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코로나19 백신 부족 사태가 계속되고 있지만 광주 일부 병원에서 접종이 가능한 잔여 백신이 폐기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위탁 기관인 광주시 남구의 한 병원. 이 병원은 최근 한 달 동안 100명 정도가 접종할 수 있는 코로나19 아스트라제네카(AZ)와 모더나 백신을 폐기했다.
병원 측은 보건소 등에 잔여 백신 활용 방안에 대해 여러 차례 문의했지만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폐기하라는 내용만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광주지역 또 다른 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 잔여백신이 발생할 경우 이전처럼 SNS나 백신 예약 사이트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접종 대기자를 찾지 않고 폐기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이처럼 잔여 백신을 폐기하는 병원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광주 남구 한 병원 관계자는 "광주지역 여러 병원에서 코로나19 잔여백신이 폐기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달 질병관리청 지침이 내려온 이후 잔여백신 접종에 소극적으로 나서는 병원이 더 늘어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초창기부터 잔여 백신 활용에 소극적인 병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은 코로나19 백신 1바이알당 의무 접종 인원보다 접종 가능 인원이 더 많으면서 시작된 것으로 분석된다. 의무 접종 인원을 이미 확보한 상황에서는 잔여백신이 생기더라도 접종 대기자를 찾아 접종할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다.
실제 AZ와 모더나 백신의 경우 1바이알당 10명이 접종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12명까지 접종할 수 있다. 1바이알당 6명 접종할 수 있는 화이자 백신 역시 7명까지 접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AZ나 모더나의 경우 9바이알만 가지고도 10바이알에 해당하는 의무 접종 인원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박종민 기자여기에 질병관리청이 지자체를 통해 일선 병원에 내리는 코로나19 백신 지침과 지시가 자주 변경되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특히 지난달 초 질병관리청이 전달한 위탁의료기관에 대한 AZ 접종 지침이 정확히 전파되지 않으면서 잔여 백신 폐기는 심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광주지역 한 병원 관계자는 "백신을 한 명 투약할 경우 1만 9천 원 정도의 의료수가를 받게 된다"며 "하지만 백신 접종 지침이 너무 자주 바뀌면서 돈을 버는 것보다 접종 과정에서 실수나 오류가 발생하는 위험을 피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 잔여 백신을 폐기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의료기관에서는 잔여 백신을 최대한 활용해 백신 접종자를 늘리려 노력해야 하지만 일종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셈이다.
실제 지난달 질병관리청의 지침에 AZ 잔여백신을 1차 접종 대상자에게는 접종하지 않도록 하면서 접종 대기자를 확보에 어려움이 생겼고 더 많은 잔여백신이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AZ가 1차 접종자의 경우 이미 2차 접종 날짜와 병원 등이 정해진 상황에서 병원 입장에서는 잔여 백신을 접종할 대기자를 찾는 게 끝이 아니라 해당 접종자의 일정을 조정하는 등의 수고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접종 희망자가 많은 화이자나 모더나 잔여백신 역시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광주 서구청은 AZ백신을 서구 보건소에서만 접종하도록 해 폐기 물량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대조를 보였다. 지난달 질병관리청의 지침 이후 현실적으로 위탁의료기관에서는 접종 대상자를 찾기 힘들다고 보고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예방접종센터에서만 AZ 백신을 활용한 것이다.
백신 부족 사태 속에 소중한 잔여백신이 폐기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광주시 관계자는 "질병관리청의 AZ 백신 접종 지침이 다시 변경된 만큼 잔여 백신 폐기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