(12점)이 받쳐준 한국 대표팀의 화력에 밀렸다.
무엇보다 김연경은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 모를 올림픽에서 숙명의 한일전을 승리로 마무리했다. 첫 대결에서 일본에 눈물을 쏟았지만 이후 두 번의 올림픽 무대에서 라이벌을 꺾으며 우세를 보였다.
김연경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배구 36년 만의 4강을 이끌었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 동메달 이후 첫 메달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벽에 막혀 메달이 무산됐다. 일본과 3, 4위 결정전에서 지면서다. 당시 김연경은 굵은 눈물 방울을 흘리며 안타까워 했다.
김연경이 31일 저녁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A조 4차전 일본과 경기에서 강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랬던 김연경은 4년 뒤 설욕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일본과 A조 1차전을 3 대 1 역전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김연경은 양 팀 최다 30점을 쏟아부었고, 수비에서도 23개의 리시브와 팀내 최다인 29개의 디그를 잡아내며 펄펄 날았다.
5년이 지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연경은 공교롭게도 이번 한일전에서도 양 팀 최다 30점을 퍼부었다. 무엇보다 일본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거둔 승리라 더 의미가 있었다.
경기 후 김연경은 "경기 전 갑자기 (런던 대회 패배와 함께) 오늘 이기면 그래도 일본을 올림픽의 중요한 순간 2번을 이기는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만큼 한일전에 대한 부담이 나도 그렇고 선수들도 항상 있었는데 그걸 털어내고 이겨서 그 기쁨은 두 배 이상, 서너 배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결국 중요한 순간 이기니까 복수하는 데 많이 성공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서였을까. 김연경은 이번 대회 앞선 3경기를 포함해 이날 가장 많은 점수를 올렸다. 뿐만 아니라 몸을 날리는 투혼으로 여러 차례 상대 공격을 걷어냈다. 김연경은 "오늘 좀 많이 힘들었다"면서 " 한일전은 많은 국민의 큰 관심을 받기 때문에 선수들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을 선수들이 알기에 간절하게 뛰었다"고 했다.
숙적에 또 한번 승리를 거둔 가운데 김연경은 이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생애 첫 올림픽 메달. 일단 이번 대회 목표였던 8강 진출을 이룬 김연경은 "8강 상대가 정해지면 그거에 맞게 준비해서 한번 기적을 일으키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9년 전 일본전 패배의 아쉬움을 바로 그 일본 수도에서 시원하게 다시 털어낸 김연경. 그때 목에 걸지 못했던 메달까지 이번 올림픽에서 이뤄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