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덕 양궁 국가대표가 26일 도쿄 유메노시마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양궁 단체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후 환호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10대들의 꿈 같았던 첫 올림픽. 올림픽이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무게감 속에서도 10대들은 반짝반짝 빛났다. 금메달 2개를 딴 김제덕(17, 경북일고)도, 또 메달을 따지 못한 10대들도, 무게감에 짓눌리는 대신 첫 올림픽을 즐겼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도 도쿄 올림픽의 성과로 세대교체를 꼽았다.
박태환(수영), 장미란(역도), 이용대(배드민턴), 진종오(사격) 등 시대를 수놓았던 올림픽 스타들의 배턴이 이제 10대들에게 전달됐다.
김제덕의 파이팅
도쿄 올림픽 초반 가장 화제를 모은 선수는 양궁 김제덕이었다. 평소 양궁에서 볼 수 없었던 거침 없는 샤우팅으로 형들의 기를 살렸다.
고등학생이지만,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을 뚫었기에 금메달 전선에는 이상이 없었다. 안산(20, 광주여대)과 호흡을 맞춘 혼성전과 오진혁(40, 현대제철), 김우진(29, 청주시청) 두 형과 함께 나선 남자 단체전까지, 금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김제덕은 개인전 탈락으로 3관왕을 놓친 뒤에도 "단체전 금메달이 가장 큰 목표였다. 그걸 이뤄서 욕심은 더 나지 않았다"면서 "개인전은 지더라도 '팡팡' 즐기면서 쏘고 싶었다. 막상 지니까 많이 아쉽다"고 활짝 웃었다.
수영 국가대표 황선우가 29일 일본 도쿄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경영 남자 자유형 100m 결승전에 출전해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황선우의 아시아신기록
한국 수영의 간판은 10년 이상 박태환이었다. 박태환을 넘어서는 선수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황선우가 박태환에게 수영 간판 자리를 넘겨받았다. 메달은 없었다. 하지만 수영 남자 자유형 200m에서 150m 지점까지 선두를 질주하는 등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아시아인에게는 높은 벽이었던 자유형 100m에서는 65년 만에 결승에 진출했고, 앞서 아시아신기록까지 갈아치웠다. 고작 18살의 나이, 자유형 최강 케일럽 드레슬(미국)이 "내가 18살 때 황선우처럼 빠르지 않았다"고 박수를 보낼 정도.
황선우는 "물 타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서양인처럼 큰 몸은 아니지만, 동양인의 몸으로도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10대다운 자신감을 뽐낸 뒤 "제2의 박태환도 영광이지만, 수영 선수 황선우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기계체조 여자 개인종목 도마에서 여서정 선수가 연기를 밝은 표정으로 마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여서정의 '여서정'
여서정(19, 수원시청)은 도쿄 올림픽 개막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여서정의 아버지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기계체조 남자 도마 은메달리스트 여홍철 교수. 여서정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25년 전 아버지와 같은 도마에서 메달을 꿈꿨다.
비장의 무기는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 '여서정'. 아버지 여홍철 교수의 기술 '여 2'를 변형한 기술로, 올림픽 무대에 나섰다. 그리고 '여서정'과 함께 기계체조 여자 도마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부녀 메달리스트가 됐다.
여서정은 "아빠는 본인의 그늘에 가려지는 게 많은 것 같다고 걱정을 하셨다. 무엇으로 불리든 상관 없다. 그저 아빠의 뒤를 잘 따라갈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떡볶이, 또 아이돌(워너원 박지훈)을 떠올리는 영락 없는 10대였다.
6일 일본 아오미 어반 스포츠 파크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 여자 콤바인 결승전 스피드 종목에서 서채현이 완등한 뒤 하강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서채현의 눈물
메달까지 딱 세 걸음이 모자랐다. 주종목인 리드에서 스피드와 볼더링의 부진을 만회했지만, 동메달까지 홀드 3개가 부족했다. 하지만 서채현(18, 신정고)은 도쿄 올림픽에서 첫 정식 종목이 된 스포츠클라이밍에서 결승 무대까지 밟았다.
우느라 목이 메였다. 인터뷰 내내 눈물을 삼켰다. 그래도 당당했다. 서채현은 "이번 올림픽은 결승 무대에서 뛰었다는 것이 수확"이라면서 "선수촌에서 만난 선수들과 기념 배지를 교환하며 재미있게 보냈다"고 말했다.
파리 올림픽에서는 스포츠클라이밍 방식이 조금 바뀐다. 스피드가 따로 분리된다. 서채현이 가장 약한 종목이다. 서채현은 "나에게는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방호복으로 무장한 신유빈 선수 등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선수단이 19일 일본 나리타 공항 입국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신유빈의 방호복
도쿄 올림픽 선수단 본진에서도 신유빈은 단연 인기였다.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쓴 것도 모자라 방호복까지 입고 공항에 나타났다.
방호복을 먼저 언급했지만, 기량도 출중했다. 특히 개인 단식에서 58살 니샤렌(룩셈부르크)와 대결했고, 단체전 16강에서 외팔 탁구 선수 나탈리아 파르티카(폴란드)와 복식에서 맞붙는 등 특별한 경험을 했다. 탁구대에 부딪혀 피가 나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승리를 위해 뛰었다.
신유빈은 "도쿄 올림픽을 경험 삼아 앞으로 더 좋은 경기를 펼치도록 훈련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안세영. 연합뉴스안세영의 무릎
7월30일 도쿄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8강전. 안세영은 1번 시드를 받은 천위페이(중국)과 만났다. 세트 스코어는 0대2였지만, 흔히 말하는 졌잘싸였다.
안세영은 몸을 아끼지 않았다. 천위페이의 공격을 넘어지면서 막아냈다. 코트에 쓸린 무릎에 피가 났지만, 안세영은 간단한 치료 후 다시 코트에 섰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일어나고, 천위페이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패배 후 의자에 걸터앉아 코트를 떠나지 못할 정도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울었다. 하지만 이내 웃었다. 안세영은 "계속 도전해보겠다"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술 한 잔만 하고 싶다. 아직 술을 한 번도 안 마셔봤다. 기분 좋게 마시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당돌한 10대들의 첫 올림픽은 이렇게 끝났다. 하지만 10대들의 눈은 이미 도쿄를 지나 파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파리 올림픽까지 남은 시간은 3년. 겁 없는 Z세대들은 이제 도쿄 올림픽의 값진 경험을 고스란히 안고 파리로 향한다.